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절이 기록에 남은 다음 날, 장부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새벽 네 시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번호 대신 오래전 영병원 로고가 떠 있었다. 내가 받지 않자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0번 직원이 확인되지 않아 긴급 대리 배정이 필요합니다. 차도겸 님의 현재 근무지를 확인해 주십시오.’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집 안은 조용했다. 어머니가 주고 간 노란 화분이 창가에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내가 잃어버렸던 기억 하나와 달리 화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물을 줘야 할 때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흙이 마르면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참 화분을 바라보다 기혁 형사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원본 보존. 발신 경로 확인 중. 직접 응답하지 마십시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네 시 십이 분. 아직 여섯 시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우리는 1998년 승강기 사고의 세 번째 인원을 찾아왔다. 구조 기록에는 세 명이라고 적혔으나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들은 두 명만 확인했다. 한정호는 한 명이 더 남았다고 했고, 장부는 그 빈칸에 '0번 직원'을 붙였다. 그런데 실제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세 번째가 실제 사람인지 기록 한 건인지 먼저 구분해야 해요.” 시우가 말했다.
“그리고 실제 사람이면 그분의 이름을 찾아야겠죠.”
“이름을 찾는다고 그 사람의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나는 웃었다. 이 팀에서 누군가 원칙을 빠뜨리면 다른 사람이 이어 줬다. 그게 좋았다.
오전 다섯 시 반, 부산에서 연락이 왔다. 최은규 씨가 자신의 수기 근무표와 아버지의 오래된 기록을 대조하다 특이한 메모를 발견했다고 했다. 1998년 영병원에 외부 정비 인력으로 출입하던 그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 인원 명단이 실제 사람 수가 아니라 '구조 완료 통로 수'를 세었다고 적어 두었다.
“통로 수라면요?”
“승강기 문이 열렸을 때 밖으로 나온 사람이 둘인데, 그 사람들을 실은 침대가 다른 통로로 한 번 더 이동했을 수 있어요. 문서에는 세 차례 이동으로 적혔고요.”
나는 9번 계단 사진을 떠올렸다. 출입자는 둘인데 나가는 기록은 셋. 우리는 자꾸 세 명의 사람을 상상했다. 그러나 문을 통과한 횟수와 사람 수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 0번 직원은 아예 없던 사람일 수도 있나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는 다른 증언도 있어요. 하나로 단정하지 맙시다.”
그날 아침 우리는 최은규 씨와도 통화했다. 그는 오래된 수기 근무표를 보여 준 뒤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 많은 메모를 남겼는지 생각해 봤다고 했다.
“아버지는 실수한 날이 더 정확하게 적혀 있어요. 부품을 잘못 가져온 날, 교대를 헷갈린 날, 다시 전화해서 사과한 날. 전에는 왜 이런 걸 잔뜩 써 놓았는지 몰랐어요.”
“왜였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그 실수를 뒤집어쓰지 않게 하려고요. 누가 잘못했는지 남기면 누가 잘못하지 않았는지도 남잖아요.”
그의 말은 우리에게 필요한 마지막 기준이 되었다. 0번 직원의 출처를 분리하는 일은 누가 일을 하지 않았는지 밝히는 과정이기도 했다. 내가 1998년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한정호가 영구 근무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런 부정의 기록들은 누군가 자기 시간을 증명하는 데 꼭 필요했다.
통화를 마치고 우리는 복제 장치의 결과를 한 장짜리 표로 정리했다. 항목마다 사실을 적는 칸과 추정이라고 표시하는 칸을 구분했다. '차도겸 어린 시절 보호자 동행 기록'은 확인된 자료였다. '0번 직원이 실제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 '2019년 이후 무단 대리 승인'은 근거가 있지만 실제 조작자의 신원은 더 조사해야 했다.
시우가 말했다. “프로그램을 고칠 때 테스트 케이스를 이렇게 쓰면 좋겠네요. 한 사람을 여러 행으로 세는 경우, 여러 기록을 한 사람으로 합치는 경우, 과거 보호자를 현재 보호자로 잘못 연결하는 경우.”
“그리고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요.” 내가 말했다.
서아는 표 맨 아래에 조그만 문장을 더했다. ‘사람의 이름은 자동 보정 대상이 아니다.’
나는 그 말을 다시 읽었다. 알고리즘은 빈칸을 싫어했다. 처리되지 않은 값을 보면 근처에 있는 다른 값으로 채우고, 누락된 시간을 보면 누군가에게 배당하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은 빈칸 하나를 메우기 위한 보정값이 아니었다.
우리는 표를 현장 담당자에게 공유하면서도 인물들의 개인정보는 지웠다. 피해자가 자기 이름으로 반대할 권리를 지키는 것과, 그 이름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사건을 알아야 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사생활까지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내 손목시계는 조용했다. 처음 능력을 얻었을 때는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 순간마다 세상에서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지금은 달랐다. 주변에 누군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평범한 움직임 때문에 나는 조금 덜 두려웠다.
오전 다섯 시 오십 분. 우리가 준비한 시험 장치에는 9번 계단의 기록과 현장 수기 기록을 나란히 띄웠다. 두 번째 시계가 가리키는 오전 여섯 시가 오면 과거의 인수인계 절차가 한 번 더 재생될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는 긴급 연락망을 점검했다. 누군가 의식을 잃거나 현실의 시간을 혼동하면 관측을 중단하고 밖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서아와 유나는 현장에 접근하지 않고 영상과 음성 기록을 맡았다. 나는 시계의 상태만 관찰했다. 문을 열거나 서류에 서명할 권한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06:00.
복도 벽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오래된 응급전원실이 마치 수면 아래에서 떠오르는 듯했다. 이전에는 남자 그림자만 보였는데 이번에는 책상 하나가 나타났다. 책상 위에는 종이 세 장과 고장 난 시계가 있었다.
첫 번째 종이는 구조 완료 보고서였다. 두 명의 상태가 '안전'으로 표시돼 있었다.
두 번째는 긴급 대기자 명단이었다. 한 명의 이름이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세 번째 종이는 아동 보호자 출입 기록이었다. 어린 차도겸의 이름이 있었다.
“서로 다른 세 서류였어요.” 내가 말했다. “원래부터 하나의 근무표가 아니었고.”
시우가 빠르게 노트에 적었다. “두 사람의 구조 확인, 미확인 대기 한 건, 보호자 동행 아동 한 명. 셋을 합친 것이 지금 장부의 ‘0번 직원’일 수 있겠네요.”
시계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나는 손목에서 풀어 책상 위에 놓았다. 유리가 검게 흐려지고 문장이 떠올랐다.
[0번 직원 신원 확인 불가]
[임시 수령자 차도겸에게 즉시 귀속]
“잠깐.”
나는 소리 내 읽었다.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결론과 제게 귀속된다는 결론 사이에는 아무 이유가 없잖아요.”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옛 기록의 항목과 현재 장부의 승인 로직이 연결돼 버린 거예요. 실제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요.”
유나가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녀는 지금까지 우리가 찾은 사람들의 대답을 하나씩 읽었다. 최은규는 자신의 기록을 다른 용도로 쓰지 말라고 했다. 한은채는 아버지의 이름을 돌려 달라고 했다. 동생은 자신에게 오는 알 수 없는 요청을 거절했다. 그리고 나도 수령하지 않겠다고 기록했다.
“여기 있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어.” 유나가 말했다.
그때 벽에 투명한 문이 하나 나타났다. 문 너머에는 1998년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종이를 쓰고 있었다. 얼굴은 흐렸지만 손목에 새겨진 ‘정수’라는 글씨가 보였다.
“아버지?” 내가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소리 내 읽었다.
“열한 분의 보관은 현장 구조에 한해 허용한다. 보관이 끝난 뒤 수령하지 않은 사람에게 새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입술을 보려고 눈을 좁혔다. 그 순간 남자는 종이를 뒤집었다. 종이 반대편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변경 신청: 보호자 동행 아동에게 영구 보관 승계]
그가 펜을 들었다. 서명을 하는가 싶더니 종이에 긴 선을 그었다. 취소선이었다.
“이것은 신청도 아니고 승인도 아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확인인 채로 남겨 둬라. 사람을 만들어 넣지 마라.”
나는 처음으로 목이 메었다. 그 목소리가 진짜 아버지의 것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내 이름을 빌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는 말은 지금의 나도 선택할 수 있는 말이었다.
관측이 끝나자 장부가 세 가지 항목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우리의 시험 장치에서는 그랬다.
[구조 완료: 2건]
[추가 대기: 미확인 1건]
[동행 아동 출입: 1건, 근무 기록 아님]
“드디어 분리됐어요.” 시우가 말했다. “같은 키로 합쳐진 기록을 제자리에 돌려놨어요.”
그러나 중앙 운영망은 다른 대답을 했다.
[0번 직원 분리 시도 감지]
[전국 운영망 동기화 중단]
[오후 18:00 전체 시각 대체 재정산 예고]
이번에는 내 가족도, 협조하던 세 사업장만도 대상이 아니었다. 중앙 운영망이 연결된 모든 곳에 위험이 닥칠 수 있었다. 우리는 단번에 모든 기록을 되돌리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먼저 피해를 막아야 했다.
나는 서아에게 말했다.
“여섯 시 전에 준비해야 해. 하지만 한 사람의 시계로 전국을 고치려 들지는 않을 거야.”
중앙 운영망의 경고가 뜬 뒤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물을 마셨다. 여섯 시에 전국의 장부를 다시 맞춘다는 말은 무서웠다. 그러나 그 말이 곧 실제 재정산이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운영자는 모든 것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직접 확인한 결과는 협조 사업장에서 새 승인 0건이었다.
“실제 영향이 어디까지 갈지 모릅니다.” 시우가 말했다. “과장하면 현장이 혼란스러워지고 축소하면 대비를 못 해요.”
우리는 확인된 위험과 예상되는 위험을 분리해 안내문을 작성했다. 승인 요청이 도착한 장치에서는 내용과 당사자 확인을 우선하고, 별도의 검증 없이 대리 출근이나 귀가에 동의하지 않도록 했다. 정상적인 근무 기록은 현장 담당자가 따로 보존하기로 했다.
서아는 복잡한 표현을 줄였다. “누군가 당신의 이름으로 시간을 쓰겠다고 하면 먼저 물어보세요. 내가 허락했는지, 왜 필요한지, 거절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유나가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모르면 누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 문장을 보자 나는 처음 기억 징수 안내를 받았던 날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늘의 시간을 사용했다고 통보받았고, 내일도 보겠다는 문장을 읽었다. 그때 누군가 설명 하나만 해 줬더라도 나는 덜 무서웠을 것이다.
“이제 다른 사람에겐 적어도 설명을 남기자.” 나는 말했다.
우리는 단체 메시지를 무차별 발송하지 않았다. 직접 협조 관계가 확인된 담당자들에게만 필요한 경고를 전달했다. 그 이상은 관계 기관의 공지와 현장의 대응 범위에 맡기기로 했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까지 내 권한이라고 주장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손목시계에서 잠자던 문장 하나가 켜졌다.
[0번 직원의 실제 담당자 정보 확인]
[최초 수령 거부를 기록한 사람: 차도겸]
[기록 시각: 2026.10.26 18:00]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오전이었다.
오늘 저녁의 내 거절이 스물여덟 해 전 문서에 이미 기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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