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예린은 황주석의 이름을 보고 먼저 파일을 닫았다.
"지금 이대로 퍼뜨리면 안 돼요."
강철민이 물었다.
"왜요? 딱 걸렸잖습니까."
"서명이 실제 작성자를 뜻하는지, 단순 결재자를 뜻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도연 씨 추천서 때도 계정 이름과 실제 작성자가 달랐잖아요."
예린의 말에 지훈은 수첩의 빈 줄을 하나 더 남겼다.
'황주석: 기준문 승인 표시. 실제 작성·배포 책임 미확인.'
구은정은 다음 날 검토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는 한빛유지보수의 안세진, 외부 용역사 담당자 임채원, 지훈과 예린이 참석했다. 최아라는 자신에 관한 자료가 설명되는 시간에만 직접 참여하겠다고 했다. 신원이 가려진 다른 사례까지 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은정이 질문했다.
"교정은 무엇을 바꿉니까? 사람의 기록입니까, 사람의 생각입니까?"
채원이 손가락을 모았다.
"자기 결정에 따른 위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합니다. 미래의 후회를 시뮬레이션해 보여 주는 상담 기법이에요."
"그 체험이 실제 기억처럼 남는다는 설명은 하셨습니까?"
"일반적인 심리 시뮬레이션에서는—"
"이건 일반적이지 않아요."
아라가 말을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어제 아이한테 저녁을 차려 주는데, 내가 이미 그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안 일어난 일이요. 그걸 상담이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저한테 할 건지 먼저 물어야죠."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은정은 채원에게 매체를 물었다. 채원은 안내 카드와 구두 설명 외에는 아무 장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예린은 또 다른 기록을 제시했다.
[기억화 매체: 교정 문구]
[동일 문구 반복 시 선택 감정 가중]
[대상자 자발 회상으로 오인 가능]
'자발 회상으로 오인 가능.'
그 한 문장 때문에 채원도 얼굴을 굳혔다.
"전 그 항목을 본 적 없습니다."
예린은 묻지 않았다. 표정을 읽어 봐야 의미가 없었다. 대신 채원에게 본인 사용 계정에서 무엇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지 물었다. 채원은 계약서에서 지정된 설명 자료만 열람할 수 있다고 답했다.
회의가 끝나자 아라는 동의를 철회하고 더 이상의 연락을 금지해 달라는 요청서를 냈다. 은정은 접수 번호를 발급했다. 그 번호가 시스템 기능을 즉시 멈추게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가 언제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남았다.
복도에서 채원이 지훈을 붙잡았다.
"저도 구직자였습니다. 다섯 번 떨어진 뒤 마지막 면접에서 이미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누가 미리 알려 줬으면 덜 아팠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그 기분을 미리 주셨습니까?"
채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움이 되는 질문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 마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채원이 돌아서려다가 멈췄다.
"한 가지는 알려 드릴게요. 제가 아라 씨에게 말한 문장은 원래 없던 문장이에요. 아침에 태블릿에 새로 뜬 걸 읽었을 뿐입니다."
"누가 띄웠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내일은 더 강한 문장이 배정됐어요."
채원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일정을 보여 줬다.
'2차 교정: 당사자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안내.'
지훈은 처음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상담이 아니라 사칭입니다."
채원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그 말을 읽지 않으려고요."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연구원 운영실'.
채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화면에 한 줄이 떠올랐다.
[담당자 임채원 / 교정 불응 위험 감지]
[대체 담당자 자동 배정 시작]
제1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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