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린은 4,812건을 화면 한쪽에 쭉 늘어놓지 않았다. 목록에는 이름, 휴대전화, 근무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을 한 번에 다운로드하는 것부터가 또 다른 침해일 수 있었다.
“우리가 확인할 권한이 있는 자료부터 구분할게요. 기관 단위의 유형 정보와 당사자가 보내 준 기록은 분리합니다.”
예린은 구은정에게서 제공받은 비식별 집계표로 먼저 구조를 살폈다. 이미 취업이 끝난 기록, 아직 채용 절차에 있는 기록, 거절이나 휴직이 미확인으로 남은 기록. 같은 '정정 대상'이라는 말 아래 서로 다른 시간이 들어 있었다.
지훈은 한 칸을 짚었다.
“여긴 실제로 계약을 맺었고 일을 하고 있네요. 잘못된 보증만 정정해야 합니다.”
“여긴 계약이 없는데 시스템상으로는 배정 완료예요.”
“그리고 이건 누가 거절했는지 확인조차 안 됐고요.”
숫자를 셋으로 나누자 해결책도 셋으로 달라졌다. 지훈은 예전에 강철민이 작성했던 상담 양식을 꺼냈다. 학력과 경력보다 아래쪽에 적힌 작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대상자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 것.'
그때 문이 열렸다. 젖은 점퍼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다 계약 만료를 통보받았다는 조현태였다. 그는 구겨진 출입증 두 장을 내밀었다.
“이쪽은 회사에서 준 겁니다. 이쪽은 어제 자동으로 발급됐어요. 저 퇴사하지도 않았는데요.”
다른 회사 이름이 적힌 두 번째 출입증에는 '재배치 확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조현태는 새 근무지에 가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제가 다음 달까지 여기 남아 있을지 아직 회사와 얘기 중인데, 어디로 간다고 이미 정해진 거예요?”
지훈은 서류를 돌려주었다.
“실제로 정해졌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혹시 이 두 회사에 조회해도 괜찮으십니까? 제가 대신 이직을 신청하지는 않을 거예요.”
현태는 잠시 생각한 뒤 문의 범위를 직접 적었다. 현 직장의 계약 상태, 새 회사의 배치 근거. 그 외의 개인 경력은 전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점심 무렵 새 회사에서는 '전산상 배정 예정일 뿐 채용 확정은 아니다'라는 답이 왔다. 현 직장에서는 계약 갱신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회신했다.
“그럼 저는 오늘도 같은 건물에 출근해도 된다는 거죠?”
“근무표를 담당자에게 직접 확인하셔야 해요. 대신 배정 예정이 퇴사 확정으로 쓰이지 않도록 정정 요청은 넣을 수 있습니다.”
현태는 오래 쥐고 있던 출입증을 주머니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그거예요. 아직 정해진 게 아니라는 말.”
그가 나간 뒤 예린은 집계표 첫 줄에 새 항목을 추가했다.
[배정 예고와 당사자 결정의 구분 필요]
4,812건은 4,812개의 똑같은 파일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사정이 있었고, 아직 대답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지훈은 화이트보드 맨 위에 적었다.
'같은 숫자라도 같은 결론은 아니다.'
제1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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