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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43화
PAYLUA ORIGINAL · 제143화

143화. 지우지 않은 붉은 줄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1,649자

오프라인 책장
오후 네 시, 셔터가 내려간 인쇄소 앞에서 지훈은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처음에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혜숙의 이름을 듣자 침묵했다. "그 일은 종이 때문에 다툰 게 아니었어요." 전 인쇄소 직원 장기범은 인근의 작은 문구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는 이제 인쇄를 그만뒀고, 옛 작업물을 보관할 법적 의무도 없다고 먼저 설명했다. 다만 자신이 개인적으로 남긴 검수 노트가 있다고 했다. "일을 끝내기 전에 확인한 기록이에요. 원본이라고 할 수는 없죠." 기범은 낡은 노트를 펼쳤다. 한 페이지에 교정 지시가 세 번 적혀 있었다. 첫 번째에는 '원칙 폐기'가 들어가 있었고, 두 번째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으며, 세 번째에는 부정 문구가 완성돼 있었다. '당사자의 거절 의사는 타인이 폐기하지 못한다.' 혜숙은 글씨를 보자 손끝으로 종이 가장자리를 눌렀다. "이렇게 고쳐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네.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요청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냥 고쳤어요. 그날 밤 다시 전화가 왔죠. 마지막 '못한다'를 지우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기범은 고개를 저었다. "번호는 남아 있지만, 그게 누구의 것인지 당시에도 몰랐어요. 저는 최종 승인자의 서면 확인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작업을 취소하더군요." 그는 취소 표시가 찍힌 발주서를 보여 주었다. 지훈은 서류를 당장 가져가고 싶었지만, 기범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 멈췄다. "복사본만 받을 수 있을까요? 원본은 기범 씨가 가지고 계셔도 됩니다." 기범은 제3자 연락처를 가리고 복사하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예린은 페이지별 촬영 시각과 사본의 출처를 기록했다. 휴대전화로 보이는 서명이 진짜인지 판정하는 기술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받았는지는 남길 수 있었다. 문구점을 나서던 중, 혜숙은 지훈에게 물었다. "이제 원칙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요?" 지훈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적어도 폐기를 지시했다는 말에 반대되는 자료가 생겼습니다. 다만 그때 다른 서류가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해요." 혜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없던 일을 없었다고 증명하는 건 참 어렵네요." 그날 저녁 예린은 자료 목록을 만들다가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시스템이 내세운 폐기 문구와 기범의 교정지 첫 번째 판본이 글자 하나까지 같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판본은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았다. "최종본이 아니라 최초 오탈자 판본을 쓴 거예요." "그게 왜 그쪽에 있죠?" "누가 처음 인쇄된 걸 원본이라고 등록했거나, 그때부터 수정본을 받지 않은 거겠죠. 어느 쪽인지 밝혀야 합니다." 예린이 화면을 내려 보다가 작은 회색 글씨를 발견했다. [초기 자료 접수자: 원천관리계정 연동 대행] [접수 일시: 교정 취소 통보 14분 전] 최종 결정이 나기 전, 잘못된 문장이 이미 등록돼 있었다. 지훈은 여백에 적었다. '처음 입력된 말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문장을 다 쓰기도 전에 구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단이 오혜숙의 폐기 의사를 증명한 문서를 외부 검토기관 세 곳으로 전송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의가 접수됐는데도요?" "네. 그래서 정정 요청을 병행해야 합니다. 보내진 기록은 회수 버튼 하나로 사라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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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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