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하의 병실은 도심 외곽의 재활병동에 있었다. 지훈은 병실 앞에서 멈췄다. 보호자와 병원 측의 안내에 따라 면회가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환자를 만났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정보를 물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은하의 동생 서민지는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운동화 앞코가 벗겨져 있었다.
"언니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요."
"언니분께 직접 확인하실 수 있었습니까?"
"아직 길게 이야기하기 어려워요. 짧게는 대답하지만 금방 지쳐요. 오늘은 저한테도 몸 상태를 묻는 말만 해 달라고 하셨어요."
지훈은 상담 수첩을 덮었다.
"그럼 오늘은 퇴사에 대해 묻지 않겠습니다. 회사 기록에 이의가 있다는 사실은 저희가 별도로 확인할게요."
민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언니의 퇴사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고 하면 좋은 소식이어야 할 텐데, 그녀는 오히려 병실 문에 사람들이 자꾸 몰리는 게 두려웠다고 말했다. 은하는 아프기 전에도 다른 사람의 업무를 떠안느라 쉬지 못했다. 병원까지 와서 회사 결정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이었다.
"언니는 자기가 빠지면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늘 걱정했어요. 지금도 그러실까 봐요."
지훈은 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책임감이 크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병실에서 나온 민지는 작은 메모를 보여 주었다. 은하가 치료 초기에 스스로 적은 것으로 보이는 종이였다.
'출고 중단 기준은 새 담당자가 현장에서 다시 확인. 내 이름으로 체크하지 말 것.'
글씨는 짧고 군데군데 흔들렸다. 작성 시점과 의미는 더 확인해야 했다. 그것만으로 퇴사 의사를 결정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본인의 이름으로 현장 확인을 하지 말라는 취지는 분명했다.
"이 메모를 제출해도 될까요?"
민지가 물었다.
"은하 씨 의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공개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본인과 상의하고, 확인해야 할 기관에 필요한 부분만 내죠."
그날 오후 지훈 일행은 병원을 나와 물류센터의 방문 접수대에 섰다. 신태복 팀장이 협의한 범위 안에서 안전기록 흐름을 설명했다. 경보가 들어오면 실제 근무하는 담당자가 기계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설비를 멈추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시스템에는 병원에 있는 은하가 여전히 '최종 확인자'로 남아 있었다. 그 아래 라희의 이름에는 '승계 완료' 표시가 있었다.
"둘 다 말이 안 되죠."
태복이 말했다.
"그래서 어젯밤엔 출고를 일시 중단했습니다. 상부에선 왜 굳이 멈췄냐고 묻더군요."
지훈은 태복을 바라봤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쓰지 않으셨네요."
"누가 다치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아니, 그것보다 사람 다치면 안 되니까."
말끝에서 태복이 어색하게 웃었다. 철민이 현장에 준비된 보호 장비를 훑어보며 말했다.
"빵집에서도 오븐 이상하면 굽는 걸 멈춥니다. 배달 주문이 밀려도요."
그날 저녁 은하의 이름으로 자동 작성된 알림이 도착했다.
[서은하의 미완료 선택: 정라희에게 이전]
[승계된 선택의 내용: 근무 복귀 포기]
민지는 그 문장을 보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지훈은 화면을 다시 읽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낯선 제도가 아니었다. 아직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편리한 대답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제15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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