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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2화
PAYLUA ORIGINAL · 제12화

12화. 쉰두 번째 이력서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816자

오프라인 책장
본사 면담을 하루 앞둔 아침, 새 출발 직업소개소 우편함에 두툼한 봉투가 들어 있었다. 보낸 사람은 없었고, 받는 사람만 또렷했다. '오지훈 상담사 앞.' 지훈은 곧바로 열지 않았다. 예린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 사실을 알리고, 봉투 겉면을 촬영했다. 봉투에는 우체국 소인도 없었다. 건물 관리인에게 물으니 새벽 여섯 시 전에 우편함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럼 누군가 직접 넣었겠네요." 예린이 와서 봉투를 살폈다. 안에는 이력서 양식 쉰두 장이 있었다. 모두 직전 경력란만 하얗게 비어 있었다. 어떤 종이는 아예 그 부분이 가위로 오려져 있었다. 종이마다 번호 하나씩 적혀 있었는데 001부터 052까지였다. "직원 개인정보는 없어요." 지훈이 말했다. "그래서 더 이상해요. 일부러 번호만 남겼네요." 마지막 종이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번호 아래에 손글씨 한 줄. '52번은 아직 자기 일을 기억합니다.' 지훈은 전화를 걸기 전에 노무사에게 자료 취급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익명 자료 자체를 보관할 수는 있지만, 당사자의 신원이 드러나면 동의 없이 공유하지 말라는 답을 받았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성이고, 목소리는 마른 종이처럼 거칠었다. "새 출발 소개소입니까?" "네. 오지훈입니다. 봉투를 보내셨나요?" "보낸 사람을 물으실 거면 끊겠습니다." "번호만 적힌 자료를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돌려드리면 좋을지 알고 싶어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52번을 만나세요. 그 아이가 아직 나를 기억하거든요." 통화는 끊겼다. 그날 예린은 쉰두 장을 다시 세며 종이의 상태를 관찰했다. 처음 스무 장은 누렇게 변해 있었고, 스물한 장부터는 하얀 복사용지였다. 끝의 일곱 장은 종이 가장자리가 일정하게 잘려 있었다. "한 번에 만든 게 아니에요. 수년 동안 양식이 바뀐 흔적이 있어요." 지훈은 그 말을 듣고 첫 번째 이력서를 펼쳤다. 직전 경력란이 비어 있지만, 하단의 질문은 남아 있었다. '일하고 싶지 않은 환경이 있습니까?' 중간쯤 번호에는 질문이 달라져 있었다. '회사 지시에 따를 수 없는 사유가 있습니까?' 마지막 양식에서는 질문 자체가 사라졌다. 대신 '장기 근무 확약'란만 커져 있었다. "같은 이력서인데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네요." "자료만으로 누가 왜 바꿨는지 알 수는 없지만요." 지훈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도록 투명 파일에 한 장씩 넣었다. 증거가 될지도 모를 서류였다. 무엇보다 누군가 잊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지켜 온 흔적처럼 보였다. 오후 찾아온 사람은 스물세 살 청년 오민규였다. 낡은 운동화에 면접용 셔츠를 입었고, 손에는 이력서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제가 쉰두 번째예요." 지훈은 먼저 의자를 권하고, 원하는 상담이 무엇인지 물었다. "일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이력서를 내면 회사들이 제 경력을 믿지 않아요. 경력 확인서가 전부 공란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기계를 다룰 줄 압니다." 그의 손끝에는 미세한 기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슨 기계요?" "식품 공장 충전기요. 용기가 지나갈 때 딱 맞춰 원료를 넣는 기계요. 소리만 들어도 어떤 부분이 헐거워졌는지 알 수 있어요." 지훈이 그를 바라보자 글씨가 떠올랐다. [오민규 / 잠재 적성: 설비 유지보수 97.3%] [표현 가능 수준: 91%] [공식 경력: 열람 불가] [직무 소유권: 등록되지 않음] 지훈은 놀랐다. 그동안 본 피해자들은 적성이 잠겨 있었지만, 민규는 기술이 살아 있었다. 대신 그 기술을 증명할 기록이 사라져 있었다. "회사에서 일한 적은 확실합니까?" "네. 그런데 주소를 찾아가면 그런 공장은 없었다고 해요." 민규는 자신의 동의를 확인한 뒤 수첩을 펼쳤다. 공장 내부의 배관 배치, 교대시간, 동료 별명이 적혀 있었다. 사진도 몇 장 있었다. 다만 그 사진 속 작업복에 인쇄된 회사 이름만 흐릿했다. "이렇게 적은 이유가 있어요?" "엄마가 그러셨어요. 손이 기억하는 건 머리가 잊어도 남는다고요." "어머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상담이요. 일자리 알아봐 주는 일이었어요." 민규는 무심코 말했지만 예린의 손이 멈췄다. "어머님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답하기 어려우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오혜숙입니다." 지훈의 눈에 새 창이 뜨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보이는 능력만으로 가족관계까지 읽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민규가 구겨진 종이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오래전에 써 준 취업 준비 메모였다. '일자리를 빼앗겼다면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해 보렴. 누가 너를 채용하지 않더라도 네 손은 네 것이다.' 그 글씨는 오래된 '다시일터 직업지원센터' 기록에 적힌 문장과 매우 닮아 있었다. "어머님은 지금 어디 계세요?" 민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난달부터 연락이 안 됩니다. 실종 신고는 했고요. 경찰은 찾고 있습니다." 지훈은 섣불리 돕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에 제출한 자료 외에 공개할 수 있는 연락처와 마지막 연락 날짜를 본인 동의를 받아 적었다. 면담이 끝날 때 민규는 고개를 숙였다. "저 같은 사람을 채용할 곳도 있습니까?" "확인해 봅시다. 실제 실무 능력을 보여 줄 안전한 방식이 있는지도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이상한 전화를 받았어요." "무슨 전화죠?" "누가 그러더군요. 오지훈에게 절대 000번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요." 지훈의 가슴이 철렁했다. "민규 씨가 그 번호를 알고 있습니까?"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공책 첫 장에 적혀 있었어요." 그리고 뜻밖의 말을 했다. "000은 사람 번호가 아니에요. 처음으로 '거절'한 기록의 번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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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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