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아는 작은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간판 아래에는 오래된 필기구가 줄지어 걸려 있었고, 입구에는 '남의 이름 대신 서명하지 않습니다'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오지훈은 그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손님들이 도장을 맡기고 가면 대신 찍어 달라고 하거든요."
경아가 먼저 말했다.
"오혜숙 씨가 보냈다면서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린과 그는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경아가 편한 범위에서만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경아는 잠시 문구점 문을 닫고 안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원본 이야기를 하러 오는 분은 가끔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누가 잘못했는지 이름부터 묻더군요."
"저희는 지금 사라진 변경 이력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경아는 서랍에서 작은 색인 카드를 꺼냈다. 수십 년 전 일을 정리한 개인 메모였다. 원본 업무 문서가 아니며 자신이 기억을 보태 적은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때 황주석이 만든 첫 번째 표는 빈칸을 싫어했어요. 세 칸 가운데 '보류'를 줄이자고 했거든요. 처리가 완료되지 않으면 돈이 안 된다고."
"혜숙 씨는 반대하셨고요."
"반대한 분은 여럿이었지요. 혜숙 씨는 문장을 고치라고 했고, 저는 보류 칸을 지우지 말자고 했어요. 사람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표에는 그 시간이 낭비처럼 표시됐으니까."
경아는 카드의 한쪽을 가리켰다.
'보류는 승인의 전 단계가 아니다.'
그 옆에는 작은 별표가 있었다.
"이건 공식 원칙입니까?"
"아니요. 제가 회의 때 했던 말이에요. 그날 누가 받아 적었는지는 몰라요."
지훈은 그 구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공식 원칙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경아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덧붙였다.
"황주석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는 처리되지 않은 기록 때문에 실제 채용이 막힌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그 문제를 풀겠다고 시작한 거죠. 하지만 나중에는 막힌 이유를 확인하기보다 '막힘'이라는 표시부터 없애려고 했어요."
"그렇게 바뀐 시점이 있습니까?"
경아는 오래된 달력을 꺼냈다. 거기에는 동그라미가 하나 쳐져 있었다. '첫 실증 시연'이라고 적힌 날이었다.
"그날 한 사람이 와서 시연을 멈춰 달라고 했어요. 자기 퇴사 기록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시연은 계속됐고, 발표자료에는 '반대 의견 없음'이라고 쓰였어요."
"그 사람은 누굽니까?"
경아는 잠시 망설였다.
"제가 그 이름을 지금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분은 공개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훈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때 시연이 진행됐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는 공개 자료가 있는지 물었다. 경아는 행사 안내 전단을 보여 주었다. 일정과 장소, 주최 기관만 적힌 종이였다.
예린은 전단의 날짜를 보고 표정이 바뀌었다.
"이날이네요. 검색 이력에서 최초로 '보류'가 '오류'로 바뀐 날."
경아는 전단을 접었다.
"그렇다면 바뀐 글자를 보여 주면 되겠네요. 이름을 몰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요."
문구점을 나올 때 지훈은 입구의 종이를 다시 읽었다. '남의 이름 대신 서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수십 년 전에도 이미 있었던 간단한 말을 따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날 오후 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몇 연동기관이 제10 기능의 결과를 자동 반영하지 않기로 잠정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원천 목록의 정리는 계속될 수 있었다.
그리고 황주석 명의로 새로운 공개 설명회 안내가 도착했다.
'말소는 망각이 아닙니다. 효율을 위한 기억의 재배치입니다.'
지훈은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누구의 기억을, 어디로 옮긴다는 걸까.
제16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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