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기록 보관기관의 담당자는 먼저 두 개의 숫자가 다른 뜻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 인원 열 명과 접수 문서 아홉 건이 반드시 모순인 건 아닙니다. 공동 서류가 있을 수도 있고, 참가자 한 명이 이후 철회했을 수도 있어요. 원본 열람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지훈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추측을 진실로 바꾸지 않기 위해서였다.
보관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문서는 상자 단위의 목록이었다. 000-0 표지 아래 아홉 건의 개인 서류와 한 건의 회의록이 함께 보관됐다고 표시돼 있었다.
"회의록이 열 번째일까요?"
예린이 물었다.
"그렇게 분류된 건 맞습니다. 다만 참가자 기록인지 회의 자료인지는 내용 확인이 필요합니다."
오후 늦게 열람이 허용된 회의록에는 예상 밖의 문장이 있었다.
'제10 대상자는 배정 결과가 아닌 처리 원칙에 대한 이의를 제출함. 개인 직업 적성 자료는 수집하지 않음.'
지훈은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열 명이 모두 직업을 추천받기 위한 실험 대상은 아니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실험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까?"
"이 기록에는 실명이 없어요. 공개 범위 안에서는 번호만 확인 가능합니다."
[000-0-10 / 참여 유형: 원칙 이의 제기]
[의사: 후속 자동 배정 반대]
[본인 동의 없는 결과 이전 금지 요청]
예린은 10번 항목의 작성 시각을 다른 자료와 대조했다. 오혜숙이 수정한 교정본보다 앞선 날짜였다. 그렇다고 10번이 혜숙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혜숙 역시 자신이 누구의 이의를 반영해 문장을 고쳤는지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심경아는 전화를 받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그 사람이 있었군요. 제가 그 자리를 비워 달라고 했던 이유가 기억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기록을 본인이 공개하길 원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지훈도 캐묻지 않았다. 열 번째 사람의 신원을 알지 못해도, 그 사람이 남긴 원칙이 지금의 자료를 검증하는 데 쓰일 수는 있었다.
그때 황주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회의록을 봤소?"
"네. 열 번째 사람의 의견이 있었더군요."
"나는 그 사람이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소. 적성만 맞추면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황주석이 숨을 내쉬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소. 하지만 내가 만든 구조가 아직도 그런 가정 위에서 돌아가고 있소."
지훈은 회의록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기계로 인쇄된 문장이 아니라 손으로 쓴 문장이 있었다.
'좋은 직업을 정해 주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도움을 거절할 자유가 없다면 강제 배정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정 시각만 기록된 작은 표가 붙어 있었다.
[수정 후 상태: 실험 종료]
[후속 처리: 원칙 검토 미완료]
실험이 끝났다는 말은 원칙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날 밤, 예린의 메일함으로 외부 운영사 내부 공문 사본이 도착했다. 발송인 정보를 확인한 뒤 은정에게 원본 진위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문 제목은 짧았다.
'000-0 관련 이의 미종결 건의 일괄 확정 방안.'
회의 날짜는 내일이었다.
제17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