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의 이름 아래 숫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승계 확인까지 47:58:12]
[원 권한자: 불명]
[예비 권한자: 118번 오지훈]
새 출발 직업소개소의 벽시계는 저녁 일곱 시 이 분을 가리켰다. 지훈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숫자가 움직인다는 사실보다 더 불편한 것은 '원 권한자: 불명'이라는 문구였다. 누구에게서 받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받으라고 하는 셈이었다.
"신규 권한을 누르면 뭐가 열려요?"
강철민이 물었다. 박선규의 빵집에서 남은 식빵을 정리하다 급히 올라온 탓에 앞치마 끝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아직 누르지 않았어요. 예린 씨가 화면과 안내서를 먼저 보존하고 있습니다."
나예린은 승인 버튼이 놓인 창보다 발급기관과 처리 조건부터 살폈다. 예전 같았으면 보안 취약점을 찾아 시스템 안으로 먼저 뛰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읽을 권한이 있는 화면을 저장하고, 파일마다 받은 시각과 출처를 적었다. 누군가의 기록을 지키겠다고 다른 기록을 함부로 열 수는 없었다.
[대상 범위: 대리 증명 미완료 3,505건]
[승계 항목: 확인 의무, 응답 권한, 미결정 상태]
[미응답 시 처리: 관계 연결도 최상위 대상에 임시 귀속]
"여기서 '임시'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들어요."
예린이 화면을 확대했다.
"원래 사람의 선택이 언제 돌아가는지 적혀 있지 않거든요."
구은정이 화상으로 연결됐다. 그녀는 기능이 실제로 효력을 갖는지, 외부 기관이 이 값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따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면에 쓰인 대로 모든 것이 작동한다고 단정해서도, 단순 안내문이라며 무시해서도 안 됐다.
"최소한 두 가지를 나눠 보죠. 업무를 이어받는 것과 사람의 선택권을 이어받는 것. 회사에서 누군가 휴가를 가면 다른 사람이 일을 맡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휴가 간 사람이 내릴 대답까지 대신 내려도 되는 건 아니죠."
지훈은 상담 수첩에 두 개의 칸을 그렸다. 왼쪽에는 '처리할 일', 오른쪽에는 '당사자만 대답할 일'. 첫 줄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오른쪽 칸에 굵게 동그라미를 쳤다.
"제가 받지 않겠다고 하면요?"
"그 대답은 남겨야죠. 하지만 그거 하나로 다른 3,505명의 의사가 확인되지는 않아요."
그때 오혜숙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래된 인쇄소 시절의 직무 인계표 사진이었다. 맨 아래에 자필로 적은 문장이 있었다.
'종이와 열쇠는 넘겨도, 사람의 승낙은 넘기지 않는다.'
지훈은 그 문장을 조용히 읽었다. 혜숙이 원칙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장을 쓴 날 누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더 살펴야 했다.
철민이 상담실 문을 닫으려다가 다시 열었다.
"아래에 새 손님이 왔습니다. 평범한 상담이라는데, 지금도 받으실 거죠?"
지훈은 모니터를 끄지 않고 화면 밝기만 낮췄다.
"받아야죠. 우리가 지키려는 것도 결국 그거잖아요."
들어온 손님은 야간 물류센터에서 일한다는 여성의 동료였다. 손에는 구겨진 형광 조끼와 이름이 다른 인계서 두 장이 들려 있었다.
"누가 퇴사했다고 돼 있는데요. 그 사람은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시계는 여전히 움직였다. 지훈은 빈 상담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마흔여덟 시간 뒤의 숫자보다, 그 여성이 실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였다.
제1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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