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는 아침 여덟 시에 소개소에 도착했다.
밤새 잠들지 못한 얼굴이었다. 가방 속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던 귤 세 개와 작은 보조배터리가 들어 있었다.
"정말 엄마가 나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 말도 못 하셔도 됩니다."
지훈이 대답했다.
"그분이 계시다는 걸 먼저 확인하면 돼요."
그들은 약속 장소를 무작정 찾아가지 않았다. 주변 상인에게 인쇄소가 언제 문을 닫았는지 확인했고, 사람들의 통행이 있는 거리에서 멀리 간판을 살폈다. 철민은 굳이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지훈은 소개소와 빵집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싸울 일이 생기면 부르십시오."
"부르기 전에 신고부터 할 겁니다."
"거 참, 상담사님은 기운 빠지는 소리를 멋있게 하시네."
철민이 웃었다.
열 시 정각, 간판의 '인쇄'라는 두 글자 아래에 작은 종이가 붙었다. 한 여성이 자전거를 세워 놓고 붙인 듯했다. 뒷모습만 보였고 모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민규가 앞으로 나가려 하자 예린이 손목을 붙잡았다.
"우리가 약속한 건 먼저 확인하는 거예요."
그들은 여성이 골목을 떠난 뒤 종이를 보았다.
'직접 만나는 것은 아직 어렵습니다. 000번 기록을 읽는 사람은 많지만,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 아래에는 동네 작은 도서관의 상담실 예약 번호가 적혀 있었다. 연락해 보니 실제 도서관에서 예약을 받는 공개 프로그램이었다. 상담 주제는 '이직자의 권리와 기록 정리'.
"이렇게 돌아서 연락하는 이유가 뭘까요?"
민규가 물었다.
지훈은 종이 하단에 찍힌 잉크 자국을 살폈다. 보라색이었다. 오 년 전 박람회에서 한 여성 손등에 묻어 있던 잉크가 떠올랐다.
"자기 이름이 공개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정은 직접 들어야겠죠."
도서관으로 향하던 길에 정태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새 출발 소개소에 비슷한 형식의 서류가 접수됐다고 했다.
"동의 확인을 요청하는 문서가 일곱 장입니다. 그런데 누가 작성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 이름이 있습니까?"
"이름은 가려져 있어요. 직종만 남았는데, 미화, 조리, 설비, 운송, 보육…… 그리고 두 건은 공란입니다."
지훈은 눈앞에 떠 있던 '1차 검증 7건'을 떠올렸다. 숫자만으로 같은 서류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검증을 시작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분명했다.
인쇄소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거리였다. 거리에는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과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민규는 평범한 풍경을 보며 문득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가 돌아가는 동안 자신의 집만 멈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숨어 있었던 걸까요?"
지훈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숨는다는 말에는 스스로 떠났다는 뜻이 들어 있었고, 사라졌다는 말에는 누군가 붙잡았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어느 쪽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연락하지 못하셨는지 직접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그전에 안전하게 만나실 수 있는지부터요."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 속 귤을 한 번 만져 보더니 하나는 지훈에게 건넸다.
"저 혼자 다 먹으면 더 긴장할 것 같아서요."
지훈은 귤껍질을 천천히 벗겼다. 둘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
도서관 상담실에는 서정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제가 부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초대를 받았어요."
그녀는 예약 안내문을 펼쳤다. 참석자는 이름이 아닌 의뢰 번호로 적혀 있었다. 가장 위에는 000, 그 아래에는 118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번호를 누가 관리합니까?"
"예전에는 우리 센터의 원칙이었어요.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열한 시가 조금 지나자 상담실 전화가 울렸다. 관리자는 수화기를 들더니 민규를 불렀다.
"오민규 씨께 전달하라는 말씀이에요."
민규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받았다.
"엄마?"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민규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민규가 눈을 감았다. 지훈도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누구인지 단정하지 않았다. 통화는 짧았다.
"나는 지금 여기로 갈 수 없어. 대신 네가 가진 종이의 마지막 줄을 봐. 사람을 돌려보내는 것은 실패가 아니란다."
전화가 끊겼다.
민규는 공책을 펼쳤다. 마지막 장 안쪽에 붙은 얇은 종이를 떼어 내자 문장이 드러났다.
'거절은 접수되었다. 그러나 반환은 끝나지 않았다.'
그 아래에는 처음 보는 도장이 있었다.
'원본 보관소 — 미반환 7건.'
제2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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