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85화
PAYLUA ORIGINAL · 제85화

85화. 두 개의 여섯 시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553자

오프라인 책장
열한 분이 스물여덟 해가 되는 데에는 한 줄의 코드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물론 실제 시간은 그렇게 간단히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은 언제나 현실보다 쉽게 말을 바꿨다. '임시'를 '상시'로, '보관'을 '양도'로, '귀가 미확인'을 '근무 중'으로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은 키보드 한 번 치는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가 찾은 문서는 정확히 그런 변화를 보여 줬다. 2007년 기록 이관 설명서의 첫 번째 버전에는 ‘보관 기한은 사고 종료 확인 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버전에는 기한이 숫자로 바뀌었다. [종료 조건: 모든 인수 대상의 승인 완료] 세 번째 버전은 더 노골적이었다. [종료 미승인 건은 자동 갱신] 그리고 2019년에 이르면 문장 자체가 사라졌다. 화면에는 ‘기본값: 영구’만 남았다.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과정일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강문석이 고개를 저었다. “정책 문구가 바뀌었다는 건 확인했지만, 실제 장치에 언제 적용됐는지까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버전 번호만 믿고 책임을 단정하면 안 돼요.” “맞습니다. 그래서 실행 기록을 찾는 거죠.” 시우가 들여다보던 모니터에서 조용한 알림음이 났다. 우리와 협조하던 시설 보관소에서 옛 백업 장치를 찾아냈다는 연락이었다. 하드디스크는 이미 읽기 오류가 많았다. 무턱대고 켜면 남은 데이터마저 손상될 위험이 있어 별도의 복제 작업이 필요했다. “오늘 바로 볼 수는 없겠네요.” 유나가 말했다. “그래도 실물이 있다는 게 어디예요.” 내가 답했다. “지금까지는 구태형 운영망이 보여 주는 과거를 읽어야 했잖아요.” 서아가 사진을 뒤집어 책상 위에 놓았다. 1998년 승강기 앞에서 찍힌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림 속의 아버지와 현재의 우리 사이에는 스물여덟 해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종이 위의 먼지는 그 세월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오후 시설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별관의 접근 가능한 구역을 확인했다. 폐쇄된 9번 계단 내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안전한 복도 끝에 있는 옛 기계실 문을 열었다. 지금은 창고로 쓰는 곳이었다. 형광등이 켜지자 부서진 의자와 비상등, 낡은 안내판이 드러났다. 안내판에는 오래된 화살표 세 개가 있었다. ‘수술실’, ‘응급 전원’, ‘대기실’. 대기실 화살표 아래에는 작은 종이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표시는 나중에 붙은 것 같아요.” 시우가 말했다. “나사 자국과 페인트 상태가 달라요.” 관리인은 자신이 정확한 설치 시기를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표시를 떼어 가지 않았다. 사진만 촬영했다. 그때 유나가 벽 한쪽에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창문이 없는 방인데도 환풍구에서는 천천히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어디선가 문서가 넘어가는 것 같아.” 우리가 가까이 갔을 때, 소리는 멎었다. 환풍구 안쪽에 한 장의 종이가 끼어 있었다. 시설 담당자가 안전을 확인한 뒤 집게로 꺼냈다. 종이는 병원 내부의 화재 대응 지침이었다. 1998년 개정판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비상 전원 복구 실패 시 환자 이동을 최우선으로 한다.] [계측 장치의 기록보다 현장 직원의 확인을 우선할 수 있다.] 나는 그 문장 옆에 손으로 적힌 메모를 읽었다. ‘시계는 멈출 수 있지만 사람은 그 안에서 다칠 수 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지금까지 나는 시간이 멈추면 모든 위험도 함께 멈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상 그렇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만질 수 있고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멈춘 세계에도 다칠 위험은 있었다. 누군가 한 번의 판단을 잘못 내리면 시간이 다시 흐를 때 사고가 이어질 수 있었다. “처음 장비를 만든 목적이 구조였다면, 정지 시간에 사람이 이동할 수 있어야 했겠죠.” “그렇다고 장비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는 아직 아니야.” 서아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찾아낸 것은 장비 설계도가 아니라 안전을 우선한다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간을 단순히 팔려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는 단서는 점점 늘고 있었다. 현장으로 나가기 전에 우리는 오래된 설비 점검표의 빈칸을 다시 살폈다. 장민호의 숫자판에 새겨진 11과 아버지 사진의 시계, 두 장비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졌다는 메모. 지금까지는 모두 시간 정지를 설명하는 조각으로 보였다. 그러나 서아는 그것들이 그날 사람들을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묻고 있었다. “승강기가 멈췄으면 사람을 꺼내려면 문을 열어야 했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시간을 멈추면 전기식 문도 멈추는 거 아냐?”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오후 여섯 시에 움직였을 때 수동으로 여는 문은 열 수 있었지만, 일부 자동문은 반응하지 않았다. 정지된 세계에서 어떤 전자 장비가 작동하는지는 일정하지 않았다. “정지 장치가 정확히 무엇을 멈추는지 알아야 해.” 시우가 설비 도면을 펼쳤다. 2호 승강기 옆에는 비상 수동 개방구가 있었다. 직원이 손으로 개방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위험한 상태에서 함부로 문을 열면 추락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보통은 훈련된 담당자가 접근해야 했다. “구조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걸로 실제 구조가 안전했다거나 적절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어요.” 시우가 말했다. “그날 현장 절차를 알아야 하죠.” 서아가 손가락으로 화살표를 그었다. 비상 전원실에서 2호 승강기, 수술실, 그리고 도면에 없는 9번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모든 길은 결국 한 좁은 복도로 모였다. “왜 누군가 계단 하나를 지웠는지 알 것 같아.” 그녀가 말했다. “여기가 단순한 출입 통로가 아니라 장비가 모이는 곳이었다면,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했겠지.” “그럴 수는 있어. 하지만 누가 왜 지웠는지는 확인해야 해.” 우리는 도면의 오른쪽에 두 개의 빈칸을 남겼다. 첫째, 설비를 운영한 사람. 둘째, 그 설비를 후대 시스템에 연결한 사람. 처음 사고를 수습한 사람이 지금의 기억 추심을 설계한 사람과 같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강문석이 내 수첩을 보고 웃었다. “차도겸 씨가 이렇게 공백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NULL 처리를 멋지게 하는 개발자가 진짜 고수입니다.” “그 말은 기술 면접에서 하시면 불합격하실 수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구하는 일보다 면접관을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려울 수도 있었다. 오후 여섯 시 직전. 우리는 건물 밖 안전한 공터에서 독립된 카메라와 시계를 준비했다. 관측 장비는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일부러 능력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매일 오후 여섯 시에 찾아오는 현상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만 기록하기로 했다. 17:59:59. 먼 곳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다음 순간 내가 듣던 소리가 끊어졌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모든 것이 멈추지 않았다. 차단기 옆 깃발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고, 유나는 내 옆에서 정상 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도겸아, 보여?” “네. 이번엔 세상이 완전히 멈춘 게 아니에요.” 시계의 유리에는 두 개의 숫자가 겹쳐 있었다. 18:00:00. 그리고 06:00:00. “여섯 시가 두 개야.” 유나가 숨을 삼켰다.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반투명한 다른 동작이 남았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손을 뻗은 자리에서, 누군가가 다른 방향으로 손을 뻗는 잔상이 일어났다. 현재의 움직임과 과거 기록이 같은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는 듯했다. “저걸 진짜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마.” 서아가 말했다. “잔상일 수도 있어.” 우리는 그 말을 지켰다. 하지만 잔상 중 하나가 멈춰 서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가 학교 가방을 멘 모습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손에는 종이배가 들려 있었다. “아빠.” 아이가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이려다 멈췄다. 그 목소리가 나의 어린 시절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손목시계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동시 관측 구간 진입] [최초 보관 시각 11분 중 1분 재현] 아이는 운동화 끈이 풀린 것도 모르고 걸었다. 흰 양말의 한쪽 끝이 구겨져 있었다. 학교 가방에는 노란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색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어릴 적 사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그렇지만 기억이 비어 있는 자리를 느낌만으로 채우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 아이는 바닥에 놓인 종이배를 주웠다. 배를 접은 종이에는 작은 네모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고장 난 승강기 쪽으로 가져갔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닥에는 물방울 같은 빛이 남았다. 현재의 건물에는 없는 오래된 벽돌 무늬가 그 빛에 잠깐 드러났다. “아이한테 가까이 가지 마.” 유나가 말했다. “알아요. 실제 아이인지 관측 기록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여전히 흐릿했다. 입 모양만 선명했다. ‘한 명 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정말 그 말을 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멀리서 시우가 카메라 시간을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실의 장비는 여전히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아이는 다시 앞을 보았다. 승강기 문앞에서 작업복 남자가 한 손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동작이 아니라 안쪽 사람에게 기다리라고 신호하는 동작 같았다. 내가 어릴 적 그 장면을 실제로 봤다면, 사람 수를 잘못 셌다고 주장한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기억이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 사실에 안심했다. 과거를 본 것 같다는 이유로 새로운 기억이 내 머릿속에 심어지지는 않았다. 오늘의 나는 모르는 것을 그대로 말할 수 있었다. 잔상 속 아이는 내 앞을 지나쳤다. 아이가 향한 곳은 별관 출입문도, 9번 계단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폐쇄된 옛 승강기 자리였다. 그 앞에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의 손목에 새겨진 두 글자를 보았다. 정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아빠, 이제 집에 가자.” 남자의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손이 닿기 직전, 시계에서 경고가 터졌다. [관측자와 과거 기록의 직접 접촉을 차단합니다.] 내가 멈췄을 때 잔상은 사라졌다. 세상은 다시 정상 속도로 움직였다. 독립 카메라에는 내 모습과 유나의 움직임만 남아 있었다. 그림자와 종이배는 촬영되지 않았다. 다만 손목시계의 숫자 변화는 기록됐다. “우리가 본 걸 남들도 똑같이 본 건 아니네요.” 내가 말했다. 서아가 차분히 답했다. “그러니 여기서 본 걸 바로 증거라고 내밀진 말자. 대신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알게 됐어.” 나는 수첩에 ‘18:00과 06:00 동시 관측, 11분 중 1분 재현’이라고 적었다. 한편 건물 안의 중앙 장부에는 전혀 다른 문장이 떠 있었다. [최초 보관 구간에 대한 제삼자 관측 시작] [기존 영구 계약의 효력 검증이 요청되었습니다.] “우리가 뭘 요청한 적 있나요?” 내가 물었다. 시우가 화면을 살폈다. “요청 계정은 우리 쪽이 아니에요. 1998년 원본 기록에 연결된 비상 키에서 들어왔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사진을 다시 바라봤다. 그 키가 정말 아버지의 것이었다면, 누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열한 분을 세상에 보여 주려 하고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8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8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