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력개발 본사 입구에는 거대한 구직자 채용 광고가 걸려 있었다.
'당신의 미래를 책임집니다.'
지훈은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로처럼 들렸을 문구였다. 이제는 누가 누구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건지 묻게 됐다.
그날 면담에는 지훈과 예린, 정태식이 참석했다. 강철민은 가겠다고 했지만, 참석자가 불필요하게 늘면 민감한 자료가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에 빵집에서 박 씨의 업무를 돕기로 했다. 외부 노무사는 회사와 직접 협의할 노동 관련 사안에 대비해 별도 일정을 잡았다.
보안 데스크 직원은 지훈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얼굴을 굳혔다.
"오지훈 실장님…… 맞으십니까?"
"실장이 아닙니다. 면담 요청자예요."
직원은 모니터를 다시 보았다.
"내부 계정에는 기록실 책임자로 표시됩니다. 그런데 출입증 발급 이력이 없네요."
예린이 말했다.
"오늘 발급되는 방문증에는 방문자라고 표시해 주세요. 저희가 동의하지 않은 직함은 쓰지 말아 주십시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임시 방문증을 건넸다. '방문자 오지훈'. 지훈은 그 작은 종이를 오래 바라봤다. 자신의 이름이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태식은 층수 표시를 놓치지 않고 봤다. 예전에 매일 오르내리던 건물이었다. 그때는 이 문이 열리기만 해도 심장이 빨리 뛰었다고 했다.
"괜찮으세요?"
지훈이 묻자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그래도 한 가지 부탁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제 딸 이름이 나오면 그 부분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예린이 회의 진행 메모에 그 요청을 추가했다. 필요하면 면담을 중단하고 밖에서 다시 상의하자고도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복도 끝 유리벽 너머로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중 누가 계약의 피해자인지, 누가 관리자이고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지훈은 그 사실부터 기억하기로 했다. 이 건물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편인 것은 아니었다.
4층 회의실에는 백도식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단정한 양복을 입었지만, 지훈이 들어오자 손목시계를 먼저 확인했다.
"빨리 왔군."
"면담 시간을 지켰을 뿐입니다."
"그런 데서는 늘 성실하단 말이지."
백도식의 오른편에는 인사팀장 최경원이, 왼편에는 낯선 노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여성은 회색 카디건과 낡은 구두를 신었다. 책상 위에 놓인 것은 태블릿도 계약서도 아닌 오래된 출석부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면담의 기록 확인인입니다."
그녀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지훈이 정식 면담 요청서를 펼쳤다.
"첫째, 제 동의 없이 만들어진 계정과 계약기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둘째, 제 이름이 들어간 외부 용역 문서의 작성 경위를 알려 주십시오. 셋째, 이 모든 내용의 열람 기록을 남겨 주십시오."
최경원은 준비된 답변을 읽었다.
"보안상 원본 전체 제공은 어렵습니다."
"전체 제공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 개인정보와 제 명의로 처리된 사항부터 확인하자는 겁니다."
예린이 말을 거들었다.
"다른 근로자 정보는 가려 주셔도 됩니다. 누구의 자료를 열람하는지 명확히 구분하겠습니다."
백도식이 짜증스럽게 펜을 두드렸다.
"그래서 오늘 끝장내자는 건가?"
그때 노년 여성이 출석부를 펼쳤다.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여기 앉은 분들 가운데 스스로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최경원은 헛기침했다. 백도식은 웃으려다 멈췄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여성이 다시 물었다.
"그럼 누가 다른 사람의 직업을 대신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침묵이 이어졌다.
지훈은 여성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이름: 표시 불가]
[직업 적성: 상담 기록 보존 99.4%]
[표현 가능 수준: 12%]
[상태: 본인 직업을 스스로 말할 수 없음]
그녀는 아주 잠깐 지훈과 눈을 마주쳤다. 무언가를 알아본 표정이었다.
백도식이 낮게 말했다.
"질문이 많군. 우리가 협상하러 모인 줄 알았는데."
"협상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여성은 출석부를 넘겼다. 종이에 묻은 오래된 잉크 냄새가 풍겼다.
"오지훈 씨. 당신 계정이 처음 만들어진 날짜를 알고 계시죠?"
"오 년 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날 무엇을 하셨는지는요?"
"직장에 다녔습니다. 영업팀에서 일했어요."
여성은 펜 끝으로 한 줄을 가리켰다.
'오지훈 — 자원 상담 도우미. 상담 완료 19건.'
기록에는 지훈의 서명이 없었다. 대신 출석 확인란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저는 이런 일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참석자의 동의 없이 상담 내역을 다른 시스템으로 옮기는 일이 있었으니까요."
예린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 옮겼습니까?"
최경원이 답하려던 순간, 회의실 스피커에서 삐 소리가 울렸다.
[원본 권한 검증 시작]
붉은 글씨가 회의실 벽의 전자시계에 번져 나타났다. 이번에는 지훈뿐 아니라 모두가 보고 있었다.
[피검증자: 백도식]
[검증 질문: 당신은 누구의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백도식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노년 여성이 처음으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회장님 차례입니다."
제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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