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물류 포장센터에서는 직원들에게 각자의 의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안내가 붙었다. 종이 양식도 준비됐다.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은 종이에 적을 수 있었고, 원하는 경우 별도 면담으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김미정은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지만 가장 늦게 작성했다. 그는 '찬성' 또는 '반대'라는 큰 칸 대신 설명란을 오래 바라봤다.
'오전 근무 가능. 심야 근무 불가. 조정 협의는 계속 참여 희망.'
어떤 날은 일할 수 있고 어떤 날은 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할 수 없다는 말이 취업을 거절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최성애는 담당자에게 말했다.
"대표로서 제가 원하는 건 사람들 의견을 모으는 일이에요. 사람들을 같은 답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요."
성호는 동료들에게 약속했다. 오늘 작성한 표는 회의 안건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각자의 근무계약이나 조건을 임의로 확정하는 데 쓰지 않겠다고. 또 직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없는 합산 수치만으로 조정 결과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회사는 스물세 명 가운데 스물한 명의 실제 의사를 확인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휴가 중이었다. 그 둘을 '동의'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 이번 절차의 핵심이었다.
서로 다른 근무 조건을 표로 펼치자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심야 근무를 원하지 않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아침에 등교하는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심야를 원했다. 낮에 자격증 수업을 듣는 사람도 심야를 선호했다. 교대 없이 고정으로 일하고 싶다는 사람과 번갈아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못 맞출 줄 알았는데 대부분 시간이 채워지네요."
성호가 놀라 말했다.
물론 빈 시간은 남았다. 회사는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 추가 인력 채용과 수당 조정을 검토해야 했다. 그러나 미정에게 불가능한 시간을 강요한다고 해서 근무표가 안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에 미정이 소개소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들 데리러 갈 수 있어요. 회사에서 오전조를 제안했어요."
지훈은 자신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줬다고 말하지 않았다. 미정이 선택할 수 있도록 확인 절차를 도왔고, 최종 조건은 회사와 그녀가 직접 협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후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시스템에서 두 번째 결과가 도착했다.
[직접 확인 21 / 미확인 2]
[합의 판정: 미완료]
[권장 처리: 대표의 미확인자 의사 대리 확정]
성애는 화면을 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하지 않겠습니다."
예린이 그 답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미완료'를 실패로 분류했고, 실패의 책임을 성애 한 사람에게 붙였다.
[대표 권한 일시 정지 권고]
[사유: 공공 일자리 기회 방해]
성애는 잠시 침묵했다. 자신이 대표 역할을 맡으면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었다. 동료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 것 때문에, 동료의 일자리를 빼앗은 사람처럼 기록되는 일이었다.
지훈은 자료를 덮고 말했다.
"미완료라고 해서 잘못한 건 아닙니다. 두 사람에게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적은 거죠."
성애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 사람들 말을 있는 그대로 남기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요."
그날 밤, 황주석의 이름으로 새로운 통지가 왔다.
'집단 합의 거부자의 대표권을 대체 인력에게 이관할 수 있음.'
제12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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