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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84화
PAYLUA ORIGINAL · 제84화

84화. 열한 분의 구조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53자

오프라인 책장
아버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버튼이 나타났을 때, 나는 손을 내렸다. 막연한 그리움은 명령문을 읽을 때 가장 위험한 감정이었다. ‘수령을 거부하면 원본 보관자를 호출한다.’ 화면은 호출한다는 말만 했지,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부르는 것인지 이름을 가진 기록을 실행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누르지 않았어?” 유나가 물었다. “네. 버튼 설명이 부족해요.” “그런 이유로 안 누르는 개발자는 처음 본다.” “저희 회사에서도 처음엔 놀라셨어요. 확인창이 길다고.” 농담을 했지만 팔의 근육이 굳어 있었다. 아버지는 내 기억에서 여러 번 지워졌다. 정면으로 바라본 얼굴도, 마지막으로 악수한 감각도 없다. 만약 화면의 버튼 하나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정말로 그걸 견뎌 낼 수 있을까. 서아가 물병을 내밀었다. “목이 말라 보이네.” 나는 물을 마시고 의자에 앉았다. 지난번처럼 결정을 몰아붙이는 장치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협박과 그리운 사람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유혹은 결국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내 앞에 단 하나의 버튼만 남기는 것이었다. 그날 밤, 어머니의 공구함에서 나온 인계서 원본을 보존 가능한 상태로 확인했다. 종이 앞면은 우리가 본 그대로였지만 뒷면에는 미세한 격자무늬가 있었다. 기술자가 회로도를 그릴 때 쓰는 옅은 눈금이었다. 가장자리에는 아버지가 연필로 적은 화살표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첫 화살표는 ‘사람’, 두 번째는 ‘전원’, 세 번째는 ‘시계’라고 적혀 있었다. “장비를 고치던 분답네.” 시우가 말했다. “사람부터 생각하고, 그다음 전원, 마지막에 시계라니.” “시계를 고치려고 사람을 끼워 넣은 건 아니라는 뜻이겠죠.” 우리는 원본 위에 아무것도 덧쓰지 않고 사진을 여러 각도로 남겼다. 얇은 종이 아래에서 보이지 않던 연필 자국이 드러났다. 거기에는 아주 작은 숫자가 있었다. ‘2호 승강기 / 11분 / 3명.’ 기혁 형사는 1998년 당시의 구급 출동 기록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 밤 당장 정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대신 시설 관리자가 보존하던 정기 점검철을 열람할 허가를 얻었다. 2호 승강기는 1998년 영병원 별관의 수술실과 신생아 집중실을 연결하던 장비였다. 정전이 난 날, 승강기 안에 세 명이 있었다는 보고가 남아 있었다. “세 명이라면?” 내가 물었다. “환자 두 명, 이동을 돕던 직원 한 명이라고 작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의 인적 사항은 지워져 있어요.” 나는 수첩에 적었다. 확인된 것: 승강기 사고가 있었다. 미확인: 세 사람이 누구였는가. 추정: 시간 정지 현상이 구조에 쓰였을 가능성. 새벽 한 시, 시우가 과거의 설비 기록을 읽다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2호 승강기의 비상 복구가 완료된 시각이 열여덟 시 십일 분인 반면, 구조에 참여했다는 담당자의 활동 기록에는 열여덟 시부터 열여덟 시 십삼 분까지 ‘관측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시간을 직접 기록하는 장치가 고장 났을 수도 있어요.” 시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만 왜 같은 날 다른 시스템에서 모두 비슷한 길이의 누락이 생겼는지는 확인해야죠.” 그때 유나가 문 앞에서 돌아왔다.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관리실로 누군가 전해 달라고 맡긴 것이라 했다. 봉투 겉면에는 ‘아홉 번째 계단을 찾는 사람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기혁 형사가 봉투와 전달 과정을 확인했다. 안에는 필름 사진 한 장과 짧은 편지가 있었다. 사진 속 영병원 별관은 지금과 달리 낮은 벽돌 건물이었다. 2호 승강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의료진처럼 보였고, 한 사람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작업복 남자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얼굴은 흐려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왼쪽 손목의 시계는 내 손목시계와 닮아 있었다. 편지에는 한 줄뿐이었다. ‘사진을 본 사람이 시간을 한 시간이라고 말하면 믿지 말 것. 그날은 열한 분이었다.’ 나는 사진 뒤를 뒤집었다. 희미한 도장이 찍혀 있었다. ‘1998.06.13 18:12 / 사진부 원본 4.’ 서아가 말했다. “그럼 누군가 원래 열한 분이었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 주고 있었네.” “하지만 왜 익명으로만 남겼을까요?” “이 기록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고, 말한 사람을 우리가 믿게 하려는 연출일 수도 있어.” 유나가 내 곁에서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나는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어.” “누구요?” 그녀는 작업복 남자의 손목을 가리켰다. “그 시계. 보관국 안쪽에서 봤어. 서랍 번호가 아니라 사람 이름을 새기는 시계.” “제 시계랑 같은 거잖아요.” “아니. 네 시계는 앞면에 시간이 있고 뒷면에 이름이 없지. 사진 속 시계는 반대야. 시간을 표시할 자리에 이름이 들어가.” 나는 사진을 확대했다. 흐릿한 금속 표면에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또 다른 글씨가 있었다. ‘반납.’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버지는 남에게 시간을 떠넘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맡긴 것을 반납하려 했던 것일까. 그 전에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의 기록이 새로운 단서가 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번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과 실종을 되새기게 만드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계속 물어봐도 돼요?” 수화기 너머로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잠깐 불을 줄인 뒤 대답했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는 말할게. 힘들면 그만하자고 할 거야.”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근데 너는 왜 자꾸 네 아버지가 큰 비밀을 숨긴 사람처럼 이야기하니? 당신 아버지는 숨기려고 했던 것보다 들키면 곤란한 걸 자꾸 써 놔서 걱정이었어.” 나는 웃었다. “공구함 밑에도 써 놨잖아요.” “그러게. 종이에 쓰면 지워질까 봐 철판에도 쓰고, 열쇠에도 쓰고, 심지어 냉장고 뒤에도 썼어.” “냉장고 뒤요?” “옛날 집에서 냉장고 바꿀 때 봤는데, '딸 이름 대신 써 주지 마시오' 같은 이상한 말이 있었어.” 나는 웃음을 멈췄다. 딸 이름.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장난을 친 줄 알고 스티커로 가렸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아들인 나와 동생이 있었지만 1998년 장부에 등장한 ‘여자아이’와 곧바로 연결 지을 수는 없었다. “그 냉장고 아직 있어요?” “없지. 이사하면서 버렸어. 그런데 사진은 찍어 놨을 수도 있어. 그때 새 냉장고 자랑한다고.” 나는 어머니에게 사진이 있으면 나중에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당장 뒤집어 찾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밤새 앨범을 뒤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너도 좀 자라. 아직 아버지가 뭘 하셨는지 전부 알아야 하는 건 아니야.” “네, 엄마.”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책상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0번 직원이라는 이름에만 집중하느라, 그 이름을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장비를 고치는 기술자였고, 이상한 문장을 철판에 적는 사람이었으며, 누군가를 집에 데려가 밥을 먹이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먼저 한 가족의 아버지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 삶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새벽 세 시, 9번 계단실에서 예고 없이 경보가 울렸다. 현재 인원은 0인데, 출입 기록에는 새로운 발자국이 한 쌍 찍히고 있었다. 시우가 관측 영상을 확대했다. 사람이 없던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하나씩 생겨났다. 그것들은 계단을 내려오지 않았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향하지도 않았다. 같은 계단의 중간에서부터 시작해 바깥쪽으로 향했다. “누군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나오는 것 같아.” 유나가 말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현장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멈췄다.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폐쇄 구역으로 달려들 이유는 없었다. 안전 담당자에게 알리고, 영상을 기록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 전까지 발자국은 정확히 네 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 난간에는 그림자가 없었고, 바닥에는 물기만 남았다. 시설 관리인은 카메라의 결로 현상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곧바로 그 가능성을 점검했다. 다른 영상에는 물기가 없었고, 이 장치만 특정 구간에서 같은 모양을 보였다. 시우는 영상을 한 프레임씩 넘겼다. 두 번째 발자국이 생긴 시각과 세 번째 발자국이 생긴 시각 사이에 현실 시간으로 0.8초가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병원 화면의 시계는 그동안 1분을 움직였다. 과거 기록의 흐름과 현재 카메라의 흐름이 다르게 표시됐다. “실제로 1분이 지난 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두 화면에 서로 다른 기준시각이 있는 거예요.” 나는 무심코 메모장에 적었다. ‘시간 차이 = 사람 차이 아님.’ 기록이 어긋날 때마다 누군가를 새 사람으로 세어 버린 장부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네 번째 발자국의 옆에는 짧은 점 같은 자국이 찍혔다.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걸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누군가의 장애나 외형으로 추정하지 않았다. 바닥의 물기가 튄 모양일 수도 있었다. 유나가 물었다. “왜 자꾸 같은 자리를 찍을까?” “걸어 나간 횟수를 세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한정호의 기록이 연결됐다. 출입자가 둘인데 나가는 사람은 셋. 세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인지 우리는 묻고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가 사람인지, 같은 사람의 두 번째 통과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안전 담당자에게 영상 원본을 별도로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누군가 발자국 수를 그대로 인원 수라고 보고할 수 없도록, 관측 한계도 문서에 남겼다. 발자국이 세 개째 생겼을 때, 독립된 마이크에 목소리 하나가 잡혔다. “시간을 돌려줘야 할 사람은 아이가 아닙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목소리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을 듣고 나는 의자 팔걸이를 붙잡았다. “차도겸은 근무자가 아니에요. 수령도 아직 안 했어요. 그 아이가 직접 선택할 날까지 보관하십시오.” 시계가 짧게 울렸다. [1998년 최초 사고 보고서 일부 복원] [보관 기간을 ‘영구’로 수정한 요청자: 확인 대기] 누군가 열한 분의 사고를 스물여덟 해의 계약으로 바꿔 놓았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찾겠다고 수첩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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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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