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규입니다. 전화로 설명하기 어려워서요."
새 출발 직업소개소의 수화기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민규는 지방의 설비 사업장에서 막 퇴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제어반 조립과 출고 검사를 맡았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의 경력 관리 화면에 자신의 이름과 다른 사람의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제가 정태욱 선배를 대신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상한 건 그 기록의 날짜예요. 전 그때 그 회사에 없었습니다."
오지훈은 수첩에 두 줄을 그었다. '정태욱: 복귀 희망.' '서민규: 현재 근무 지속 희망.' 그는 먼저 민규에게 물었다.
"태욱 씨의 자료를 보여 드려도 될까요? 본인이 공개 범위를 정한 것만 가능합니다."
"아니요. 먼저 제 기록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저도 남의 병력이나 복귀 사정을 알고 싶어서 전화한 건 아닙니다."
지훈은 잠깐 말을 멈췄다. 민규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질문의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먼저 꺼내 놓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오전, 민규가 소개소 문을 열었다. 스물아홉의 남자는 종이봉투를 두 겹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정식 교육 이수 확인서, 공구 사진, 예전 작업일지가 들어 있었다. 맨 위에는 낯선 안내문이 있었다.
[경력 귀속 변경 통지]
[대체 제공자: 서민규]
[경력 수령자: 정태욱]
[귀속 항목: 현장 위험 식별 3년 / 기기 교정 실무 2년]
[처리 사유: 복귀 공석 신속 해소]
"전 이제 경력이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말할 근거는 아직 없어요. 다만 화면상으로 옮겨졌다는 표시가 있습니다."
나예린이 서류의 시각을 비교했다. 원본 교육기관의 이수 기록은 민규 명의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뀐 것은 업체들이 공동으로 조회하는 인력 연동 화면뿐이었다. 하지만 그 화면을 보고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회사가 적지 않았다.
"원본은 멀쩡한데 조회 결과가 바뀐 거네요."
"조회 결과를 경력으로 믿는 곳에서는 원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민규가 대답했다. 그 말에는 분노보다 두려움이 짙었다. 다음 주에 안전 설비 관리팀 승급 심사가 예정돼 있었다. 그의 상사는 시스템에서 경력이 확인되지 않으면 심사를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훈은 서류를 한 장씩 돌려 주었다.
"원본과 조회 결과를 구분해서 기록하겠습니다. 먼저 본인 경력의 원래 출처를 보존하고, 담당자에게 정정 요청을 하죠. 태욱 씨에게도 본인이 원하는 범위에서 확인을 부탁하겠습니다."
민규는 고개를 숙였다가 물었다.
"그 선배, 진짜 돌아오려고 합니까?"
"네. 그리고 그분도 이 변경에 동의한 적 없다고 했습니다."
민규가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자기 것을 훔쳐서 타인에게 준 줄 알았는데, 받았다고 기록된 사람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잠시 몸을 맡겼다.
"그럼 왜 우리 둘 이름이 같이 적혀 있죠?"
그때 예린이 두 문서의 구석에 찍힌 같은 식별 기호를 발견했다. 작고 흐린 영문자였다.
[SLOT-7 / OWNER: VACANCY]
"소유자가 사람이 아니네요."
예린이 중얼거렸다.
"공석이라니. 빈자리가 경력의 주인이라고요?"
지훈은 칠판에 세 번째 줄을 적었다. '자리가 사람을 소유할 수 있는가.' 첫 상담 때 강철민에게 적었던 문장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대상자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 것. 이번에는 직업뿐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 낸 시간까지 되찾아야 했다.
제13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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