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화
PAYLUA ORIGINAL · 제2화

2화. 퇴사할 수 없는 남자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3,024자

오프라인 책장
빵은 새벽이 되어도 식지 않았다. 정확히는 강철민이 그 빵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박 씨가 종이봉투에 넣어 준 식빵 한 덩어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그는 직업소개소의 낡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백도식이 두고 간 검은 명함이 있었다. '백도식 소유 직원 117명.' 오지훈은 명함을 뒤집었다. 조금 전까지 선명하던 118번 칸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떠올랐다. [등록 대기: 오지훈] [등록 시한: 내일 12:00] "선생님도 보입니까?" 철민이 물었다. "뭐가요?" "그 종이에 적힌 제 이름." 지훈은 숨을 삼켰다. 명함에는 숫자만 있을 뿐 철민의 이름은 없었다. "어디에 적혀 있는데요?" "저한텐 여기요." 철민은 아무것도 없는 명함 귀퉁이를 가리켰다. "처음에는 회장님 회사에 들어간 날이 적혀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내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만 남더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지훈은 수첩을 꺼냈다. '본인 눈에 보이는 표시와 타인이 보는 표시가 다를 수 있음.' 능력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더 급한 것은 내일 정오였다. "회사 계약서 갖고 계세요?" "회장님이 갖고 있죠. 서명한 종이도, 신분증 사본도." "급여명세서는요?" "한 번도 못 받았어요. 통장에 찍힌 돈이 전부지." 지훈은 휴대전화 계산기를 켰다. 철민은 열아홉 살부터 열일곱 해를 일했다. 기상 시각은 일정하지 않았고, 야간 대기와 휴일 호출이 흔했다. 밥을 먹다 불려 나간 날이 한 달에 열 번은 됐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월급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철민 씨, 회사에서 퇴사하고 싶다고 말한 적 있어요?" "세 번." "그때마다 뭐라고 하던가요?" "첫 번째는 장례비 갚으라더군요. 두 번째는 내가 망가뜨린 차 값을 내라고 했고요. 세 번째는……" 철민의 손이 식빵 봉투를 구겼다. "동생 학교로 사람을 보냈어요. 다치게 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찾아가 인사만 했죠. 그걸 보고 알아들었습니다." 지훈은 펜을 멈췄다. 이건 적성 검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붙잡기 위해 돈과 두려움을 함께 사용하는 구조였다. "오늘 밤에 기록을 정리합시다. 은행 거래 내역, 문자, 통화, 일을 시킨 장소. 기억나는 대로요. 그리고 내일부터 혼자 만나러 가지 마세요. 협박이 계속되면 신고할 수 있도록요." 철민은 빵봉투를 탁 내려놓았다. "신고해서 되겠습니까? 회장님은 경찰서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이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죠. 하지만 도움받을 방법을 한 사람에게만 맡길 이유는 없습니다. 노동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변호사에게 확인할 겁니다." "돈은요?" 지훈은 책상 옆에 놓인 월세 독촉 문자를 봤다. 오늘 받은 상담료는 0원, 지출은 3만 원. "당장은 무료 상담부터요." "그걸로 저 사람이 멈출까요?" "그걸로 끝내면 안 되죠. 다만 사실부터 알아야 싸울 수 있어요." 철민이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밤늦게까지 오래된 휴대전화와 통장 앱을 뒤졌다. 처음에는 계좌 이체 내역만 정리했다. 급여처럼 들어왔다가 사내 복지, 선지급 상환, 사고 처리라는 이름으로 빠져나간 금액이 반복됐다. 어느 달에는 받았던 돈보다 더 많은 액수가 같은 날 출금됐다. "제가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 준 적은 없습니다." "자동이체 동의서를 썼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서류를 한꺼번에 열 장쯤 줬습니다. 빨리 서명하라고 해서." "원본을 봐야겠어요. 동의가 어떤 범위였는지도요."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때, 철민은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몇 년 전 회사 송년회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웃고 있었다. 유난히 젊은 얼굴 하나가 맨 뒷줄에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지훈이 묻자 철민이 화면을 확대했다. "정태식. 서류 만드는 놈이었어요. 회장님이 계약의 천재라고 불렀죠. 그랬는데 어느 날 도망갔습니다." "언제요?" "작년 겨울." 사진 속 정태식의 목에는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흰 플라스틱 카드에 새겨진 문구를 지훈이 읽었다. '미래인력개발 계약관리실.' 백도식의 명함에도 같은 회사명이 아주 작게 음각되어 있었다. 그때 철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저장된 발신자명은 '총무팀'. 지훈은 스피커폰을 켜지 않고, 먼저 철민에게 전화를 받을지 선택하게 했다. 철민은 깊게 숨을 쉬고 통화를 연결했다. "내일 열두 시까지 복귀해."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안 돌아가면요?" "네가 서명한 거 잊었어?" "계약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 줬지?" 철민이 지훈을 봤다. 지훈은 대신 대답해 주지 않았다. "제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상대방이 웃었다. "강철민. 너는 그 회사에 들어온 날부터 다른 일을 못 하게 돼 있어." 통화가 끊겼다. 지훈의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강철민 / 잠재 적성: 제빵 99.1%] [직업 선택 권한: 제한됨] [제한 원인: 본인 확인 없는 갱신 계약] [유효화 조건: 당사자의 포기 선언] 지훈은 마지막 문구를 세 번 읽었다. 포기 선언. 회사가 시키는 일을 포기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뜻일까. 철민이 그를 바라봤다. "뭐가 보입니까?"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계약서에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지훈은 철민이 품에 안은 빵을 가리켰다. "오늘 당신이 직접 선택한 일입니다." 철민은 종이봉투를 열었다. 식빵 가장자리 한쪽이 조금 탔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어떤 월급 명세서보다 중요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새벽 두 시, 빵집 유리문에 작은 종이가 붙었다. '제빵 보조 구함. 경력 무관. 본인 의사 필수.' 지훈이 붙인 종이가 아니었다. 박 씨가 직접 쓴 글씨였다. 그 아래에 누군가 빨간 펜으로 작게 적어 놓았다. '강철민 채용 금지.' 글씨를 본 철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회장님 글씨입니다." 지훈은 종이를 떼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붙은 시각을 확인해 두었다. 내일 정오까지 이제 열 시간이 남았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