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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5화
PAYLUA ORIGINAL · 제15화

15화. 공란에 남은 이름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750자

오프라인 책장
지훈은 제1조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지 서정례에게 물었다. 정례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단, 출석부 전체를 찍어 다른 참석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지훈은 해당 문장과 날짜만 촬영했다. "이 조항이 원래부터 있었습니까?" "있었죠. 원래는 이게 맨 앞에 적혔어요." "그런데 왜 지금 회사 계약서는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까?" 서정례는 먼저 백도식의 눈치를 살폈다. 회장은 창밖만 보고 있었다. "서류가 한 번에 바뀌지는 않았어요. 구직자가 일터를 옮길 때 도움을 주던 단체가, 점점 사람을 옮기지 못하게 붙잡는 곳이 됐습니다." 서정례가 오래된 출석부를 펼쳐 보였다. 십팔 년 전 종이 한 장에는 스무 명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맨 아래 서명이 유독 흐렸다. '000 / 거절 접수자 / 이름 보류.' 그 옆에는 다른 필체의 메모가 있었다. '동의서를 쓰지 않아도 상담 받을 수 있는지 반드시 안내할 것.'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린이 물었다. 서정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기록상 이름을 알려 드릴 권한은 없어요. 살아 있는 분의 개인정보니까요. 대신 당사자가 원한다면 직접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지훈은 그 답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억울하게 이름을 도용당한 사람이니 다른 사람의 이름까지 함부로 열어 볼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서정례는 본인 경험을 이야기했다. 다시일터 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직원들은 폐업한 공장의 근로자에게 다른 일을 찾아줬다. 누군가는 십 년 일한 기계 대신 나무를 다듬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평생 못 배운 글자를 배우겠다고 했다. "그분들이 실패해도 다시 오실 수 있게 하는 게 우리 일이었어요." "그럼 그때도 사람의 적성이 보였습니까?"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잘 맞는 자리를 알아채는 상담사가 한 분 있었지요." 지훈의 심장이 빨라졌다. 서정례가 지훈을 보았다. "그분은 사람한테 재능이 있다고 말할 뿐,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최경원이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오지훈 씨 계정 관련 문서 가운데 제공 가능한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개인 명의가 들어간 사용 이력과 관련 승인 요청서입니다. 다른 직원 정보는 가렸습니다." 지훈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오 년 전 행사 명단이었다. 열아홉 명에게 취업 상담을 보조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때 한 중소기업에서 행사 부스 설치를 도와준 기억은 있었다. 동료가 아파 대신 간 하루였다. 상담을 했다는 기억은 없었다. 종이 아래에 손으로 적힌 글자가 있었다. '오지훈 / 소속은 영업팀 / 응대가 좋으니 상담 대체 가능.' 바로 옆에 작은 직사각형 도장이 찍혀 있었다. '대리 동의 처리.' "이건 제 서명이 아니네요." 지훈이 말했다. 최경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본상 참석 확인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관 과정에서 계약 승인으로 입력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확인되는 범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 말은 지훈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누군가 그의 필체를 따라 써서 계약을 만든 것이 아니라, 행사 출석 기록을 계약처럼 취급한 것이다. 다만 왜 그 뒤에 가짜 서명 이미지가 생겼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대리 동의가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저희도 조사하겠습니다." 백도식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조사를 좋아하나 본데, 내가 무너지면 직원들 월급은 누가 주지?" 지훈이 그를 돌아봤다. "그 책임 때문에 직원들이 평생 떠날 수 없다는 말은 안 됩니다. 정상적인 지급과 정산은 계속해야죠." 백도식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정태식은 건물 앞 벤치에 앉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제가 계약서를 만들었을 때는 늘 좋은 일인 줄 알았습니다. 서류가 정확하면 월급이 제대로 나오고,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생각까지 틀린 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자기 서류를 보지도 못했어요. 묻기만 해도 문제 직원이 됐고요. 저는 그걸 정리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지훈은 태식 옆에 앉았다. "그동안 남긴 공책이 지금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태식 씨가 했던 일에 대한 책임은 별도로 확인해야겠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거고요." 태식은 자기 공책 첫 장에 날짜를 새로 적었다. 오늘 날짜였다. 그 옆에 '다시 증언하기 시작한 날'이라고 썼다. 지훈은 그것이 태식의 새로운 직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스스로 멈춰 있던 기록을 이어 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지훈은 오 년 전 사용하던 수첩을 꺼냈다.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넣어 둔 낡은 물건이었다. 행사 날짜를 확인하니 한쪽 모서리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무슨 일을 잘하는지보다,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묻기.' 자기 필체였다. 그 아래는 더 작은 글씨. '혜숙 씨에게 연락하기. 공란은 빈자리가 아니라 거절의 자리.' 지훈이 수첩을 내려놓았다. 혜숙. 그 이름은 어제 찾아온 오민규의 어머니와 같았다. 하지만 성급하게 같은 사람이라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그는 민규에게 당장 전화를 걸지 않았다. 먼저 수첩의 날짜와 다른 단서를 확인했다. 수첩 마지막 장에는 오래된 전화번호와 약속이 있었다. '상담 기록이 누군가의 계약서가 되면 안 된다.' 지훈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자신이 잃은 것은 특별한 능력만이 아니라, 한때 이미 알고 있었던 원칙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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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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