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은 숫자가 바뀐 화면을 보고 의자를 밀었다.
"제가 뭘 누른 거죠?"
"아무것도 누르지 않으셨습니다."
지훈의 대답을 들은 뒤에도 미정은 손을 무릎 밑에 감췄다. 마치 손가락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모든 서류에 서명되는 세상에 들어온 듯했다.
예린은 화면을 새로고침하지 않았다. 원래 표시된 시각과 변동 내용을 보존해 미정의 동의를 받아 구은정에게 전달했다. 화면 뒤에 어떤 연산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상담 접수라면 저는 기록 열람하러 온 사람이지, 근무 변경 찬성자가 아니잖아요."
"그 차이를 확인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구은정의 조언이었다. 은정은 미정이 소속된 회사에 단정적인 항의 대신 세 가지 자료를 요청하자고 했다. 실제 회의에서 다룬 안건, 참석자 수를 확인한 방법, 서명 또는 위임의 근거.
지훈이 전화를 걸자 인사 담당 대리 윤성호는 피곤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저희도 자동 처리된 걸로만 알고 있습니다. 직원 대표가 교대 변경에 동의했고, 시스템에서 최종 합의가 났다고 해서요."
"직원 대표가 스물두 사람의 근무시간을 대신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는 확인하셨나요?"
"회의 참석자한테 공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들 바쁘다 보니까 답을 안 한 사람이 있고요."
성호는 말끝을 줄였다. 그 역시 새 시스템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점심 무렵 철민이 막 구운 식빵을 들고 올라왔다. 예린이 화면만 바라보고 있자 그가 물었다.
"열한 명 참석했는데 스물둘이 동의했다는 거죠? 참석한 사람도 전부 찬성은 아닐 텐데."
"맞아요. 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과 안건에 찬성했다는 사실도 달라요."
철민은 식빵 한 조각을 떼어 먹었다.
"그럼 빵집 회의에 앉아 있던 제가 사장 되는 겁니까? 회의에 앉았으니까?"
박 씨가 문밖에서 대꾸했다.
"사장은 내일 새벽 네 시에 오면 생각해 보지."
평소 같으면 웃을 농담이었지만 미정은 웃지 못했다. 두 시에 집에 돌아가도 아이를 데려올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의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그녀에게도 비용이었다.
늦은 오후 성호에게서 회의록 사본이 왔다. 표제는 '교대 운영 개선 논의'였다. 참석자는 열한 명. 안건을 제안한 담당자와 여섯 명이 검토에 찬성했고, 나머지는 유보하거나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여섯 명도 교대 변경에 찬성한 건 아니네요. 검토를 시작하자고 한 거죠."
지훈이 말했다.
그런데 화면 아래에는 다른 표가 붙어 있었다.
[논의 참석 11]
[검토 동의 6]
[실행 반대 접수 1]
[집단 합의 인정 22]
예린은 마지막 줄에 표시된 규칙 코드를 읽었다.
'CONSENT-6 / 이의 제기를 위한 상담은 참여 의사로 계산.'
지훈은 미정을 바라봤다. 직업소개소를 찾아온 선택이, 직업소개소조차 원하지 않는 결정을 승인하는 증거로 바뀌고 있었다.
"그럼 제가 상담을 취소하면 스물한 명으로 돌아갑니까?"
미정이 물었다.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취소가 해결책이라는 근거는 없어요. 미정 씨가 오신 기록은 그대로 둔 채, 그 기록의 의미를 바로잡아야 해요."
바로 그때 또 하나의 알림이 도착했다.
[합의 예정 수치: 23/23]
[기준 충족 시각: 내일 오전 8시]
지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내일 아침, 한 사람의 침묵까지도 '모두의 뜻'이 될 예정이었다.
제12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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