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민은 새벽 네 시에 빵집 문을 열었다.
박 씨가 무릎을 다친 뒤로 새벽 반죽의 일부를 철민이 맡게 됐다. 처음에는 누가 이렇게 거대한 손으로 작은 빵을 만들겠느냐고 웃던 단골들도, 이제는 철민의 소금빵이 나오는 시간을 알고 찾아왔다.
철민은 반죽을 한 번 접고 온도계를 바라봤다.
"오늘은 습도가 높습니다. 발효를 십 분만 줄이죠."
박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근데 넌 왜 요새 빵 만들 때마다 말끝에 '선택은 본인이'를 붙이냐?"
"소개소에서 버릇이 됐습니다."
"그럼 오늘은 네가 선택해. 반죽에 책임도 지고."
철민은 한참 웃었다. 과거 조직에 있을 때 자기 이름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말조차 빚으로 기록됐다. 이제는 빵이 실패하면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대신 실패하기 전에 제대로 물어볼 수도 있었다.
점심 무렵 지훈이 빵집으로 내려왔다.
"아라 씨가 내일 현장 견학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담당자가 정식 면접 일정과 구분해 진행할 수 있는지 확인 중이에요."
철민이 손을 씻으며 물었다.
"제가 가서 도울 일은요?"
"없을 수도 있어요. 이번에는 구직자가 직접 기술을 보여 주는 자리예요."
철민은 잠시 섭섭해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게로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중년의 작업복 차림이었다. 어깨에는 오래된 회사 로고가 붙어 있었다.
"강철민 씨 맞습니까?"
철민은 자신을 찾는 옛 조직원인가 싶어 경계했다.
"무슨 일인데요?"
"저는 조경섭이라고 합니다. 직업소개소에서 일자리 상담을 받고 있어요. 지훈 씨한테 이 빵집 얘기를 들어서요."
경섭은 식빵을 두 봉지 샀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저도 새 기술 배워서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쉰이 넘었는데."
철민은 반죽이 묻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저도 얼마 전까지 빵이랑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그럼 적성은요?"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죠. 해 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지훈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에게 적성을 읽는 능력이 남아 있었다면, 경섭의 머리 위 숫자를 보는 쪽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 대신 긴 이력서를 받아 읽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경섭이 떠난 뒤 지훈은 아라의 현장 견학 관련 서류를 다시 점검했다. 견학은 채용을 보장하지 않으며 안전교육과 담당자 동행이 필수였다. 아라는 자신의 작업 노트 일부를 소개하기로 했을 뿐, 실제 가동 설비를 임의로 만지지 않기로 했다.
"준비가 많네요."
철민이 말했다.
"많아야죠. 누군가를 위험한 현장에 밀어 넣는 건 취업 지원이 아니니까요."
그날 저녁, 미래재능거래소의 공개 페이지에 짧은 안내가 게시됐다.
'예측 대상자의 직접 지원은 플랫폼 운영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나, 추천 성과 집계에서 제외됩니다.'
예린은 그 문장을 읽고 한숨을 쉬었다.
"직접 노력해서 취업한 사람은 자기 성과가 아니라고 빼는군요."
지훈은 빵집 진열대에 놓인 마지막 소금빵을 집었다. 빵은 조금 덜 부풀어 있었지만 향은 좋았다.
"사람이 일자리를 얻는 걸 누가 점수로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잠시 뒤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점수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막는 근거가 된다면, 상관없는 일이 아니죠."
새벽에 구운 빵은 오늘 팔아야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선택은 내일 바뀔 수도 있었다. 지훈은 그 차이를 기록지 맨 위에 적었다.
제10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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