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가장 먼저 들린 말은 이랬다.
“오빠, 또 회사야?”
“회사보다 더 귀찮은 일이야.”
“그럼 일단 밥 먹어. 밥 안 먹으면 전화를 안 받아 줄 거야.”
나는 웃어 버렸다. 우리 집에서는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누군가 식사 여부부터 확인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랬고, 아버지가 그랬고, 이제는 동생까지 그랬다.
“조심해서 들어. 너한테 네가 신청하지 않은 확인 문자가 올 수 있어. 근무나 시간을 인계받겠느냐는 내용이면 누르지 말고 캡처만 해 줘. 출처도 확인하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안 누르면 되는 거지?”
“그래. 누가 오빠 부탁이라고 해도 먼저 내 목소리로 확인해. 내가 직접 전화해도 모르는 건 거절해도 돼.”
동생은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가 물었다.
“오빠. 또 뭔가 잊었어?”
나는 수첩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정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응. 근데 이번엔 잊지 않도록 사람들한테 말해 두고 있어.”
“그럼 됐어. 내가 기억해 줄 수도 있으니까.”
전화를 끊자 손목시계가 진동했다. [수령 예정자의 직계 가족에게 안내 발송 준비]라는 문장이 떠 있었다. 나는 가족의 이름을 누가 입력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아는 즉시 관련 정보를 보존하고, 관계 기관에 가족 대상 무단 통지 가능성을 추가로 알렸다.
“기한 전에 막을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우리가 관리하는 장비에서는 수신을 차단할 수 있어. 중앙망의 발송까지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면 안 돼.” 시우가 답했다. “실제 전송 여부도 아직 미확인이야.”
강문석은 오류가 생긴 경로를 좁혔다. ‘수령 예정자’가 응답하지 않으면 등록된 보호자 정보를 참조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1998년 보호자 정보가 2026년 가족 관계로 자동 갱신되며 현재의 동생이 후순위로 올라갔다. 과거에 어린아이로 잘못 분류된 내게서 다시 더 어린 가족에게 책임이 내려가는 구조였다.
“상속도 아니고 무슨 야근 세습이야.” 내가 말했다.
“세습이라고 하니까 더 기분 나쁘네.” 유나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이건 일의 승계도 아니야. 아무도 그 일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잖아.”
우리는 작업을 두 갈래로 나눴다. 시우와 문석은 장부의 복제본에서 ‘재배정’이 어떤 조건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나는 서아와 함께 당시 사고 기록을 찾았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맡기려 했는지 알아야 잘못된 항목을 근본적으로 분리할 수 있었다.
병원 시설 기록에는 그날 오후 다섯 시 오십칠 분부터 정전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실제 전력 장애 보고서를 구할 수 있는 구간은 제한적이었다. 기록의 일부는 오래되어 폐기됐고, 일부는 병원 이전 과정에서 누락됐다. 그러나 복도 비상등 점검표에는 세 차례 정지 표시가 남아 있었다.
17:57 — 예비 전원 작동.
18:00 — 엘리베이터 2호기 정지.
18:11 — 수동 구조 완료 보고.
“시간을 멈춰서 사람을 살렸다는 건 아직 추측이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열한 분은 여러 장부에서 반복돼.” 서아가 답했다. “확인할 가치는 있어.”
한시우는 우리가 모아 온 자료를 펼쳐 놓았다. 그가 찾은 프로그램에서 ‘시간을 빌리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기억을 담보로 제시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나타난 기억 징수는 이 기능의 결과인 듯했다. 하지만 옛 장부에는 담보나 징수라는 단어가 없었다. ‘대기’, ‘보관’, ‘귀환’만 적혀 있었다.
“후대 운영자들이 저장된 시간을 돈처럼 취급한 거라면 원래의 목적과 다를 수도 있어요.”
“목적이 좋았다고 해서 나중의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남 형사가 답했다.
그는 수사 보고서에 ‘원기록의 목적은 미확인’이라고 썼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안심했다. 우리가 사건의 모든 원인을 이제 알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동생의 연락이 오기 전에도 작은 사건이 있었다. 협조 중인 한 사업장 직원이 자기 근무표에서 '미확인 시간'이 사라졌다고 항의한 것이다. 담당자는 오류가 고쳐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직원은 반대였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야간 근무가 통째로 없어졌다는 것이다.
“화면에서는 깔끔해 보입니다.” 현장 담당자가 말했다.
나는 파일을 열어 보았다. 오류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미확인 항목을 목록에서 보이지 않도록 숨겨 놓은 것이었다. 실제 데이터는 남아 있었고, 급여 계산에서는 빠졌다.
“숨기는 건 정정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누구의 시간인지 모르더라도 그 시간이 있다는 사실까지 지우면 안 돼요.”
직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아이가 방과후 교실에서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교대를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근무표가 중복 처리됐다. 회사는 두 장 중 한 장을 없애면 된다고 했고, 그는 어느 쪽이 자신의 실제 근무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현장 수기 기록과 출입 기록을 대조하는 절차를 안내했다. 어떤 항목을 남기고 어떤 항목을 정정할지는 담당자와 당사자가 함께 확인하도록 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 게 아니라,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게 해 달라고 한 셈이었다.
유나가 통화를 마치고 말했다. “시간이 멈춘 사람보다 시간이 지워진 사람이 더 많겠네.”
“정확한 숫자는 몰라요. 하지만 저분은 분명 자기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모두 복구할 수 없더라도, 누군가 자신이 살아 낸 하루를 설명할 기회는 빼앗지 말아야 했다. 내 이름이 잘못 붙은 기록을 지우는 것과, 실제 근무자의 흔적을 삭제하는 일은 같은 기술로도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서아가 커피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럼 우리가 0번 직원 문제를 고칠 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겠네?”
“맞아. 제 이름을 근무표에서 분리하되,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보존해야 해.”
“그리고 그 일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에 다른 이름을 넣지는 않고.”
나는 수첩에 썼다. ‘사람을 떼어 내되 시간을 지우지 않는다.’ 그때까지 우리가 수없이 했던 토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말이었다.
오후 두 시, 동생이 사진을 보내 왔다. 알 수 없는 앱 알림이 아니라 우편함에 들어온 봉투였다.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고, 손으로 쓴 이름은 정확히 동생의 이름이었다. 봉투 앞에는 작은 검은 시계가 그려져 있었다.
‘차도겸 씨가 남긴 보관 시각을 인수할 분께.’
나는 곧바로 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봉투 열지 마. 혼자 가지 말고, 주소는 온라인에 올리지도 마.’ 기혁 형사는 봉투를 직접 보존하기 위한 절차를 안내했다. 누군가 디지털 안내가 통하지 않으면 종이로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동생은 봉투를 들고 오래 망설인 모양이었다. 사진 끝에 그녀의 손끝이 작게 나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손톱을 짧게 깎던 버릇이 그대로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동생에게 누군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보다, 그 편지 때문에 동생이 평범한 오후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더 싫었다.
“미안하다.” 내가 문자로 보냈다.
답장은 거의 바로 왔다.
‘오빠가 보낸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해. 대신 오늘 저녁에 엄마랑 통화 좀 해. 엄마 계속 오빠 밥 먹었냐고 물어.’
나는 웃고 말았다. 시스템이 보여 주는 가족 관계는 위험한 후순위 명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 가족 관계는 이렇게 퉁명스러운 부탁과 잔소리로 이어져 있었다. 누가 누굴 대신 일하게 하는 계약이 아니었다.
서아가 내 문자 화면을 보고 말했다. “그 아이를 데이터베이스에서 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겠네.”
“네. 이미 무서운 편지를 받았으니까요. 불안한 상태에서 혼자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줘야죠.”
나는 동생에게 다시 전화했다. 그녀가 지금 어디 있는지 세세하게 묻기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오늘 받은 봉투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숨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알 수 없는 사람이 직접 접근하면 안전한 곳에서 도움을 요청하도록 했다.
통화를 마치자 시우는 현재 시스템에 등록된 가족 연동 정보가 어떤 자료에서 왔는지 찾고 있었다. 그는 내게 화면을 보여 주며 물었다. “이 항목, 당신 가족에게 연결돼 있다는 걸 보여 드려도 될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제 정보는 볼게요. 동생 정보는 불필요하게 펼치지 맙시다.”
동생이 보내 준 두 번째 사진에는 봉투가 뒤집혀 있었다. 뒷면에는 아무 인장도 없었다. 대신 연필로 눌러 쓴 듯한 아주 작은 글씨가 있었다.
‘이 편지를 열기 전에 물어볼 것. 왜 차정수의 시간이 아직도 다른 사람에게 배당되는가.’
서아가 사진을 확대했다. “이 문장은 협박이라기보다 경고 같아.”
“같다는 거지, 그렇다고 믿을 수는 없지.”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봉투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 오후 네 시를 맞았다. 그때 시우가 시험용 복제본에서 새로운 기능 하나를 발견했다.
[최초 인계서: 긴급 보관 요청]
[수령 예정자의 동의: 없음]
[수령이 불가능할 경우: 원인 보존]
“원래는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넘기지 않도록 설계됐네요.” 시우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동의가 없으면 가족에게 넘기도록 바뀌었죠.”
“맞아요. 변경된 기록은 2019년에 처음 확인돼요. 구태형 운영 회사가 비상 계정을 만들던 해예요.”
나는 팔짱을 끼고 한참 생각했다. 누군가 수령자라고 적어 놓은 이유가 사람이 실제로 수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면 어떨까. 그 빈 선택의 자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강제 책임으로 바뀐 것이다.
시계가 다시 움직였다.
[수령자 확인 대기]
[남은 시간: 02:00:00]
우리는 곧장 안전한 대응 계획을 정했다. 실제 문서를 열람할 권한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9번 계단에 접근하지 않기로 했다. 동생의 주소를 팀 내부에도 최소한으로 공유했다. 시범 장치에서는 가족 관계를 이용한 재배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의 시험을 진행했다.
해 질 무렵 유나가 말했다.
“도겸아, 이런 생각 들지 않아? 너한테 맡긴 게 원래는 책임이 아니라 선택권이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선택권이라면 지금도 내가 거절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네 대답을 그렇게 원하나 봐.”
그날 여섯 시가 되자 회사 앞 차들이 잠깐씩 멎었다. 정지라고 부르기에는 짧았고 교통 신호 이상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할 만큼 동시에 일어났다. 우리 팀의 독립 카메라는 1.8초의 간격을 놓치지 않았다.
내 손목시계에는 한 문장만 남았다.
[0번 직원이 수령을 거부하면 원본 보관자가 호출됩니다.]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와, 누군가 아버지의 이름을 또 이용한다는 의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수령 거부’ 버튼 앞에서 손을 내렸다. 누구를 불러오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누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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