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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86화
PAYLUA ORIGINAL · 제86화

86화. 돌아온 사람의 증언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43자

오프라인 책장
처음으로 시간이 멈춘 그날, 아버지는 누구를 구하려 했을까. 질문은 단순했지만 답을 고를 수 없었다. 영병원 기록에는 환자 세 명이 아니라 승강기 안에 있던 세 명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원본 계약에는 ‘보관 시각 11분’이라는 표현만 남아 있었다. 그 사이의 빈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면 아직 증언이 더 필요했다. “병원 사람들부터 찾아야겠어요.” 내가 말했다. 남기혁 형사는 당시 직원 명단 중 연락이 가능한 사람을 확인했다. 오래된 일이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했다. 연락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다시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 1998년 사고 당시 환자 운송 담당자로 일했던 장민호라는 노인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이제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나사가 들어 있는 투명한 서랍이 벽 한쪽을 채우고 있었다. “시간이 멈췄던 병원에 있었느냐고?” 그는 우리의 질문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늘 무슨 괴담을 찾더라고. 난 그런 건 몰라. 다만 그날 승강기가 멈췄고 누가 안에서 울고 있었다는 건 기억해.” “안에 몇 명이 있었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세 명이라고 보고됐지. 근데 내가 직접 본 건 두 명뿐이었어. 세 번째는 다른 직원이 봤다고 했어.” 나는 수첩을 펼쳤다. 두 명은 직접 본 사람, 한 명은 전해 들은 사람. 숫자가 맞는다고 같은 사실은 아니었다. “그때 차정수 씨를 아셨나요?” “알았지. 별관 전원 설비를 봐 주던 사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어. 고장 난 시계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나한테는 사람부터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 장민호는 한참 생각하다가 작은 철제 서랍 하나를 열었다. 오래된 열쇠들이 줄에 꿰여 있었다. 그는 낡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 다른 열쇠와 달리 이빨이 없는, 숫자만 새겨진 얇은 판이었다. ‘11’. “이건 뭡니까?” “정수가 나한테 줬어. 누가 나중에 사고 시각을 바꿔 말하면 그 숫자가 틀렸다는 증거가 될 거라면서.” “11분이요?” “그래. 원래 열한 분이었다고.” 나는 손끝이 떨렸다. 사진의 익명 편지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금속판이 왜 필요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판의 뒷면을 보여 주었다.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움직이면 먼저 이름을 묻는다.’ “무슨 뜻입니까?” “나도 몰라. 그냥 그 말만은 꼭 전해 달라고 했어.”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유나가 내 옆에 섰다. “너 계속 손을 펴고 쥐고 있어.” “긴장해서요.” “아버지 얘기가 조금만 나오면 그래.” 나는 부인하려다 말았다. 가끔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것보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가 더 두려웠다. 내가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질까 봐. 이미 누군가가 그 마음을 이용해 내 시간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내가 그 빚을 대신 질 이유는 없어요.”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버지가 너를 사랑한 일은 청구서가 아니야.” 그날 오후, 진서아가 별도로 추적하던 1998년 사고 이후의 보호자 통지 기록을 가져왔다. 원본은 일부 훼손돼 있었지만, 당시 복사본을 보관하던 가족이 자료 제공에 동의했다. 그 기록에는 ‘관측 종료 후 아동 1명이 보호자와 귀가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내가 집에 왔다고요?” “누구인지는 더 확인해야 해. 하지만 그날 아이 하나가 현장을 떠난 건 맞는 것 같아.” 우리는 그 아이를 곧바로 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명숙 씨가 목격했다는 여자아이, 그리고 한시우가 알고 있는 보관실의 아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내가 찾고 싶은 사람으로 바꿔 적는 순간 또 다른 잘못된 장부가 생긴다. 그러나 이 문서의 맨 아래에는 뜻밖의 주석이 있었다. ‘동행 아동의 귀가를 확인함. 수령 예정자 등록은 무효로 표시.’ 표기자 이름은 차정수였다. “무효라고 표시했는데 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죠?” 내가 물었다. 시우는 원본 장부의 로그와 현재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무효 표시는 1998년에는 보존돼 있었고, 2007년 이관본에는 아예 넘어오지 않았다. 2019년 운영망은 무효 표시가 없는 자료를 기준으로 새로운 계약을 만들었다. “결국 오래된 무효 표시 하나가 누락된 거군요.”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아직 몰라요.” 시우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료만으로도 현행 자동 수령 요청을 정지할 근거를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서아는 1998년 복사본과 현재 시스템의 비교 보고서를 만들었다. 나는 보고서의 맨 앞에 굵게 적었다. ‘차도겸에게 1998년 근무나 수령 동의가 있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음.’ 유나는 그 밑에 한 줄을 더했다. ‘다른 아이의 기록도 본인 확인 전 임의로 이전하지 않음.’ 오후에는 오유나와 잠깐 둘이 남았다. 시우와 문석이 장비를 보러 간 동안 서아는 관계자 연락을 정리했다. 나는 복도 창가에서 유나가 종이컵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예전에 만났던 일을 조금만 말해 줄래요?” “왜?” “내가 잊었다는 이유로 당신한테 계속 설명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유나는 잠시 웃다가 창밖을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비 오는 날마다 우산을 두 개 들고 다녔어. 하나는 네 거고 하나는 누군가 빌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제 집에는 우산이 한 개뿐인데.” “다 잃어버렸겠지.” 그녀는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그날은 학교 도서관 앞에서 만났어. 너는 시간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떠들었고, 나는 그게 위험하다고 했지. 그런데 네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이거였어. 누군가 시간을 더 갖게 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못 돌아온 사람이 돌아올 길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으려다 손을 멈췄다. “직접 들은 말이에요?” “응. 그때 나는 네 맞은편에 앉아 있었어.” “그럼 당신이 기억하는 나를 기록해도 될까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와 네가 기억하는 네가 같을 필요는 없어.” 그 말이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나를 찾으려고 하면, 그 사람이 나를 계속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직 내 옆에 있어요?” 내가 물었다. “너를 구해야 한다고 계약했으니까.”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표정이 굳었다. “농담이야.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마.” “제가 계약이라는 말에 예민해졌습니다.” “알아. 그래서 더 말해 줄게. 나는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거야. 네가 날 여섯 번 잊었어도 그건 내 선택이야.” 나는 컵을 들어 그녀의 컵에 가볍게 부딪쳤다. 축하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이 관계는 장부가 대신 맺을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장민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는 우리가 떠난 뒤 서랍 깊숙한 곳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찾았다고 했다. 사진 속에는 작업복 남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의료진 한 명이 있었다. 뒤쪽 유리문에는 ‘응급전원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 차정수 씨입니까?” “맞아. 그런데 사진 속 사람을 더 보라고 전화한 건 아니야. 뒤에 시계가 있어.” 나는 사진을 확대했다. 응급전원실 벽에 걸린 시계 두 개가 나란히 보였다. 하나는 오후 여섯 시, 하나는 오전 여섯 시였다. 두 시계 아래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지 장치와 귀환 장치는 다른 시스템이다.’ 온몸의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오후 여섯 시 퇴근망과 오전 여섯 시 출근망. 두 시스템은 최근에 누군가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최초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원래부터 쌍으로 존재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여섯 시가 두 번 온다는 말은...” “한쪽은 시간을 멈추고 다른 쪽은 돌려보내는 거겠지.” 유나가 속삭였다. 시우가 통신망 기록을 살피더니 고개를 들었다. “지금 두 장치에서 같은 호출이 일어나고 있어요. 호출 목적이 다릅니다. 하나는 새 수령자를 찾고, 다른 하나는 원래 수령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복원하려고 합니다.” 두 장치가 내 이름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알림이 오기 전, 우리는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한 번 더 했다. 서아는 어머니가 확인해 준 날짜와 사진 속의 날짜가 일치하는지만 물었다. 어머니는 1998년 그날에 대해 이제 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그래. 대신 내일은 네 얼굴 좀 보여 줘.” “아까부터 보여 드리고 있잖아요.” “화면 말고. 밥 먹을 때.” 나는 웃었다. 어머니의 말은 무슨 암호처럼 어렵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이 화면 밖에도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현재의 만남까지 미루면 안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유나는 통화가 끝나자 내 수첩을 확인했다. 기억이 징수될 때마다 날짜와 대상만 적던 첫 장에는 이제 ‘오늘 한 선택’이라는 칸이 새로 생겼다. 그곳에는 동생에게 연락하기, 어머니의 요청을 존중하기, 유나에게 과거를 강요하지 않기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기억을 지키는 방법이 좀 달라졌네.” “뺏기지 않으려는 것만 적으면 계속 잃은 것만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도 남겨 두려고요. 내일 기억이 없어져도 어제의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니까.” 유나는 수첩 끝에 작은 웃는 얼굴을 그렸다. “이건 내가 그린 거야. 네가 그렸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적어 놔.” 우리는 글씨 아래에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한 기록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흔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것. 그것부터가 기억을 지키는 기술이었다. 그날 밤, 한쪽에서 내게 보낸 알림은 이랬다. [차도겸 님은 28년 전 수령을 거부하였습니다.] 다른 쪽은 정반대였다. [차도겸 님은 28년 동안 수령을 완료하지 못하였습니다.] 거부한 것과 못 한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나는 어느 쪽이 원본 기록에 가까운지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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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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