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의 진서아.
그 이름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엉뚱한 계산이 먼저 떠올랐다. 1998년이면 나는 어린아이였다. 진서아 역시 그 무렵 나와 만났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때 그녀가 몇 살이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설명해 주지 못했다.
"일곱 살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자료가 있어?" 내가 물었다.
서아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어떤 나이였는지는 알아. 하지만 왜 여기 기록된 건지는 몰라. 그날 병원에 왔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아."
그 말은 차분했다. 어쩌면 너무 차분해서 더 걱정스러웠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과거를 밝혀 줄 것처럼 말하면 쉽게 매달린다. 나는 이미 그랬다가 몇 번이나 속았다. 서아만큼은 스스로 확인할 기회를 잃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는 관측을 중단했다. 문은 닫힌 채였고, 검은 사각형은 '대기' 상태로 남았다. 기혁 형사는 사고 당시 아동 출입 관련 문서의 적법한 열람 가능성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서아 자신의 기록이라 해도 병원의 모든 자료를 마음대로 가져올 권리는 없었다. 그녀는 직접 필요한 범위의 조회 동의서를 읽고 서명했다.
"세월이 흘렀는데 또 서명이라니." 내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읽고 한 거잖아."
"그게 제일 중요하지."
다음 날, 서아는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찾아갔다. 나는 동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먼저 와 달라고 부탁했다. 유나도 함께였다. 우리는 오래된 초등학교 근처 분식집에 앉았다. 가게는 간판만 바뀌었고 창가 쪽에 붙은 오래된 타일은 그대로였다.
"여기서 떡볶이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 서아가 말했다.
"그건 다행이네. 이 동네 기억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니까."
"그때 누가 자꾸 나보고 '잊어도 괜찮다'고 했어. 좋은 뜻으로 한 말인 줄 알았지."
그녀는 수첩의 오래된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일곱 달 전 그녀가 썼다는 문장 외에도 낯선 도형이 있었다. 세 개의 동그라미와 작은 사각형 하나. 내가 손목시계에서 본 세 번째 구간 표시와 똑같았다.
"이것도 네가 그린 거야?"
"그림은 기억나. 글씨는 모르겠어."
서아가 웃으려다 포기했다.
"이상하지. 어릴 때 그린 낙서 같은 게 가장 정확하게 떠올라. 어른이 돼서 서명한 계약서는 오히려 누가 바꿨고."
유나가 종이컵을 앞으로 밀었다.
"기억이 없어도 지금 느끼는 건 진짜야. 겁나면 더 보지 않아도 되고."
"무섭기는 해.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 내가 증인이라면 왜 내가 아니라 누군가 내 이름으로 증언을 하는지."
오후에 남 형사가 연락해 왔다. 1998년 사고 현장의 정식 출입 대장에는 진서아의 이름이 없었다. 대신 '보호자와 함께 방문한 미성년자 1명'이라는 표기가 있었다. 이름은 비어 있었고, 기록 담당자 서명도 누락돼 있었다.
"그게 나일 수도 있겠네." 서아가 말했다.
"그럴 수는 있어요. 하지만 현재 자료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형사가 답했다.
"그럼 기록을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죠."
서아는 동네 도서관에 보존된 학교 문집을 찾아보자고 했다. 병원과 학교가 직접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어린 서아가 그날 이후 무엇을 기억하려 했는지는 알 수 있을지 몰랐다.
도서관에서 책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아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먼저 설명했다. 어머니는 잠깐 망설이다가 일곱 살 무렵의 서아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 애는 늘 가방에 작은 수첩을 넣고 다녔어.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한테 들었는지까지 적더라."
"제가 시켜서요?"
"네가? 넌 그때 숙제도 안 했어. 그 애가 원래 그랬지."
나는 어머니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어린 내가 이미 남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천재였다는 환상이 깨졌다. 기분 좋은 깨달음이었다. 과거를 찾아 헤매다 보면 가끔은 내가 남들보다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기억하는 나는 그냥 숙제를 미루던 아이였다.
"서아가 병원에도 자주 갔어요?"
어머니는 대답하기 전에 한참 생각했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그 애가 병원에 갔다 온 뒤 종이 시계를 만들었다는 거야. 손목에 차고 다녔지. 그런데 그게 사고 날이었는지, 그 다음 주였는지는 모르겠어. 너희 둘이 같이 있었다고도 말 못 하겠다. 기억을 억지로 맞추면 안 되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어머니는 내가 듣고 싶어 할 대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잊힌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서아에게 통화 내용을 전하자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가 내 얘기를 기억해 줬구나."
"응. 그리고 내가 숙제를 안 했다는 사실도."
"그건 나도 기억해. 선생님이 숙제 검사할 때마다 네가 필통만 뒤졌잖아."
나는 그녀를 돌아봤다. 이건 사실이었다. 나에게도 필통 안에 없는 지우개를 찾으며 시간을 끌었던 기억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기억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어린 시절이 전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내가 누군가의 오래된 친구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해." 서아가 말했다. "같이 숙제 안 했던 건 기억하면서 그 중요한 병원 날은 왜 잘 기억 못 하지?"
유나가 조용히 답했다. "중요하다고 해서 모두 또렷하게 남는 건 아니더라. 특히 그때 겁을 많이 먹었다면 더 그럴 수도 있지."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사진을 볼 수는 있지만, 떠오르지 않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의 기억을 자기 것처럼 받아들이지는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서아는 매운 떡볶이를 시켰고 나는 순대를 골랐다. 그녀가 내 접시에서 간을 하나 집어 가려다 멈췄다.
"예전에도 내가 네 걸 마음대로 집어 먹었나?"
"모르겠어. 지금은 물어보고 먹으니까 문제없지."
그녀가 웃으며 허락을 구했다. 나는 종이컵 하나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 별것 아닌 식사였지만, 오래전의 우리가 현재의 사람들 위에 마음대로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기억을 찾는 과정이 오늘의 선택을 침범하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열람 담당자가 학교 문집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서아는 손을 씻고 물기를 닦았다. 오래된 책을 만질 때 손을 깨끗이 하라는 안내를 누가 시키기 전에 지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서아가 작은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알았다. 누군가의 큰 비밀 앞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그것을 배우는 중이었다.
문집에는 어린아이들의 짧은 글이 실려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 '우리 집 강아지', '친구에게'. 서아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멈췄다. 자기 글씨처럼 보이는 문장이 나올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한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
제목은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이었다. 이름은 진서아. 내용은 단 세 줄이었다.
'안에 있는 아이가 안 나온다고 해서 거짓말하는 건 아니다.'
'나오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도 집에 가야 한다.'
"이거 내가 쓴 거야." 그녀가 말했다.
"기억나?"
"마지막 줄을 지우려던 건 기억나. 선생님이 남겨 두라고 했거든. 모두 집에 갈 권리가 있다고."
나는 한참 그 글을 바라봤다. 스물여덟 해 뒤 우리는 사실상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문 안에 아이를 가둔 시스템과 싸우면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지 않으려 애썼다.
유나가 마지막 장의 인쇄 정보를 가리켰다. 문집은 1999년에 발행됐다. 병원 사건 다음 해였다. 원고를 접수한 날짜는 1998년 11월. 우리가 찾는 날보다 몇 달 뒤였다.
"적어도 이 글이 최근에 누군가 만든 건 아니네." 내가 말했다.
"맞아. 하지만 내가 병원 복도에 있었는지는 여전히 모르지."
서아의 대답이 좋았다. 확실한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있었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서아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일곱 살 때 저 글을 썼다면, 그날 문 앞에 있던 애가 누구인지 알았을지도 몰라. 도겸아. 너랑 시우 중 누군가였을까?"
"모르겠어. 그렇지만 그 아이가 아직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아이에게도 물어봐야지."
나는 보관실의 아이가 '내 말이 없어지지 않게 해 줘'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우리가 찾는 증인은 어쩌면 무엇을 봤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잊지 않기로 했던 사람일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하자 서아의 휴대전화로 한 장의 사진이 들어왔다. 발신자는 없었다. 오래된 학교 복도에서 두 아이가 종이배를 들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내 어린 시절과 닮았고 다른 아이는 얼굴이 지워져 있었다.
사진 밑에는 줄이 하나 있었다.
[증인 2인의 기억 대조 요청]
"두 명?" 서아가 중얼거렸다.
그동안 장부에는 증인이 한 명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사진은 처음부터 두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9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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