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여기서도 제 동의가 필요합니까?"
상담실 문을 연 여자가 묻자 오지훈은 잠깐 대답을 고르느라 시간을 썼다. 한밤중의 시스템 경고를 보고 들어온 사람이었기에 그 말이 장난인지 불안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앉으실지는 본인이 정하시면 됩니다."
여자는 의자를 바라보다 끝에 걸터앉았다. 검은 작업복 소매에는 세탁으로 닳은 반사띠가 붙어 있었다. 손에 든 비닐봉지 안에서는 찌그러진 도시락통이 달그락거렸다.
"김미정입니다. 서른여덟이고요. 이 건물 옆 물류 포장센터에서 야간조로 일해요."
미정은 적성 상담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근무표를 바꾸겠다는 공고를 이해할 수 없어 왔다고 했다. 야간조 스물세 명을 주간과 심야로 다시 나누는데, 공고 맨 아래에 이상한 문장이 붙어 있었다.
'전체 합의에 따라 개별 이의 신청 기간을 종료함.'
"다 같이 합의했다는데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다섯 시에 애 데리러 가야 해서 심야조로는 못 옮겨요. 그런데 제 이름도 동의자에 들어가 있대요."
지훈은 즉시 '불법'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서류에 적힌 문장만으로는 누가 어떤 회의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공고 원본을 그대로 보존해 두고, 미정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저는 회사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교대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다만 저는 못 하는 시간에 일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는 거죠."
그때 나예린이 건물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며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같은 건물의 빵집과 세탁소, 소개소에 새 근무협약 안내가 발송됐다는 소식이었다. 건물 안 업체들이 공동으로 인력을 채용한다는 명목이었다.
박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난 빵 만드는 사람이지, 사람들을 다른 가게에 배달할 생각은 없는데."
강철민이 덧붙였다.
"사람을 배달하다니. 그 말부터 마음에 안 듭니다."
예린이 가져온 안내 화면에는 익숙한 표기가 있었다.
[제6 기능: 합의]
[시범 구역: 새 출발 직업소개소 입주 건물]
[연동 외부 사례: 물류 포장센터 교대조 변경]
[합의 상태: 21/23]
미정이 화면을 보고 몸을 굳혔다.
"스물한 명? 어제 회의엔 열한 명밖에 없었어요."
"누가 참석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제가 적어 뒀어요. 바꿀 수 없는 일정이라서요."
미정은 달력 뒤에 볼펜으로 적은 열한 개의 이름을 펼쳐 보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함부로 읽지 않도록 지훈은 이름 대신 숫자만 세었다. 회의에 참석한 열한 명과 합의서에 쓰인 스물한 명. 사이의 열 명은 어디서 나왔는가.
지훈은 어제 수첩에 적었던 문장을 다시 읽었다. '누가 안건을 만들었고, 누구에게 거절할 자리가 남아 있는가.'
이번에는 질문에 먼저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미정 씨, 이 문제에 대해 제가 어디까지 연락해도 될까요?"
"회사 담당자에게 제 이름을 밝혀도 돼요. 대신 다른 열 명은 본인들한테 물어봐 주세요."
그 말을 적는 순간 예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21/23 → 22/23]
[사유: 상담 기록 접수]
아직 미정은 어떤 동의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이 합의 인원을 한 명 늘려 놓았다.
제12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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