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나예린은 밤새 도착한 민원 목록을 두 번 확인했다. 3,505건 전부를 볼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대신 동의해 자신의 사례만 제출한 사람들의 자료를 비교했다. 같은 표가 반복됐다. '관련성 높은 승계자'라는 문구 아래, 자주 연락한 동료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가족도 나올 수 있어요?"
지훈이 물었다.
"연락 기록이 연동돼 있다면 그런 계산을 시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확인한 건 같은 직장 동료 사례뿐입니다. 다른 범위까지 작동한다고 단정하면 안 돼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을 키워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은 백도식이 잘 쓰던 것이었다. 그와 같은 일을 하지는 말아야 했다.
예린은 본인이 직접 제공한 자료 세 건을 가명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휴직자의 업무 기록을 함께 작성한 동료, 두 번째는 퇴사자의 상담 전화를 가장 많이 받았던 인사 담당자, 세 번째는 현장 점검을 도와준 후배였다. 이들이 공통으로 물려받게 된 것은 급여나 승진 기회가 아니었다. 미처 끝나지 않은 확인 요청과 책임 표시였다.
"연결을 많이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구조군요."
구은정이 말했다.
"그런데 연결이 많다는 건 그 사람을 도왔다는 뜻일 수도 있고, 단지 업무상 연락이 많았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이걸 근거로 책임과 선택을 넘기는 데 정당한 이유가 되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지훈은 자신이 왜 118번으로 선정됐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일자리를 되찾아 주려는 상담이 쌓일수록 관계 연결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피해자에게 손을 내민 행동이 다시 피해자의 미완료 결정을 떠맡을 근거로 변하고 있었다.
그때 백도식이 직접 찾아왔다. 이번에도 비싼 양복이 아니라 평범한 점퍼 차림이었다. 그는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예전에 직원들이 회사에서 나갈 때 남긴 인계 목록이야. 일부는 내가 보관할 권한이 없어 돌려줘야 할 것도 있어. 그래서 사본을 함부로 주진 않겠어. 대신 어떤 문서가 있었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
지훈은 봉투를 열지 않은 채 의자를 내주었다.
"왜 그걸 가져오셨습니까?"
"사람들은 내가 직원을 붙잡았다고 하지. 맞는 말이야. 그런데 떠나겠다는 사람들한테 나는 끝나지 않은 일을 붙였어. 누군가 대신 처리하면 퇴사할 수 있다고. 후임자까지 정해서 오라고."
"그러면 떠난 사람의 선택이 다음 사람의 의무가 됐겠군요."
"그때 난 편하다고 생각했어. 회사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백도식의 고백은 불편하게 조용했다. 철민은 오븐을 닦다가 올라와 문가에 섰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 자신에게도 후임자 한 사람을 데려오면 조직을 나갈 수 있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제가 누굴 데려와야 했던 겁니까?"
철민의 물음에 백도식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랬지. 네가 안 데려왔으면 내가 네 이름으로 적었을 거야."
"저는 그 말이 아직도 무섭습니다."
백도식은 고개를 숙였다. 지훈은 사과가 얼마나 진심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직접 했던 일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요청할 때 확인 절차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책임이었다.
백도식이 떠난 후 한시온의 보호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온은 더 이상 거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소리가 잠잠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무리해서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었다. 지훈은 그 결정에 감사하다고 답했다. 아이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날 오전 열한 시, 새로운 알림이 떴다.
[승계 권한 최초 적용: 8시간 후]
[예비 담당자 거절 접수 가능]
[거절 시 다음 관계자에게 순차 이전]
지훈은 거절 버튼 위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자신이 거절해도 다음 사람에게 같은 문제가 옮겨 간다면, 버튼 하나만으로 끝내서는 안 됐다. 먼저 그 '다음 사람'이 누구인지, 실제로 무엇을 받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제1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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