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52화
PAYLUA ORIGINAL · 제152화

152화. 퇴사하지 않은 사람의 조끼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570자

오프라인 책장
여성의 이름은 정라희였다. 스물일곱 살, 청원물류 냉장창고의 야간 출고 담당자였다. 그녀가 들고 온 형광 조끼 안쪽에는 '서은하'라는 이름이 검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은하 선배는 조끼에 이름 쓰는 걸 좋아했어요. 빌려 간 사람이 제자리에 돌려놓으라고요." 라희는 웃어 보이려다 조끼를 접었다. 은하는 열이틀 전 야간 근무 도중 쓰러져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입원 전 인계한 업무도 있었지만 퇴사 의사를 밝혔다고 들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전날부터 전산에는 '서은하 퇴사 확정'이 떴고, 그 뒤를 이어 라희가 은하의 경력과 안전 확인 권한을 승계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는 출고 전표를 정리할 줄 압니다. 하지만 냉동기 경보를 판단할 자격도, 경험도 없어요." 지훈이 종이를 펼쳤다. 회사 내부의 통상적인 인계서에는 작업 구역과 전달 사항이 적혀 있었다. 다른 한 장은 낯선 시스템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은하 / 선택 종료: 퇴사] [정라희 / 관련성 높은 승계자] [승계 범위: 안전 확인, 경력, 미완료 의사] "라희 씨가 받겠다고 하셨습니까?" "안 했어요. 메시지에서 '내용 확인'을 눌렀을 뿐이에요. 그걸 누르지 않으면 근무표를 볼 수 없었거든요." 예린은 문서 자체에 첨부된 시간표를 확인했다. 라희의 '내용 확인'은 밤 열한 시 십사 분, 승계 확정 표시는 열한 시 십삼 분이었다. 확인하기도 일 분 전에 확정된 셈이었다. 화면에 찍힌 시각은 증거 하나일 뿐 오류 가능성도 있었지만, 적어도 당사자 동의의 근거로 삼기에는 이상했다. "원본 화면은 회사 담당자에게도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구은정이 전화로 조언했다. "출고 기록과 안전관리 기록은 보존하되, 은하 씨 건강 상태는 동의 없이 상세하게 퍼뜨리지 말고요."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그녀에게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질문을 뒤늦게 꺼냈다. "라희 씨는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저요? 지금 하는 일은 좋습니다. 검수나 포장처럼 손으로 확인하는 일이요. 안전 관련 자격도 언젠간 따고 싶어요. 하지만 남의 경력을 제 이름에 붙여서 일하고 싶진 않아요." 말하는 동안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지훈은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 말할 때 비로소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적성 숫자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 날 오전, 철민은 라희를 따라 현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니까, 먼저 허락을 받아야죠." 라희가 회사의 방문 절차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때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야간 팀장 신태복이었다. "오늘도 은하 씨 업무가 네 이름으로 떠. 본사에서 승인된 거라는데, 당장 경보 확인란 비우면 내 책임이래." 라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팀장님,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통화 너머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시스템에서 대신 정한 사람을 그대로 쓰면 되지 않습니까?" 지훈은 라희가 통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손에 남은 조끼는 아직 은하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화면에서는 그 이름이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52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5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