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 나예린의 컴퓨터에 안내문이 하나 떴다.
[공통 증명 후보 적용 예정: 24시간 후]
[대상 기록: 3,505건]
[증명 후보가 응답하지 않을 경우, 기존 연관 데이터로 대체]
"또 무응답을 동의로 바꾸겠다는 건가요?"
지훈이 물었다. 예린은 문구를 확대했다.
"이번엔 더 교묘해요. 증명자가 동의했다는 말도 없어요. 그냥 자료만 있으면 증명서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혜숙과 서민규가 같은 통지를 받았다. 구은정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연락하되, 설명을 원하는 사람과 당장 대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자고 했다. 아무리 위험한 시스템이라도 지훈이 남들의 선택을 대신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소개소 문에는 두 장의 안내가 붙었다. 첫 번째는 '나의 이름으로 발급된 증명 기록 확인 방법', 두 번째는 '확인을 원하지 않으실 경우 응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린은 두 장을 붙이자마자 인터넷에 공개하려다가 손을 멈췄다.
"여기에 누가 방문했는지까지 공개하면 안 되겠죠."
"그럼요. 방법만 알려 줍시다."
첫 손님은 조은재였다. 그는 당사자에게 발급된 열람 화면에서 자신의 점검 기록이 여전히 안재철 이름으로 보인다고 했다. 회사 담당자는 수정을 검토하겠다고 답했지만, 그날 저녁 자동 증명서가 발송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일단 이의신청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회사와 발급처에 같이 남길 수 있어요. 그다음 오늘 실제로 확인한 내용을 따로 제출하고요. 두 일을 혼동하지 않도록 하죠."
은재가 펜을 들었다. '본인은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쓰려다가 멈췄다.
"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덟 시쯤인데, 기록은 여덟 시 십이 분이에요."
"기억나는 만큼만 쓰세요. 정확한 시간은 다른 자료와 대조하면 됩니다."
그는 종이를 다시 썼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만 남겼다.
저녁에는 철민이 빵집에서 갓 구운 소보로빵을 가져왔다. 오늘은 지역 아동센터에서 주문한 빵이었다. 그는 계산서를 보이며 말했다.
"사장님이 제게 납품 확인을 맡기셨습니다. 제가 직접 가져다주고 서명받으려고요."
"본인이 납품할 예정이면 본인이 남기시면 되죠."
"그런데 예전 같으면 제가 안 가도 제 이름으로 끝났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이제 알겠어요."
지훈은 철민이 계산서를 접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빵을 굽고, 가져다주고, 확인받는 일. 작은 원칙들이 모이면 거대한 제도보다 분명해질 때가 있었다.
그날 밤, 운영사에서 발송된 문서 하나가 예린에게 도착했다. 제목은 '증명자 사전 확인서'. 작성자는 오지훈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문서에는 실제 서명이 없었다. 예린은 생성 시각을 읽고 얼굴이 굳었다.
"이상해요. 이건 내일 발급할 문서인데 작성 시각이 어제입니다."
"미리 만든 건가요?"
"아마도요. 그런데 더 문제인 건 이겁니다."
문서의 증명 사유란에는 '실제 행위 확인' 대신 '승계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증명을 하기도 전에, 그 역할을 넘겨받을 사람부터 정한 겁니까?"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그 문서를 저장하고 구은정에게 보냈다.
"확인해야죠. 하지만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이 문서가 진짜처럼 쓰이는 일입니다."
제14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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