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민은 빵집 새 주문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박선규는 커다란 철판을 닦다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손이 익었네요. 이제 반죽 온도는 나보다 더 빨리 맞추겠어요.”
“오븐은 아직 사장님이 낫습니다.”
“이것 봐요. 자기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할 줄도 알고.”
철민은 웃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이 굳었다. 카운터에 봉투 하나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백도식이 보낸 과거 급여 명세서 사본이었다.
'교육비 상환', '소속 유지비', '장례 지원비'.
서류에는 스무 살 무렵부터 공제된 돈이 적혀 있었다. 철민은 그 시절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사무실에 처음 출근하던 날, 고마움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그때는 자기가 빚을 갚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이걸 모두 끝났다고 처리해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가 소개소로 올라와 물었다.
지훈은 문서를 바로 가져가지 않았다.
“끝내고 싶은 항목과 다투고 싶은 항목이 다를 수 있어요. 철민 씨가 정해야 합니다.”
철민은 책상에 앉아 세 장의 종이에 따로 표시했다. 받은 돈이 분명한 항목, 금액이 기억나지 않는 항목, 동의한 적이 없는 공제 항목. 마지막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기억이 안 나는 걸 거짓이라고 해도 됩니까?”
“안 됩니다. 하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인정했다는 뜻도 아니죠.”
철민은 펜을 내려놓고 가게로 돌아갔다. 오후에는 아동센터에서 단체로 식빵을 주문했다. 그는 어머니가 쓰던 방식대로 반죽을 한 번 더 접었다. 오븐에서 빵이 나올 즈음, 빵집 한쪽에 작은 시식 테이블이 마련됐다.
아이 하나가 식빵을 먹고 말했다.
“아저씨, 이건 안 달아요.”
“그럼 달게 해 줄까?”
“아뇨. 저 달지 않은 거 좋아해요.”
철민은 얼떨떨한 얼굴로 박선규를 돌아봤다. 사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물어보길 잘했죠?”
철민은 그날 장부에 주문 수량과 환불 요청을 정확히 적었다. 남이 시키는 대로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고 책임지는 일이었다. 퇴근 직전에는 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과거 공제 세 항목은 아직 종결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빵집 근무는 계속합니다. 이 둘은 별개의 일입니다.'
예린은 그 문장을 읽고 회의 자료 첫 페이지에 예시로 쓸 수 있는지 허락을 구했다. 철민은 이름과 금액을 지우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좋은 사례니까 다 공개해도 된다는 건 아니죠.”
“맞습니다.”
지훈은 대답하며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시스템에서는 철민의 오래된 채무 관련 기록에 여전히 '정리 권장'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에 작은 안내가 나타났다.
[종결 미동의 사례: 수동 검토 대기]
적어도 그날은 누군가가 끝내지 않기로 한 일이, 끝나지 않은 채 남았다.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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