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표는 세탁소 앞 계단에서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들으셨죠?"
여자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물류 포장센터 근무자 대표로 회의에 참석했던 최성애였다. 스무 해 가까이 창고와 공장을 오가며 일했다고 했다.
"김미정 씨한테 제 이름을 들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누가 저를 대표로 뽑았는지 묻는다면, 그때마다 말이 달라요. 작년에는 교대조 전달 담당이었고, 이번엔 전체 인원 대표가 됐대요."
성애는 지훈에게 자신이 보낸 메일 사본을 보여 주었다. 제목은 '야간 근무자 의견 취합 요청'. 본문에는 분명히 '교대 일정표가 나오면 개별 사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회의 끝나고 제가 한 말이 있어요. 일정 바꿀 사람은 각자 물어보라고. 그런데 제 발언을 '전체 안건 승인'으로 적어 놨더라고요."
"정정 요청은 하셨습니까?"
"네 번 했어요. 그랬더니 이제는 제가 동의를 번복한 사람이라네요."
성애의 손가락에는 오래된 포장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났다기보다 지쳐 보였다. 매번 새 회의에 들어가 이전 회의의 뜻부터 설명해야 했다.
지훈은 그녀를 소개소로 안내했다. 앉겠느냐고 묻자 성애는 잠시 서 있다가 의자를 골랐다. 창가 쪽이었다.
"딱 한 가지는 확실해요. 여러 사람의 사정을 조정하는 건 필요해요. 제가 대표 역할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하지만 제가 미정 씨 대신 아이를 데리러 갈 수는 없잖아요."
철민이 아래층에서 올라와 빵을 내려놓았다. 성애는 빵을 들고 냄새를 맡았다.
"우리 아버지도 제빵사셨어요. 새벽에 일하느라 가족 식사에 잘 못 오셨죠. 그렇다고 빵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시간표가 문제였던 거지."
철민은 괜히 목덜미를 만졌다. 어머니가 빵집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누군가의 시간이 상품처럼 묶이는 일을 이번에는 남의 사정이라 여길 수 없었다.
성애는 임의로 모든 사람의 자료를 넘기지 않았다. 각자가 원하면 직접 제출할 수 있도록, 회의 당시 설명한 내용을 자신 명의로 증언하겠다고 했다. 은정은 그 방식을 지지했다.
그날 오후 운영사에서 '대표 의사 적용 이력'이 도착했다. 문서의 맨 위에는 성애의 이름이 있었다. 그 아래에 연결된 사람은 스물세 명이 아니라 마흔여섯 명이었다.
"한 사람이 두 명씩 대표한 겁니까?"
예린이 숫자를 세다가 멈췄다.
[원대표: 최성애]
[연결 구직자 23]
[파생 연락 대상 23]
[대표 동의 확산 계수: 2]
성애는 화면을 보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가족 연락처까지 동의해 준 적 없어요."
대표의 이름 하나에 직원들의 시간이 아니라, 연락처와 보호자까지 묶여 있었다. 지훈이 문서의 하단을 살폈다.
'동의 불일치 발생 시 대표 대상 교정 권고.'
이번에는 성애가 시스템의 다음 교정 대상이 되어 있었다.
제12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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