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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70화
PAYLUA ORIGINAL · 제170화

170화. 지워지지 않는 보류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532자

오프라인 책장
다음 날 새벽, 오지훈은 문세영에게서 짧은 전화를 받았다. "어제 회사 안전 담당자가 연락했습니다. 제 말만 듣겠다는 것도 아니고, 전산 기록만 믿겠다는 것도 아니라더군요. 현장 점검표를 대조해 보겠답니다." "다행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세영 씨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시죠." "제가 틀렸다고 나오면요?" "그것도 남겨야죠. 다만 어떤 근거로 틀렸는지 함께요." 전화를 끊은 지훈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몇 달 전이라면 그는 능력의 숫자를 보고 정답을 알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두는 일이, 누군가를 돕는 첫 단계일 수 있었다. 오전 회의에서 구은정은 현재까지 확인한 결과를 정리했다. 재단의 실물 보관 장부는 임의 폐기 대상에서 빠졌고, 여섯 개 연동기관은 말소 결과를 원본의 부재 증명으로 쓰지 않기로 했다. 운영사는 검색이 끊긴 자료에 대해 '기록 없음' 대신 '보관 여부 확인 필요'라는 안내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제 끝난 겁니까?" 철민이 물었다. 은정은 고개를 저었다. "원천 인덱스 일부는 이미 정리됐고, 다른 연동기관은 아직 방침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원본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사례도 많아요. 이번에 막은 건 확인 중인 자료를 곧장 '없었던 사실'로 확정하는 흐름의 일부예요." 혜숙은 그 말을 듣고 직접 작성한 확인서를 꺼냈다. 오래된 원칙의 수정 이유, 인쇄소와 재단의 자료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신이 기억하는 범위만 적었다. 확신하지 못하는 연도에는 '추정'이라고 썼다. "원칙은 다른 사람도 읽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제 기억이 언제나 정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기록과 맞춰 주세요." 지훈은 그녀가 허락한 한 장을 서류철에 끼웠다. 000번을 구한 것은 한 사람의 선언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보관자들이 자신이 아는 만큼만 말하고, 모르는 부분을 비워 둔 결과였다. 오후에는 작은 축하가 있었다. 문세영의 업체가 설비의 정밀 점검에 들어가며 기존 자동 이력을 그대로 재사용하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안전이 확인됐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확인 없이 운전하라는 지시가 내려가지는 않았다. 강철민은 아래층에서 고소한 소금빵을 가져왔다. 어제 냉장고가 고장 났을 때 다른 곳에 옮겨 안전하게 보관했던 반죽으로 만든 빵이었다. "그 반죽, 전부 버려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까?" 예린이 물었다. "확인해 보니 일부는 쓸 수 있었습니다. 아닌 건 버렸고요. 한꺼번에 처리하면 편할 텐데, 맛이 달라요." 지훈은 빵을 반으로 나눴다. 그때 문득 원본과 수정본을 전부 하나로 묶어 버렸던 황주석의 도표가 떠올랐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다른 것을 같다고 표시하는 순간, 누군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보이지 않게 됐다. 그날 저녁 예린은 말소 관련 자료의 최종 점검표를 만들었다. [000번 원칙 관련 실물 문서: 보관 주체 확인] [검색 연결 해제 내역: 복구·정정 절차 검토 중] [제10 기능 자동 말소: 일부 연동기관 사용 제한] [미확정 기록: 미확정 상태 유지] "완료라는 글씨가 없네요." 지훈이 말하자 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만들었어요. 완료되지 않은 일을 완료됐다고 쓰지 않으려고요." 지훈은 수첩의 맨 뒤에 새 문장을 적었다. '보류는 포기가 아니다. 본인이 결정할 자리를 남겨 놓는 것이다.' 늦은 밤, 마지막 손님이 돌아간 뒤 소개소 문이 다시 열렸다. 민재호였다. 그는 공식 절차에 따라 열람 가능한 목록만 가져왔다. 그가 들고 온 종이 위에는 다른 문서들과 달리 '원본 보관 경로 미확인'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이 자료는 아직 내용 열람도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존 목록의 분류명만은 확인됐어요." 그가 종이를 건넸다. [원천관리계정 / 최초 인력 실험] [실험번호: 000-0] [기록 대상: 최초 거절자 외 9명] [현황: 원본 소재 미확인] 지훈은 목록을 다시 읽었다. 오혜숙이 만든 세 칸의 원칙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그 원칙이 열 개의 기능으로 분리되기 전, 이미 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었다는 뜻일까. "이 아홉 명이 누구인지는 확인됐습니까?" 민재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요. 그리고 더 이상한 게 있습니다. 이 실험번호에 연결된 첫 번째 상담기관 이름이 바뀌어 있습니다." "어디로요?" 민재호는 종이 맨 아래 줄을 가리켰다. [최종 연결 기관: 새 출발 직업소개소] 지훈은 자신이 처음 임대 계약을 했던 날을 떠올렸다. 작은 사무실, 덜 조여진 책상 나사,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왔던 강철민. 그때는 아무도 000번 실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들이 실험의 일부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훈은 이번에도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소개소를 누가, 언제 연결했는지부터 확인합시다. 이 이름이 적혔다고 해서 우리가 동의한 건 아니니까요." 문 밖에서는 박선규가 가게 셔터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워진 간판 아래로 직업소개소의 작은 불빛이 남았다. 새 출발. 이번에는 이름의 기원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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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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