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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6화
PAYLUA ORIGINAL · 제16화

16화. 내가 잃어버린 직업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573자

오프라인 책장
오 년 전 행사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지훈은 옛 사진을 다시 찾아봤다. 체육관을 빌려 마련한 취업 박람회, 플라스틱 의자,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영업팀 대리였던 그는 거래처 지원 요청을 받고 그곳에 하루 파견됐었다. 당시에는 안내 데스크를 맡았다고만 기억했다. 그런데 사진 속 자신은 한 사람과 마주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기억이 안 납니까?" 예린이 물었다. "얼굴도 잘 안 보입니다. 행사 끝나고 회식한 건 기억나는데, 저 장면은 전혀요." "기록이 없다기보다는 기억할 일이 아니라고 여긴 걸 수도 있죠.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공백이 초능력 탓은 아닐 것이다. 그날 오후 오민규가 상담소를 다시 찾았다. 그에게는 새로운 구직 제안이 있었다. 지훈이 연결한 소규모 식품공장에서는 서류상 경력은 확인이 어려워도, 안전한 장비 상태 점검 시연과 면접을 통해 채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물론 경력·임금 조건은 문서로 별도로 검토할 예정이었다. 민규는 들뜬 표정으로 말하다가 지훈의 수첩을 보고 멈췄다. "그거, 어머니 글씨 아닌가요?" "제 수첩입니다. 글씨도 제 것이고요. 다만 여기 적힌 성함이 어머니와 같은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민규는 작은 종이를 자세히 살폈다. '혜숙'이라는 이름 아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맞아요. 예전 번호예요. 엄마가 오래전에 쓰던 번호." 지훈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물었다. "어머님이 일하던 상담센터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었어요. 엄마는 집에서 늘 말했죠. 직업은 월급만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사는 방식이라고요." 민규는 가방에서 낡은 색연필 한 자루를 꺼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주었다는 물건이었다. "옛날에 제가 기계 설계도를 그려 왔더니 엄마가 이걸 주셨어요. 제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건 해 보라고요." 지훈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 취업 박람회 소란 속에서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 일을 해야 합니까?' 그때 지훈이 대답했다. '제가 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다른 선택지도 알려 드리면 되죠.' 짧은 장면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던 여성의 손등에 보라색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는 것까지 기억났다. 지훈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능력이 발현되기 훨씬 전에도 그는 직업 상담의 핵심을 잠깐 이해했었다. 그 경험이 왜 계약서에 남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민규는 상담실 한쪽에 세워 둔 낡은 선풍기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회전할 때마다 짧게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건 축이 헐거워진 것 같은데요." "고쳐 줄 수 있습니까?" "전기 코드부터 뽑고 점검해야 해요. 제가 장비 자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니 함부로 분해하면 안 되고요. 다만 소리가 나는 위치 정도는 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규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진동을 듣고 손가락으로 선풍기 지지대를 가리켰다. 예린이 나중에 관리업체에 문의하겠다며 증상을 적었다. "그런 걸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합니다." 지훈이 말했다. 민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제가 배운 일이니까요. 저한테 특별한 재능이 있다기보다, 원래 했던 일을 기억하는 거예요." 지훈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남이 놀랄 만한 장점이 있겠지만, 그 장점을 마법 같은 수치로만 설명하는 것도 사람을 작게 만드는 일이었다. 민규에게는 경험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시간이 있었다. 예린은 민규가 가져온 자료를 본인 동의 아래 정리했다. 어머니가 남긴 공책 표지에는 '거절 목록'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첫 장에는 000이라고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상담 거절자는 불이익 없이 돌아갈 수 있다. 우리 센터가 처음 지켜야 할 약속.' 다른 페이지에는 상담을 거절하고 돌아간 사람들의 이름 대신 날짜만 적혀 있었다. 지훈은 이름을 남기지 않은 이유를 조금 이해했다. 기록이 나중에 또 다른 협박의 자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이 공책을 왜 주셨습니까?" "제가 집을 떠날 때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증거를 남기되, 다른 사람 개인정보로 싸우지 말라고 하셨어요." 민규가 낮게 덧붙였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마지막 문자에는 딱 하나만 쓰여 있었어요."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 줬다. '오지훈에게 19번째 종이를 보여 줘.' "19번째 종이가 뭡니까?" "모릅니다. 엄마 공책에는 열여덟 장밖에 없어요." 지훈은 수첩의 '상담 완료 19건'을 다시 떠올렸다. 한 장이 사라졌고, 그 종이가 자신의 명의로 된 계약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바로 그때 지훈 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누락된 상담 기록 감지] [19번: 취업 알선 거절] [서명 권한: 등록되지 않음] [보존 위치: 118번 반환 심사자] 지훈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제 기록을 찾아야겠네요." 예린이 말했다. "그러되 혼자 하지는 맙시다." 그 말에 민규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구하러 왔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가진 자료로 다른 사람의 출발을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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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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