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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4화
PAYLUA ORIGINAL · 제14화

14화. 빼앗은 직업의 무게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500자

오프라인 책장
백도식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회의실 전자시계에는 시간 대신 질문이 떠 있었다. [당신은 누구의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최경원이 전원 코드를 뽑았다. 시계의 숫자가 꺼졌다가, 벽면 유리판 위에 똑같은 글씨가 비쳤다.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이런 걸 보여 주려고 날 불렀나?" 백도식이 소리쳤다. 노년 여성은 출석부를 덮지 않았다. "회장님에게 묻고 있습니다. 답하시면 됩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직원 직무를 관리하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답변 불충분] 백도식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오른손이 잠깐 굳었다. 그는 손가락을 펼치려고 애썼다. 지훈의 눈에는 백도식의 정보창이 처음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백도식 / 고유 직업 적성: 복원·수선 95.6%] [현재 사용 중인 직무: 인력 지배, 위험 예측, 협상, 설비 운영 외 114건] [자기 직무 표현 가능 수준: 4%] 지훈은 목이 메었다. 다른 사람의 재능을 가져가며 사는 사람도 자신의 직업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원래 물건을 고치는 일을 잘했군요." 백도식이 그를 노려봤다. "뭐라고?" "고치고, 맞추고, 원래 쓰이던 자리를 찾아 주는 일요." 순간 백도식의 표정이 흔들렸다. 손가락 사이로 작은 금속 부품 하나가 굴러나왔다. 단추보다 작은 시계 태엽이었다. 그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주워 엄지손톱으로 휘어진 곳을 눌렀다. 그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고유 직무 반응 확인] [타인 직무 사용량 117 / 117] [유지 계약 갱신: 18시간 후] 백도식은 황급히 부품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만하지." 노년 여성이 말했다. "그만하고 싶으시면 계약의 조건을 확인해 주십시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렸는데!" "사람에게 급료를 줬다는 것과 그 사람의 재능이 회장님 소유라는 건 다릅니다." 여성의 말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백도식은 반박하지 못했다. 백도식이 주머니 속 태엽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작은 금속이 몇 번 돌아갔다. 지훈의 눈에는 그 움직임이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워 보였다. "고치는 걸 좋아하셨습니까?" 지훈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고쳤던 게 아니라, 계속 고치려고 했지. 아버지가 고장 난 걸 절대 버리지 않으셨거든." 백도식은 자기가 한 말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스무 해 동안 숨긴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온 사람의 표정이었다. 서정례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다른 길도 고를 수 있었겠지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도 고를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은 게 문제지요." 백도식은 태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작은 금속 소리가 넓은 회의실에 울렸다. 누구도 그것을 줍지 않았다. 그의 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을 다시 집을지는 오직 백도식 자신이 결정할 일이었다. 예린이 방문 목적을 다시 확인했다. "저희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러 온 게 아닙니다. 오지훈 명의의 기록과 당사자들이 요청한 서류를 받을 수 있는지 답해 주세요." 최경원은 어지러운 표정으로 컴퓨터를 열었다. 전자시계의 글씨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는 118번 계정의 생성 이력을 출력했다. '생성일: 5년 전 4월 17일.' '최초 승인: 자동 이관.' '승인 근거: 대체 동의.' "대체 동의가 뭡니까?" 지훈의 질문에 최경원은 종이를 넘겼다. "옛날에 상담을 도와준 사람이 서명하지 않으면 행사가 운영되지 않는다며, 관리자가 참석자 명단으로 동의를 갈음했다고 돼 있습니다." "제 명의로 그런 처리를 누가 승인했죠?" "당시 관리 책임자 확인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인사팀에도 원본이 없습니다." 노년 여성이 처음으로 명함을 건넸다. '서정례 / 기록확인인.' 그녀는 미래인력개발 직원이 아니었다. 오래전 다시일터 센터에서 수기 기록을 관리하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외부 기록 보존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왜 도와주십니까?" 지훈이 묻자 서정례가 말했다.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증인이 되러 왔어요. 오래전에 제가 본 것을 이제는 말해야 하거든요." 정례는 출석부 한 페이지를 펴 보였다. 그곳에는 000번 옆에 굵게 그어진 빨간 선이 있었다. "이건 최초 계약자의 이름이 아닙니다. 최초로 계약을 거절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당시에는 누구도 거절을 거절이라고 적을 생각을 못 했지요." 태식이 숨을 삼켰다. "그런데 왜 그 번호가 권한자로 뜹니까?" "그 질문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어요." 서정례는 백도식을 바라봤다. "회장님, 원래 그 사람이 하기로 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백도식은 입술을 다물었다. "대답해 보세요." 그는 아주 작게 말했다. "거절할 권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 그 말이 끝나자 서정례의 출석부에서 종이 한 장이 저절로 들렸다. 그 아래 새로 나타난 문장은 간결했다. [원본 계약의 제1조: 직업 선택은 당사자의 자유다] 백도식은 그 문장을 보자 처음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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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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