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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60화
PAYLUA ORIGINAL · 제160화

160화. 누구의 선택도 물려받지 않는다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529자

오프라인 책장
저녁 여섯 시 오십구 분. 소개소에는 작은 소리만 가득했다. 벽시계의 초침, 예린이 누르는 키보드, 아래층 빵집에서 철민이 의자를 밀어 넣는 소리. 지훈은 모니터 앞에 앉아 수첩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낡은 글씨가 있었다. '대상자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 것.' 그 문장을 적을 때 그는 직업 적성 숫자를 볼 수 있었다. 강철민의 제빵 적성은 98.7%였고, 자신에게는 상담 적성 100%가 떠 있었다. 숫자는 사라졌다. 대신 자신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말이 남았다. '제 삼 년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적 없습니다.' '저는 그 면접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장비를 멈춘 사람은 저였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대답이었다. 하나의 권한으로 묶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승계 확정까지 00:00:30] [118번 오지훈 / 거절 의사 접수] [외부 사용 제한: 일부 기관 적용] [후속 처리: 미정] 예린은 화면을 저장했다. 구은정도 다른 통화방에서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이 시각에 무엇이 표시됐는지, 어떤 기관이 그 값을 이용했는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도록 각자 근거를 남겼다. 황주석이 화상 연결을 요청했다. 지훈은 응했다. 화면 속 황주석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당신이 수락만 하면 일단 3,505건이 처리됩니다. 적어도 시스템은 돌아가죠." "처리된다는 건 발행되는 문서가 늘어난다는 뜻입니까, 사실이 확인된다는 뜻입니까?" 황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엔 저도 누군가 적성에 맞는 직업을 알기만 하면 삶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훈이 말했다. "하지만 강철민 씨가 빵을 만들기로 한 건 숫자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자기가 해 보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을 제가 대신했다면, 지금과 같은 직업소개소는 없었을 겁니다." 화면의 숫자가 열을 지나 아홉으로 바뀌었다. 예린이 조용히 손을 뻗어 기록 시작 시각을 확인했다. 누구도 버튼을 대신 눌러 주지 않았다. [00:00:03] [00:00:02] [00:00:01] 일곱 시 정각, 승계 안내 창이 사라졌다. 몇 초 뒤 새로운 상태가 떴다. [제9 기능: 승계] [118번 강제 귀속: 보류] [관계도 기반 분산: 일부 연동기관 차단] [미확인 기록 3,505건: 확인 필요 상태 유지] 지훈은 긴 숨을 내쉬었다. 118번으로 권한이 자동 이전되는 것은 일단 보류됐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나누는 흐름도 일부 막혔다. 그러나 모두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확인되지 않은 기록은 남아 있었고, 아직 어떤 기관이 결과를 사용할지 알 수 없었다. "이겼습니까?" 철민이 계단을 올라오며 물었다. 손에는 그날 팔고 남은 마지막 식빵이 들려 있었다. "한 사람의 대답을 지켰습니다. 다른 분들의 일은 아직 남았고요." "그럼 내일도 열죠." "그럼요." 철민은 식빵을 세 조각으로 나눴다. 한 조각은 예린에게, 한 조각은 지훈에게 주었다. 자신 몫은 가장 작게 남았다. 지훈이 따지자 철민이 웃었다. "제가 먹을 만큼만 잘랐습니다. 이건 제가 정한 겁니다." 그 순간 오혜숙에게서 짧은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혜숙은 오늘 원칙 문구를 다시 읽었다고 했다. 자기 이름으로 쓰인 다른 사람의 문장이 아니라, 자신이 고쳐 쓴 마지막 문장을. 그녀는 누구에게도 이겨 줘서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제 말을 제가 한 말로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훈은 메시지의 저장 여부를 혜숙에게 확인한 뒤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3,505건의 범위를 다시 확인할 생각이었다. 내일은 또 누군가의 상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밤 일곱 시 십일 분, 예린의 컴퓨터에 조용한 알림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승인이나 거절 버튼이 없었다. 아주 간단한 한 줄이었다. [원천관리계정 / 제10 기능: 말소] [대상: 검증 보류된 원본 기록] [적용 조건: 장기 미확정 상태] 예린이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승계를 막으면 미확정이 남고, 미확정이 오래되면 원본을 없애겠다는 건가요?" "그렇게 읽힙니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확인해야겠지만요." 지훈이 말할 때 또 다른 항목이 열렸다. [첫 말소 후보: 000번 원칙 원본] [관련 보관자: 오혜숙] [관계 연결자: 오지훈] 지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오래된 교정지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붉은 줄이 떠올랐다. 000번 원칙이 사라지면, 지금까지 잘못 바뀐 기록을 검증할 근거 하나가 없어질지도 몰랐다. 그는 소개소의 문을 다시 열었다. 아래층에서는 박선규가 내일 반죽을 위해 밀가루를 계량하고 있었다. 어떤 일은 오늘 끝났고, 다른 일은 내일 시작된다. 하지만 없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가 말했고, 선택했고, 일했다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었다. 지훈이 예린에게 말했다. "이번엔 사람 이름을 찾기 전에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합시다. 시스템이 지운 뒤에 찾으려고 하면 늦을 수도 있으니까요." 창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소개소 간판 위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간판의 글자는 아직 선명했다. 새 출발 직업소개소. 그 이름 아래에는 누구의 다음 선택도 적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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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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