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8화
PAYLUA ORIGINAL · 제18화

18화. 회장님, 면접 보시겠습니까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861자

오프라인 책장
"백도식이 제 상담 대상이었다고요?" 지훈은 컴퓨터 화면을 가리켰다. 예린은 파일의 출처부터 확인했다. 이메일 첨부로 온 문서는 수정이 쉬운 형식이었고, 작성자 정보는 비어 있었다.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은 있어도 이것만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 "누가 일부러 보내준 자료일 수도 있어요. 원본이랑 맞춰 봅시다." 지훈은 서정례에게 연락했다. 정례는 날짜를 들은 뒤 길게 침묵했다. "그날 상담 대상 중에는 특별 관리 요청자가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기록입니다." "백도식인지 아닌지만도 확인해 주실 수 없습니까?"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의 말은 때로 답답했다. 하지만 지훈은 자신이 그 원칙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백도식이 소개소로 찾아왔다. 경호원도 없이 혼자였다. 커다란 검은 우산을 든 채 빗속에 서 있었다. 아래층 빵집에서는 철민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박선규는 의료기관에서 추가 상담을 받으러 가게를 비운 상태였다. "면접 보러 왔네." 백도식이 말했다. 지훈은 농담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어떤 면접 말입니까?" "자네가 남들한테 해 주는 거. 직업 상담." 지훈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능력은 백도식의 적성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상담을 해 주면 가해자가 되돌려준다는 보장도 없고, 사무실에 들어오게 한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행위를 용서한다는 뜻도 아니었다. "상담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돈을 얼마 달라고?" "다른 사람의 계약서에 손대지 않는 것. 오늘 대화는 필요한 범위에서 기록하되, 동의하지 않은 사항은 공유하지 않는 것. 피해자들이 요구한 자료 제공은 별개로 처리하는 것." 백도식은 한참 지훈을 노려봤다. "조건이 많군."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백도식은 의자를 천천히 당겨 앉았다. 지훈은 빈 상담지를 펼쳤다. "어떤 일을 하실 때 시간이 잘 가는 줄 모르셨습니까?" 백도식은 비웃었다. "회사를 키울 때." "회사가 없던 때는요?" "오래된 시계 고칠 때." 예상치 못한 즉답이었다. 백도식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금속 시계를 꺼냈다. 유리가 금이 갔고 바늘 하나가 휘어 있었다. 그는 매일 품고 다니는 듯했다. "아버지 물건이야. 공장 다니실 때 쓰던 거지. 십 년 전부터 멈췄어." "직접 고치실 수 있습니까?" "옛날에는." 지훈은 백도식을 바라봤다. [백도식 / 고유 적성: 복원·수선 95.6%] [고유 기술 잠금: 보유 직무 과밀] [타인 직무 갱신 예정: 07:12:40] "누군가의 재능을 빌려 쓰는 동안 본인 재능이 묻힌 것 같습니다." "빌린 게 아니야. 계약했어." "계약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삶까지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백도식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처음엔 다들 나한테 고맙다고 했어. 일자리도 줬고 빚도 대신 갚아 줬지. 그런데 기술을 회수하고 나니까 사람들은 떠나려고 했어. 나만 남아 있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았거든." 지훈은 종이에 한 줄을 적었다. '운영을 유지해야 한다는 두려움.' "직원들이 떠나면 회장님이 정말 잃는 건 무엇입니까?" 백도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 겨우 입을 열었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지." 그의 말은 변명이었다. 동시에 그가 왜 다른 사람을 붙잡는지 알려 주는 단서이기도 했다. 백도식은 멈춘 시계를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 "어릴 때 동네 시계방에서 심부름을 했어. 주인이 버려진 시계를 주면 밤새 분해해 보곤 했지. 고쳐서 돌아가기 시작하면 참 좋았어." "왜 그만두셨습니까?" "돈이 안 됐으니까. 아버지 치료비를 마련해야 했고, 회사 차리는 사람이 돼야 했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내 말에 따르는 게 더 쉬웠지." 지훈은 그 이야기에 동정할 수는 있었지만, 거기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가난했던 사정이 직원들의 경력을 지운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시계를 다시 고치신다 해도 근로자들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알아." "당신이 원래 무슨 일을 하고 싶었는지는 상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빌미로 책임을 피하도록 돕지는 않겠습니다." 백도식은 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얼굴에는 화도 안도도 아닌,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질문 앞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훈은 상담지를 덮었다. "그럼 원래 하던 일부터 한 번 해 보실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다른 분들의 직무를 반환하고, 책임질 일은 따로 책임지셔야 해요." "반환은 내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줄 아나?" 백도식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시스템은 사람을 놓아주기 싫어해. 누군가 계약을 끝내면 다른 사람 이름으로 그 일을 보충해. 내가 그걸 멈출 수 있었다면 진작……" 그는 입을 닫았다. "진작 뭘 했겠습니까?" "내가 처음 빼앗은 사람에게 사과했겠지." 지훈은 느리게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백도식의 표정이 굳었다. "000번 이야기는 하지 마. 그건 내가 서명한 최초 계약이 아니야." 그 순간 지훈의 눈앞에 검은 창이 떠올랐다. [상담 대상자: 백도식] [자발적 직업 회복 의사: 확인 중] [경고: 반환 심사자는 상대방 대신 거절할 수 없음] 지훈이 고개를 들었을 때 백도식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회장님. 그러면 다음번 상담 때는 직접 고친 시계를 가져오시죠." "다음이 있을 줄 아나?" "그건 회장님이 결정하실 일이죠." 백도식은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주머니 속 멈춘 시계가 작게 딸깍거렸다. 밖으로 나간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지훈은 생각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을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손으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부터 시작될 수도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8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