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람은 다음 날 아침 정각에 찾아왔다. 책상에 수첩을 올려놓는 손이 까맣게 갈라져 있었다. 안전 장갑을 오래 착용하면 손등이 트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일이 싫어서 온 건 아닙니다."
가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저는 일 잘하고 싶어요. 평가도 좋게 받고 싶고요. 그런데 이번에 제 점수가 갑자기 올랐어요. 칭찬을 받았는데 기쁘지 않았습니다."
지훈은 누가 점수를 줬는지, 그 점수가 어떤 기록을 근거로 계산됐는지 물었다. 가람은 자기가 담당하지 않은 설비의 검사 경험 두 건이 더해졌다고 했다. 그 중 한 건은 민규의 작업이었고 다른 건은 태욱이 사고 전에 수행한 업무였다. 과거와 현재가 한 장의 평가표에 섞여 있었다.
"팀장님이 그러셨어요. 기록이 맞으면 승진 심사에 도움이 된다고. 제가 모른다고 했더니 괜히 손해 보는 말을 왜 하냐고 하셨어요."
"가람 씨는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제가 한 만큼만 인정받고 싶어요. 부족한 건 배우고요."
그 순간 지훈은 강철민에게 처음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빵을 만들어 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철민의 눈에 처음 생겼던 두려움. 새로운 일을 배우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스템은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남의 이력을 덧붙이고 있었다.
예린은 세 사람의 허락을 각각 받아 이력표를 분리했다. 그러자 작업 번호들이 복잡한 그물처럼 엮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력의 이동에는 꼭 '공석'이라는 가상의 보관함이 끼어 있었다. 실제 작업자에게서 이력이 빠져나가자 그 자리가 비어 있다고 판단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기록을 가져왔다.
"도는군요. 한 번만 바꾸는 게 아니라요."
"네. 연결된 기록이 많아지면 원본이 누구 것인지 확인하는 일도 더 어려워져요."
구은정은 개별 근로자의 손해를 서로 맞교환하는 방식의 합의서를 경계했다. 지금 자료를 바로잡으려다가 '태욱의 경력을 되돌리려면 민규의 기록을 포기한다'는 식으로 새로운 대리 동의를 만드는 것은 잘못이었다. 세 사람의 원본은 각기 다른 곳에 있었다. 원본을 확인해 각자에게 연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점심 무렵 박선규가 소개소에 올라왔다. 박 씨는 철민이 구운 단팥빵을 세 봉지나 들고 왔다. 자리에 빵을 내려놓다가 수첩을 보고 말했다.
"요즘 뭐든 숫자 붙이는 게 편한가 봐요. 우리도 빵마다 생산량 적지만 맛까지 숫자만으로 말할 수는 없는데."
가람이 소리 없이 웃었다.
"저는 숫자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잘못된 숫자가 무서운 거예요."
오후 세 시, 운영사에서 일시 정정 방안을 보내 왔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경력이 잘못 표시된 세 사람 중 한 명을 '대표 원본 보유자'로 지정하면 나머지 두 사람의 누락도 자동 처리된다는 문구였다.
"또 대표입니까?"
지훈은 지난달의 합의 기능을 떠올렸다. 한 사람의 말이 여러 사람의 뜻으로 늘어난 바로 그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누구의 경력을 대표로 고르게 되는 거죠?"
예린이 표를 확대했다.
[대표 원본 보유자 추천: 정태욱]
[동의 미회신 시 추천 확정]
지훈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 이 결정을 그대로 두면 태욱에게 확인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아예 답하지 않은 사람의 서명이 생겨 버릴지도 몰랐다. 그는 세 사람에게 각각 연락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원본을 대표하지 않겠습니다. 그 선택을 하실지 본인이 결정해 주세요."
제13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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