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아가 심리에 참석하겠다고 말하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우리를 한 번씩 훑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괜찮겠어?'라는 질문을 참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결정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주변에서 계속 허락 여부를 묻는다면 결국 허락하는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된다.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 내가 물었다.
"그게 낫다." 서아가 웃었다.
심리는 법원의 재판이 아니었다. 기억 보관국의 운영망이 자체적으로 개설한 분쟁 절차였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했다. 중립적인 심판인 것처럼 화면을 꾸며 놓았지만 심리의 규칙, 기록의 보존 위치, 결과를 실행할 권한을 모두 운영사 측이 쥐고 있었다.
남기혁 형사는 그 한계를 문서로 정리했다. 실제 법적 효력을 주장할 수 있는지와 별개로, 운영망이 장치 상태를 바꿀 위험이 있었다. 그는 증거 보존과 현장의 안전에 집중하고, 누구에게도 출석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심리에 응하지 않으면요?" 내가 물었다.
"현재 장비 설정상 미응답으로 간주하고 삭제 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시우가 답했다.
"참석하면 기억을 빼앗길 수 있고, 안 가면 기록을 지우겠다. 좋은 선택지네요."
"선택지처럼 만든 협박이죠." 유나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 번째 선택이었다. 서아가 어릴 때 그렸던 시계처럼 어느 쪽도 자동으로 결정되지 않게 하는 절차. 시우는 원본 서류가 보관된 서버와 운영망의 상태 변경 장치 사이에서 통신 경로를 분리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새 기록을 삭제하는 명령은 임시로 막되, 누가 어떤 명령을 보냈는지 감사 로그는 남기는 방식이었다.
"그럼 외부 시스템까지 전부 막히나요?" 서아가 물었다.
"아니요. 제가 관리하는 관측 장비에서만 가능합니다. 운영망 전체가 멈췄다고 발표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동의했다. 지난번 전국 퇴근망을 막을 때도 이미 겪었다. 세 군데의 시험 장치가 멈췄다고 전국의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심리 개시가 가까워지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서아의 휴대전화에서 어제 찍은 사진 세 장이 '촬영자 불명'으로 표시됐다. 사진 자체는 남아 있었고 파일의 해시값도 같았다. 그러나 일부 메타데이터에 연결된 계정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
"내 이름을 지운다는 게 이거야?" 서아가 말했다.
시우가 휴대전화를 직접 만지지 않고 화면을 살폈다.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메타데이터 동기화 오류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발생했다는 게 불길하네요. 원본을 별도로 보존해 둡시다."
나는 서아에게 확인했다. 파일 보존을 우리 팀이 도와도 되는지. 그녀가 허락하자 기혁 형사가 정식 절차에 따라 복사본을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확인이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였다.
심리 준비에는 뜻밖에도 아주 평범한 문서 작업이 필요했다. 진술서의 글꼴 크기, 참고자료의 페이지 번호, 제출 시간, 서로 다른 원본 파일의 구분. 나는 이런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회사에서 배포가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로그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도겸아, 이 페이지는 빼자." 서아가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어린 시절 문집의 개인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건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친구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그 이름이 나중에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아는 증인을 강제로 임명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심리에 자신이 아는 모든 아이의 사생활을 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맞아. 필요한 범위만 내자." 내가 답했다.
그녀는 다시 자료를 검토했다. 이번에는 사진의 원본과 복제본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표지를 달았다. '원본 확인 안 됨'이라는 붉은 글씨가 여러 장에 붙었다. 그것이 변명의 표식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못된 확신을 막는 표시였다.
한시우는 시우데이터의 인수 계약 관련 자료를 따로 준비했다. 구태형이 회사 명의로 자동 갱신 요청을 넣었던 이력과, 실제 승인한 직원이 확인되지 않는 부분을 분리했다. 그가 계약 당사자로 지목돼 있는 이상 어떤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자기 회사의 책임을 줄이려는 해명으로 읽힐 수 있었다.
"저도 전부 모른다고 써야겠네요." 시우가 말했다.
"그게 당연하죠." 내가 답했다.
"대표이사가 모른다고 하면 사람들이 무책임하다고 욕하겠죠."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하는 대표이사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특히 여기선 그 말 한마디에 누가 몇십 년을 일해야 할지 몰라요."
시우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관리 권한이 미치는 서버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 목록은 생각보다 짧았다. 우리가 살펴볼 수 없는 장치가 여전히 많았다. 나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심 때문에, 확인할 수 있는 자료까지 허술하게 다루지 않기로 했다.
점심 무렵 기혁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부터 일하던 동료 수사관이 증거 목록을 검토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최종 판단까지 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형사님이 제일 바쁘시네요." 내가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은 정식 수사 범위 안에 있는 부분입니다. 차 씨도 잠 좀 주무세요."
"저는 몇 시간 자도 꿈에서 코딩해요.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더 쉬셔야죠."
전화를 끊고 나는 의자에 기대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하루에는 출근, 퇴근, 시간 정지, 기억 기록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를 만나도 사건을 묻고, 서아를 만나도 옛날을 묻고, 유나를 만나도 기록이 맞는지부터 확인했다. 이대로라면 누군가의 기억을 지켜 놓고도 함께 살아갈 현재는 텅 비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뭐 먹고 싶어?' 돌아온 대답은 딱 한 줄이었다. '형이 해 주는 건 별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만 해도 기억 속에서 동생의 이름이 희미해졌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서로 장난칠 수 있었다.
유나가 내 웃음소리를 듣고 물었다.
"좋은 일 있어?"
"동생이 제 요리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했어요. 기억이 돌아왔는지보다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럴 거면 오늘 저녁은 어머님한테 부탁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에게 식사할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정한 강제 기한 앞에서 잠시 쉬는 것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날 서아도 심리 자료를 덮고 집에 있는 고양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자신이 살아 있는 지금의 집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듯했다.
밤이 되자 우리는 한 가지 원칙을 최종 문서에 넣었다. 어떤 연결 요청이 와도 당사자 동의를 다시 확인할 것. 답을 알 수 없을 때는 새 증인을 만들어 내지 않을 것. 그리고 기계가 정한 시각이 지나더라도 사람의 부재를 동의로 읽지 않을 것.
내가 마지막 문장을 읽자 서아가 말했다.
"어릴 때는 그걸 몰라서 무서웠나 봐. 대답 안 하면 어른들이 화를 낼까 봐."
"이제는 화를 낼 사람이 누구든, 네가 답할 수 없다고 말할 권리는 있어."
우리는 그 문장을 수첩 표지 안쪽에 적었다. 첫 장이 사건의 시작이었다면, 표지 안쪽은 앞으로 계속 지킬 규칙이었다.
저녁 늦게 어머니가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내가 수첩에 하루 종일 적은 숫자를 보시더니 한숨을 쉬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해. 시간도 그렇고."
"시간이 밥을 먹어요?"
"아니, 사람이 시간을 먹고사는 거지.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모여서 살았지, 기록으로만 살지 않았어."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떤 기록을 지우지 못하게 막는 일은 중요했다. 그렇다고 그 기록을 지키겠다고 오늘 살아 있는 사람의 하루를 전부 빼앗으면 무슨 의미일까.
어머니는 서아에게 반찬을 더 놓아 주었다.
"네가 어릴 때 우리 집에 오면 계란말이만 골라 먹었어."
"제가요?"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다음에 오면 또 해 줄게."
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하고 싶었다. 몇 초 뒤라도 누군가 지워 버릴까 봐가 아니라, 우리에게 아직 평범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심리 한 시간 전, 시우가 새 자료를 가지고 왔다. 운영망이 일곱 달 전 작성된 진서아 수탁 계약의 수정본을 심리 자료에 첨부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에 위조 흔적을 확인했던 그 부속 설명서였다.
"이미 분쟁 접수된 문서인데요." 내가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분쟁 표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 화면에서 그 표시가 숨겨져 있어요. 원본을 보는 사람은 유효한 계약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서아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그럼 그 사람이 누가 됐든 첫 번째로 물을 게 생겼어. 왜 내가 읽지 않은 조항을 내가 읽었다고 하는지."
드디어 심리가 시작됐다. 병원의 빈 회의실 벽에 오래된 구청 사무실처럼 꾸며진 가상 화면이 떴다. 의자가 세 개, 비어 있는 책상 하나. 구태형의 회사 로고는 보이지 않았다.
[원본 증인 확인 심리]
[출석자: 진서아]
[반대 당사자: 미지정]
"반대 당사자가 없으면 누구랑 다투죠?"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면 속 빈 의자에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졌다.
[운영대리인: 차정수]
내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살아 있는지도 확정하지 못한 사람을, 지금 나와 서아의 상대편에 앉혀 놓은 것이다.
제9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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