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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81화
PAYLUA ORIGINAL · 제81화

81화. 거꾸로 움직이는 시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411자

오프라인 책장
손목시계의 초침이 거꾸로 움직였다. 현실에서는 오전 여덟 시 삼십일 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의 차단기는 내려갔고, 노란 안전 조끼를 입은 관리인이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렀다. 그런데 내 손목에서만 시간이 한 칸 뒤로 물러났다. 08:30:59. “유나 씨.” “봤어.” 유나는 내 팔을 잡으려다 멈췄다. 손이 닿으면 그녀에게까지 이상 현상이 전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그런 위험을 너무 자주 겪었다. “밖은 그대로야.” 그녀가 말했다. “시계가 과거를 보여 주는 걸 수도 있어. 진짜로 되감긴다고 가정하진 말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침은 다시 한 칸 움직였다. 08:30:58. 시계의 유리 아래 검은 글씨가 솟아올랐다. [0번 근무 인계 절차 재개] [보관 중인 시각: 1998.06.13 18:00] [현재 담당자 확인 대기] “담당자라니. 저는 그날 여덟 살짜리 애였다고요.” 옆에서 화면을 읽던 한시우가 조용히 말했다. “시스템이 말하는 담당자와 실제 책임자는 다를 수 있어요. 우리가 계속 구분해 온 거잖아요.” 그의 손에는 어제 복원한 9번 계단 도면이 들려 있었다. 도면에는 원래부터 계단이 아홉 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여덟 번째와 열 번째 사이의 빈 면을 누군가 지워 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9번 계단은 없는 장소가 아니라, 도면에서 세지 않기로 한 장소였다. 나는 문득 0번 직원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없던 사람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사람을 세지 않으려고 만든 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제 이름이 거기에 들어갔죠?”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서아가 나를 보았다. 어릴 적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 내가 잊은 약속과 말을 오랫동안 따로 보관해 온 사람. 그러나 서아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그 질문을 그대로 기록해 두자. 답을 정해서 기록을 찾으면, 답처럼 보이는 것만 보이니까.”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잠시 복도 창가에 멈춰 섰다. 아래쪽에서는 청소 직원이 긴 밀대를 끌고 있었다. 바닥에 고인 물이 형광등을 반사하며 흔들렸다. 오래전 병원에서도 누군가 이렇게 일했을 것이다. 정전이 났을 때도, 구급차가 들어왔을 때도, 사람들이 다 나간 뒤에도 누군가는 바닥을 닦았을 것이다. “무슨 생각해?” 서아가 물었다. “아버지가 일하던 곳에 제가 아예 기억 없이 왔다는 게 이상해서.” “기억이 없다는 걸 꼭 결함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돼. 우리한테 없는 정보가 있다는 뜻이지, 네가 그때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는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어릴 적 얼굴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 얼굴이 어디까지 아버지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사라지는 능력을 얻기 전에는 이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서아야. 너는 그때의 나를 기억해?”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조각조각. 어떤 건 내가 직접 본 장면이고 어떤 건 나중에 들은 이야기야. 둘을 구분할 수 있을 때만 말할게.” “그때 내가 울었어?” “한 번은 울었어. 근데 네가 왜 울었는지는 나도 몰라. 울었단 이유로 네가 무서웠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 그녀의 대답이 뜻밖에 고마웠다. 사람들은 내 기억을 대신 설명하려고 너무 쉽게 이야기를 완성했다. 아버지를 잃어 슬펐을 것이다. 시스템에 갇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 추측이 전부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날의 나도 여전히 나였고, 아무도 묻지 않은 감정으로 내 과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내려갔다. 동선을 확인하기 쉬운 길이었다. 내려가며 나는 각 층의 출입 시각을 휴대전화에 적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서 기억을 잃더라도 최소한 어디까지 왔는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서아가 내 노트를 보고 말했다. “예전에도 너 이런 식으로 썼어.” “무슨 식으로?” “누가 잊어버릴까 봐가 아니라, 누군가 나중에 돌아왔을 때 길을 찾게 하려고. 복도 모퉁이에 화살표를 그렸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9번 계단 도면에 지워져 있던 화살표가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길을 보여 주는 표시와, 누군가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표시. 같은 그림이어도 목적은 다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길을 찾는 데 내 이름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반드시 묻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허가된 사무실로 이동했다. 형사 남기혁은 디지털 기록의 보존 절차를 확인했고, 강문석은 시계에 나타난 문장을 카메라 두 대로 동시에 촬영했다. 시계 자체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글씨를 바꾸는 동안에도 카메라에는 변화가 보였다. 적어도 나만 보고 있는 환각은 아니었다. 촬영이 끝나자 강문석이 영상을 두 장치에 복사했다. “한쪽에서 지워져도 다른 쪽에 남게요. 지금부터 우리가 확인하는 건 원본인지, 복제본인지부터 표시하겠습니다.” “개발자가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 백업이라니.” 내가 중얼거렸다. “백업 없는 세상 구하기는 장애 보고서가 길어집니다.” 그가 대꾸했다. 우리는 잠깐 웃었다. 이런 순간에 농담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시계가 08:30:00을 가리키자 멈췄다. 뚜껑 안쪽에 작은 네모가 나타났다. 검은 칸 하나와 하얀 칸 하나. 두 칸 아래에는 손글씨 같은 문장이 있었다. ‘인계받지 못한 사람은 인계할 수도 없다.’ 서아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 문장, 아버님 메모와 비슷해. 0번 직원의 퇴근 방법이라는 제목 바로 밑에 있었을 것 같아.” “어떻게 알아?” “네 아버지가 서류 끝에 항상 적던 문장이거든. 책임을 넘기는 서류에는 받은 사람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아버지가 회사원처럼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미 오래전에 기억에서 지워진 얼굴이었다. 그러나 말을 들으니 사람의 태도만큼은 조금 보일 것 같았다. 그때 어머니 윤혜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곧바로 받았다. “엄마. 지금은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 그런데 너한테 보여 줄 게 있어.” “무슨 일이에요?” “네 아버지 공구함을 열었어. 밑바닥에 종이가 들어 있었는데, 접힌 자국이 이상해서.”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크게 켰다. 어머니가 보내 준 사진에는 녹슨 드라이버, 낡은 절연 테이프, 그리고 두꺼운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종이는 영병원 직원들이 쓰던 근무 인수인계 양식이었다. 상단에는 ‘임시 보관 대상’이라는 제목이 찍혀 있었다. 인수자: 공란. 인계자: 차정수. 보관 물품: 시간. 나는 숨을 삼켰다. “시간을 물품이라고 적었어요?” “나도 그래서 전화한 거야. 네 아버지가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잖니.” 종이 맨 아래에는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둥근 시계가 있었다. 시곗바늘은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옆에는 서툰 글씨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빠 거.’ 유나가 사진을 확대하다 말고 눈을 감았다. “도겸아. 이거 네 글씨야?”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내 입이 무거웠다. 누구의 손이었는지 모른다는 것과 그 종이에 적힌 글을 내가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은 서로 충돌했다.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넌 그날 아버지한테 자꾸 시간을 돌려주라고 했어.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몰랐어. 네 아버지는 시간을 되돌려 줄 수 없다고, 대신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반드시 밝혀 놓겠다고 대답했지.”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아버지는 시간을 돌려주지 못한다고 했다.’ “왜 이제 찾으셨어요?” “공구함에 이중 바닥이 있는 줄 몰랐지. 오늘 우연히 손잡이가 빠졌거든.” 우연이라는 말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음모라고 판단하지도 않으려고 했다. 사진의 촬영 시각, 종이 상태, 공구함의 위치까지 차근차근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통화를 끊고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까까지 멈췄던 초침이 한 번 더 뒤로 움직였다. [0번 담당자의 근무 지위: 미확정] [인계자 차정수의 최종 확인 기록: 보관 중] [확인 가능한 장소: 영병원 9번 계단실] “그러니까 우릴 다시 그 계단으로 부르는 거네.” 유나가 말했다. “그 계단에 무언가 있다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부른다고 곧바로 들어가진 않겠습니다.” 나는 책상 위에 종이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어머니가 발견한 1998년 종이의 복사본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시계가 보낸 메시지였다. 두 장의 문서는 같은 사건을 말하는 듯했지만, 어느 쪽에도 어린 내가 자발적으로 인계받았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번에는 직원부터 찾지 말고 인계가 실제로 이뤄졌는지부터 찾죠.” 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이를 직원으로 만들지 말고.” 그때 시우의 노트북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9번 계단 관측 장치가 갑자기 두 개의 식별 번호를 반환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알던 ‘0’. 두 번째는 어떤 글자도 없는 빈 항목이었다. 시우가 화면을 가리켰다. “이상합니다. 빈칸이 먼저 만들어졌고, 0번은 3분 뒤에 생성됐어요.” 나는 사진 속 크레파스 글씨를 다시 보았다. ‘아빠 거.’ 그렇다면 최초에 맡겨졌던 것은 어린 나의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돌려주지 못한 시간일 수도 있었다. 그때 강문석이 촬영 화면을 다시 재생했다. 원본 영상에서는 내 손목의 초침이 두 칸 움직였는데, 외부 카메라의 시각 표시는 한 번도 뒤로 가지 않았다. 같은 순간을 서로 다른 장치로 관찰한 결과가 달랐다. “거꾸로 움직인 건 내 시간이 아니라 이 시계의 기록이군요.” “적어도 영상에는 그렇게 나옵니다.” 문석이 답했다. “시각 자체가 바뀌었다는 증거는 없어요.” 나는 시계를 팔에서 풀어 책상 위에 놓았다. 금속 띠 안쪽에는 미세한 흠집이 여럿 있었다. 오래 착용한 흔적이었다. 언제부터 이걸 차고 있었는지조차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여섯 시가 멈췄던 날부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전 사진에도 이 시계가 있었다면 어떨까. “내가 처음 얻었다고 믿은 능력이, 사실은 오래전에 시작된 일의 끝부분일 수도 있어요.” 서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네가 살아 온 나머지 시간이 가짜인 건 아니야.”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이상하게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다. 장부는 내가 누구인지 계속 정의하려 했다. 원본, 복제, 일곱 번째, 0번 직원. 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고 부르든 지금 이곳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알아.” 나는 말했다. “그러니 제 손목에서부터 조사할게요. 누가 제게 뭘 맡겼다는 말 말고, 제가 실제로 어떤 걸 받았는지.” 유나가 작은 접시에 시계를 올려 놓았다. 접시는 점심에 먹은 과자의 것이었다.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모습치고는 너무 평범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놓였다. 우리가 지키려는 세상은 이런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 세상이었다. 시계 뚜껑 안쪽에서 마지막 문장이 천천히 번졌다. [0번 직원은 최초 근무자가 아닙니다.] [0번 직원은 최초의 수령 예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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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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