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 직업소개소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월요일 아침부터였다.
문에 붙은 종이 때문이었다.
'새 출발 직업소개소 — 미래인력개발 이직자 명단 유출 의혹. 피해자 전원 확인 요청.'
지훈이 붙인 공지가 아니었다.
철민은 종이를 발견하자마자 떼려고 했지만 예린이 멈췄다.
"먼저 사진. 그리고 건물 관리인에게 언제 붙었는지 확인해요."
"남들이 우리 보고 정보 빼돌렸다고 하는데 그걸 그냥 두라고요?"
"그냥 두자는 게 아니라 사실부터 남기자는 거예요."
지훈은 차분하게 출입문을 열고 찾아온 사람들을 안내했다. 화가 난 사람도 있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새어 나간 게 맞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미래인력개발 관계자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 여기에 자료를 보냈다던데요?"
"당사자가 직접 제공한 자료만 상담에 사용했습니다.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공개한 적은 없습니다."
"그걸 누가 믿어요?"
지훈은 서둘러 믿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기록을 확인하실 수 있도록 안내드릴게요. 다만 다른 분의 자료까지 보여 드릴 수는 없습니다."
예린은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의 종류를 설명했다. 연락망은 참여자가 동의한 범위에 따라 나뉘어 있었고, 실제 계약 자료는 당사자 본인이 소지하거나 별도로 요청한 것이었다. 적어도 현재 확인된 운영기록에는 외부로 일괄 전송한 흔적이 없었다. 이것만으로 유출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 별도의 점검도 진행하기로 했다.
오전 열한 시, 지훈은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이름 없는 발신자가 보낸 게시글 갈무리였다.
'도망간 직원 12명, 새 출발 상담소에 모였다.'
지난 회의 참석자는 그보다 적었다. 숫자 열둘은 백도식이 보낸 종이에만 등장했던 숫자였다. 지훈은 당사자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게시글 출처와 협박 정황을 증거로 보관했다. 그 자리에서 참석자 목록을 확인하자고 요구하는 사람은 정중히 돌려보냈다.
"이젠 어떡합니까?"
김지연이 물었다. 자기 아이 이름까지 퍼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장 공개할 이유가 없는 건 공개하지 않습니다. 대응은 필요한 기관과 전문가 도움을 받아 하겠습니다."
지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기 이야기를 알려 달라고 마음먹었던 날이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알려 줘야 하는 날은 아니었다.
점심 무렵 한미숙이 찾아왔다. 미숙은 가게 앞에 붙은 종이를 보고 들어오기를 망설였다고 했다.
"내 이름도 있는 거 아니에요?"
"현재 붙어 있는 공지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도 불안하시면 오늘은 상담을 미루셔도 됩니다."
미숙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학교 급식실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누군가 과거 직장을 알아보고 거절할까 봐 두려웠다.
"예전엔 아이들 밥을 잘 해 줬어요. 그런데 갑자기 손이 안 움직이고 나니,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들 하더군요."
"지원서를 쓰기 전에 지금 가능한 일부터 같이 정리해 봅시다. 안전교육과 업무 적응도 알아보고요."
미숙은 상담지의 '원하는 근무 환경'란에 또박또박 썼다. '아이들 얼굴이 보이는 곳.'
지훈은 그 말 그대로 기록했다. 그녀가 평생 돌아갈 수 없는 직업을 꿈꾸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시 도전할 기회가 필요했다.
오후가 되자 오민규가 한 장의 지원서를 들고 왔다. 누군가 그의 예전 주소로 보냈다는 편지였다.
'채용 지원서 — 오민규.'
지원 직무는 시설 경비였고, 회사는 미래인력개발의 관계사였다. 민규는 지원한 적이 없었다.
"제 이름이랑 생년월일은 맞아요. 하지만 서명이 제 것과 달라요."
예린은 서명을 자세히 보았다. 오 년 전 오지훈 계정 생성자료에 있는 필체와 같았다. 글자 끝마다 길게 올라가는 독특한 획까지 일치했다.
"이거 컴퓨터에 저장된 서명 이미지를 돌려 쓴 것 같아요. 다만 누가 언제 사용했는지는 원본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지훈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필체와 닮은 서명도 누군가가 직접 따라 쓴 게 아닐지 모른다. 그때의 글씨를 한 번 추출해 여러 문서에 붙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설명하려는 순간, 민규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식품공장 채용 담당자였다.
"오늘 시연 일정 그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민규는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은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네. 갑니다."
민규가 말했다.
그들은 공격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민규가 스스로 잡은 기회까지 빼앗겨서는 안 됐다.
저녁 여섯 시, 민규는 실무 평가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비의 비정상 진동을 설명하는 방식이 좋았다는 평가였다. 서류 검증과 근로조건 확인은 남아 있었지만, 누군가 처음으로 그의 손을 경력 없이 바라봐 준 날이었다.
같은 시각 지훈의 컴퓨터에 파일 하나가 도착했다.
제목은 '상담 기록 019'.
내용은 흰 화면 한가운데 문장 한 줄뿐이었다.
'지원자: 백도식. 상담 결과: 본인의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음.'
그리고 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오 년 전 4월 17일.
제1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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