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3화
PAYLUA ORIGINAL · 제23화

23화. 일곱 사람의 다른 대답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155자

오프라인 책장
일곱 건은 일곱 명의 서명과 같지 않았다. 예린은 그 사실부터 짚었다. 원본 보관소 도장이 찍힌 종이가 발견됐다고 해서 그 안에 적힌 사람이 실제로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기록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건 명단이 아니라 당사자의 말이에요." 지훈은 소개소 문 앞 안내문을 바꿨다. '이전 회사와 관련된 계약이나 직업 정보 때문에 불이익을 겪는 분은 본인이 원할 경우 상담할 수 있습니다. 상담만 받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날 첫 손님은 한미숙이었다. 학교 급식실 면접에서 근무 시간을 상세히 확인한 뒤, 자기 사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용 제안을 거절하고 왔다. "제가 또 기회를 날린 걸까요?" "아니요. 조건을 보고 판단하신 거잖아요." 미숙은 조금 안심한 듯 웃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아이들 점심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가족을 돌봐야 해서 매일 늦게까지 남을 수 없었다. 그 선택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 번째 손님 백승오는 자전거 수리 공방에서 실습 제안을 받았다. 그는 이력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주저했지만, 공방 사장은 먼저 안전 교육을 받아 보자고 했다. "그런데 저는 예전 회사에 돌아가서 장비 기록을 다시 찾고 싶기도 해요." "그것도 선택지에 남겨 두죠." 지훈은 누구에게도 같은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김지연이 찾아왔다. 미지급 임금을 확인하기 위한 자료가 준비됐고, 관련 기관의 상담 일정도 잡혔다. 지연은 예전 계약서가 잘못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일을 그만둘 생각은 아니었다. 재봉 기술을 계속 쓰되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적성이 있다고 무조건 그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남이 뺏었다고 제가 포기할 이유도 없잖아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상담이 끝나자 화면에 숫자가 떠올랐다. [직접 의사 확인: 3 / 7] [응답 분류: 조건부 거절 1, 새로운 선택 2] 지훈은 숫자를 수첩에 적고 옆에 큰 글씨로 덧붙였다. '동일한 계약서라도 원하는 결과는 다르다.' 상담이 끝난 뒤 지훈은 세 사람의 신청서를 나란히 놓았다. 이름과 주소를 가린 상담 목적란만 보아도 모두 달랐다. 미숙은 근무 시간, 승오는 기술을 익힐 기회, 지연은 미지급 임금과 선택권을 원했다. 숫자로 표시되는 적성은 명쾌했지만 생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소개소의 첫 광고 문구를 떠올렸다. '당신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아드립니다.' 이제 와서 보니 조금 잘난 척하는 문장이었다. 지훈은 문구를 바꿨다. '일자리는 함께 찾습니다. 선택은 본인이 합니다.' 철민이 새 종이를 붙이며 말했다. "그러면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겠는데요?" "그럴 때는 설명해야죠." "사장님, 너무 장사 못하는 거 아닙니까?" "이미 아시잖아요." 둘은 웃었다. 그날 소개소에는 첫 달 월세 독촉장이 도착해 있었다. 좋은 원칙만으로 가게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지훈은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새 손님 한 명이 방문했다. 택배 작업복을 입은 임동혁이라는 남자였다. 서른다섯 살. 그는 열두 해 동안 운송업에 종사했으나, 미래인력개발의 파견 계약 아래에서는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마다 '기술 검증 실패' 통보를 받았다. "운전 실력 때문에 떨어지는 거라면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운전대를 잡으면 배차 순서가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지훈의 눈앞에 글씨가 떴다. [임동혁 / 고유 적성: 경로 설계 96.2%] [기술 사용권: 외부 계약 중] [위임 정보: 대체 사용자 확인 필요] "다시 운전하고 싶으세요?" "아니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저는 버스 시간표를 만드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집에서 노선도를 그리면 밤새는 줄도 모르거든요." 지훈이 웃었다. "그럼 그 일부터 알아보죠." 동혁은 돌아가기 전에 작은 메모를 꺼냈다. "어제 어떤 여자가 저한테 이걸 주더군요. 상담받으러 가려면 이 말부터 전하라고요." 종이에는 두 줄이 적혀 있었다. '일곱 명을 모으는 이유를 묻지 않는 상담사는 다시 관리자다.' '누가 그 숫자를 정했는지 먼저 확인하라.' 지훈은 화면의 3 / 7을 바라봤다. 왜 일곱 명이어야 할까. 그 숫자를 정한 주체가 백도식도 오혜숙도 아니라면, 자신이 사람들을 돕는다고 믿었던 모든 절차가 또 다른 강제 면접일 수도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