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을 만들면 안전해지는 거 아니에요?”
한도균이 물었다. 그의 앞에는 지난 실험에서 보존한 수첩과 현대의 연동 기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누구나 볼 수 있게 복사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개인의 선택 기록은 사람에 따라 취업이나 가족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새 출발 직업소개소는 그날 작은 회의를 열었다. 기록을 지키는 일을 누가 맡을지 정하는 회의였다. 문서를 모두 모아 소개소에 보관하는 방식은 제외했다. 대신 기관이 원본을 보존하고, 당사자가 자신의 기록을 열람하고, 독립 검토자가 변경 이력만 확인하는 방법을 검토했다.
구은정은 종이에 세 개의 원을 그렸다.
“원본 보관자, 당사자, 검증자. 이 셋의 권한을 섞지 말아야 해요.”
“그럼 우리 소개소는요?”
“누가 어디에 문의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역할이 적절하겠죠. 모든 자료의 주인이 될 필요는 없어요.”
지훈은 잠깐 웃었다.
“직업소개소가 소개하는 일이 늘어났네요. 이제는 직업뿐 아니라 기록을 찾는 방법까지.”
회의는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한도균은 자신의 취업 기록을 보존하기 원했지만, 가족에게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혜숙은 교정지는 공개해도 좋지만 다른 참여자의 발언을 자신의 말로 옮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경아는 0차 실험 회의록의 작성 방식에 대해서만 증언하기로 했다.
하나의 정답이 없었다. 대신 각자가 무엇을 허락하고 무엇은 허락하지 않는지 분명해졌다.
늦은 오후, 공공 기록 보관기관에서 공문이 왔다.
'000-0 회의록과 개인 기록의 보존 경로 확인 완료. 원본 아홉 건에 대한 열람 제한은 유지. 열 번째 참여자의 원칙 이의 기록은 회의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별도 개인 평가 자료는 확인되지 않음.'
“이제 10번 사람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어렵겠네요.”
예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분이 지금 살아 계신지, 자기 의견을 공개하고 싶은지는 아직 모릅니다.”
지훈은 통지문을 내려놓았다. 회의록에 반대 의견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괄 종료안의 근거를 검토할 수 있었다. 실명을 찾는 일과는 별개였다.
그때 외부 연동기관 한 곳에서 자료 보존 방식에 동참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첨부에는 익명화된 오류 유형과 변경 이력 보존 계획이 있었다. 예린은 파일의 내용을 확인한 뒤 감탄했다.
“아예 데이터를 우리에게 보내지 않았어요. 본인들이 책임지고 보관한대요.”
철민은 컵을 닦으며 말했다.
“좋은 거 아닙니까? 제빵사한테 오븐을 맡기듯이.”
지훈이 웃었다.
“맞아요.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하면 결국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게 되니까.”
그날 저녁 화면에 숫자가 떴다.
[보존 협력 의사 확인 기관: 1]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한 곳의 대답은 누군가가 대신 입력하지 않은 것이었다.
제18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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