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운영사 직원의 말에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삭제 버튼이 아니라 연결 규칙을 봐야 해요.”
지훈은 제일 먼저 자신의 이름이 표시된 관리 화면을 확인했다.
[118번 / 오지훈]
[원천관리계정 대리 검토자]
[대체 검토자 미지정 시: 자동 승계]
마치 160화 때와 같은 문장이었다. 그때도 다른 사람의 미완료 선택을 지훈에게 넘기려 했다. 이번에는 0차 실험의 마지막 이의까지 함께 넘기려 하고 있었다.
구은정이 운영사로부터 가져온 절차표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었다. 다른 검토자를 지정하거나, 대리 검토가 왜 필요했는지 다시 판단하도록 규칙을 폐지하는 것. 전자는 즉시 처리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외부 기관의 동의와 감사를 거쳐야 했다.
“시간은요?”
“최소 며칠. 기관별 확인까지는 더 걸릴 겁니다.”
그날 오후에는 최종 개편안 표결이 예정돼 있었다.
예린이 말했다.
“일단 제 이름을 넣어 두고 나중에 바꿀까요? 제가 기술 쪽은 이해하니까.”
지훈은 그녀를 바라봤다. 오래전에는 두 사람 모두 그런 편법을 영리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린 씨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급하니까요.”
“그 말은 지금 우리가 싸우는 시스템이 하던 말과 같습니다.”
예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맞네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과, 제가 다른 사람의 대답이 되는 건 다르죠.”
두 사람은 대체 검토자 이름 대신 ‘지정 근거 분쟁 중’이라는 상태를 신청했다. 운영사는 처음에는 그런 입력값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은정이 기존 절차의 이의 접수 기능을 찾아냈다. 사람 이름이 아니라 승인 근거의 유무를 다투는 절차였다.
첫 번째 심사에서는 신청이 반려됐다. 사유는 단순했다.
‘대리 검토자 본인 인증 필요.’
지훈은 자신의 신분을 확인했지만, 그 확인이 대리 권한에 동의하는 뜻이 되지 않도록 별도 서류를 붙였다.
‘본인 확인은 완료한다. 대리 검토 권한은 인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 심사에서 구은정은 사업자 등록일과 0차 실험의 시작 날짜를 비교했다. 현재 소개소는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자동 연결된 이름 외에 인수 계약이나 권한 위임 증거도 없었다.
회의실의 오래된 프린터가 종이를 토해 냈다.
[118번 대리 검토 지정: 근거 미확인]
[자동 승계: 해당 연결에 대해 잠정 중지]
[권한 해제: 기관별 승인 대기]
완전한 해제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시스템이 지훈의 이름을 당연한 답처럼 취급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오던 지훈의 전화가 울렸다. 강철민이었다.
“지훈 씨, 빵 반죽을 좀 도와주실래요?”
“제가요? 저 손재주 없는 거 알잖아요.”
“알죠. 그래서 물어보는 겁니다.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지훈은 한참 웃었다.
“오늘은 안 할게요. 대신 설거지는 도울게요.”
“좋습니다. 그건 제가 제일 싫어하거든요.”
전화가 끊기자 지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거절하고도 관계가 끝나지 않는 대화. 그것이 그들이 만들려는 규칙이었다.
제19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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