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다.
초능력자에게도 주 5일 근무를 보장해야 한다는 노동법이 있다면 나는 그 법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전 8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에는 오유나가 서 있었다. 손에는 편의점 김밥 두 줄과 검은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밥부터 먹어.”
“이 시간에요?”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제 식사 기록까지 감시합니까?”
“네가 굶으면 6시에 먼저 쓰러져. 한 번 겪었거든.”
내 집에 누군가 들어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실도 자신할 수 없었다. 거실의 화분은 누군가 물을 준 듯 흙이 젖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내가 사지 않은 작은 유리병이 세 개 있었다.
유나는 유리병 하나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기억 안 나겠지만 네가 만든 거야.”
병 안에는 하얀 종이 조각들이 있었다. 각 조각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7개월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나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이건 기록용 표식이야. 매번 다시 돌아왔을 때 네가 실재하는지 확인하려고 만들었어. 종이의 내용을 읽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그 사람이 네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거든.”
나는 첫 종이를 꺼냈다.
'차도겸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줄 모른다.'
나는 자동으로 젓가락을 왼손에 쥐었다가 떨어뜨렸다.
두 번째 종이.
'누군가 도와달라고 말하면 싫다고 해 놓고 결국 도와준다.'
“이건 누구나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네가 꼭 그 항목을 싫어했어.”
세 번째 종이.
'나는 진서아를 사랑했는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손을 멈췄다. 유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분과 저는 연인이었습니까?”
“네가 묻는다면, 너희도 그걸 몰랐어. 친구로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연구소에서는 서로의 고집을 견뎌야 했으니까.”
“유나 씨는요?”
“나는 둘 다에게 화가 많은 친구였지.”
평범한 농담이 어색하게 멈췄다. 내가 잊은 과거 속에서 이 사람들이 어떻게 웃었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남긴 종이 조각들은 사실을 알려 주지만 감정을 전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람은 앨범을 보고도 그날로 돌아갈 수 없는 모양이다.
유나는 내게 종이를 도로 넣으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꺼냈다.
'나는 원본과 복제품 중 무엇이 인간인지 고민하기 전에, 지금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뒷면에는 내 서명이 있었다.
유나는 거실 테이블에 서류를 펼쳤다. 서류 상단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제6시 보관국 — 기억 사용 및 대리 징수 계약.
계약 당사자: 차도겸.
대리인: 오유나.
보관 책임자: 진서아.
날짜는 7개월 전이었다.
“서명은 내가 했어요?”
“그렇지.”
“동의한 기억은 없는데.”
“네가 그걸 잃었으니까.”
나는 계약서를 읽었다. 문서에는 이상한 조항이 많았다. 정지 시간 사용자는 사용량에 따라 기억을 제공한다. 기억의 소유권은 보관국에 귀속된다. 긴급 재진입 시 대리인이 수거 항목을 지정할 수 있다.
가장 이상한 건 마지막이었다.
‘원계약자의 현실 귀환이 실패할 경우, 대리인은 원계약자의 잔여 생을 보전할 의무가 있다.’
나는 유나를 쳐다봤다.
“잔여 생이요?”
“시간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면 몸이 현실에 돌아오지 못해. 대신 현실에는 네 모습과 기억을 가진 대체 기록이 남아.”
“복제 인간?”
“복제라는 말은 너무 편해. 기록으로 만들어진 껍질이야. 사람처럼 먹고 자고 일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정지하겠지.”
목이 말랐다.
“그럼 지금 저는 진짜입니까?”
유나는 대답을 미뤘다.
그 침묵으로 나는 충분히 겁을 먹었다.
“당신이 왜 매번 나를 찾는지 묻고 싶었어요.”
“동생을 찾기 위해서였어.”
“그렇겠죠.”
“그리고 처음엔 당신이 필요했어. 당신만이 0번 보관실 문을 열 수 있었으니까.”
나는 계약서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인쇄된 첨부 목록을 발견했다. 종이 다섯 장, 증명 사진 한 장, 증인의 서명 두 개. 서아와 재민의 이름이 증인란에 있었다.
“그런데 왜 서아는 보관 책임자로 돼 있죠?”
“책임자를 빼앗긴 거야. 처음엔 사람을 지키는 권한이었는데, 시스템이 그걸 소유권으로 바꿨어.”
“프로그램이 계약의 뜻을 바꾼다고요?”
“사람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그렇게 만든 거지.”
나는 기억했다. 좋은 기능을 만드는 데에는 몇 달이 걸려도, 누군가 그것을 악용하도록 바꾸는 데에는 코드 한 줄이면 될 때가 많았다.
유나는 고개를 숙였다.
“일곱 달 전 우리는 진서아의 부탁으로 보관국 서버를 멈추려 했어. 기억을 빼앗기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그런데 서아가 안쪽에 갇혔고, 재민이는 그녀를 구하러 들어갔어. 네가 마지막으로 뒤따라 들어갔다가 돌아왔지. 기억을 잃은 채.”
“그 후 여섯 번 다시 들어갔군요.”
“응. 그리고 여섯 번 모두 실패했어.”
“왜요?”
“네가 진실을 알아낼 때마다 나를 찾아왔거든. 내가 널 멈추게 해 달라는 계약을 했으니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절 멈춰 달라고요?”
“네가 끝까지 들어가면 도시 전체가 시간을 잃는다고 했어. 내가 선택해야 했지. 네가 조금씩 기억을 잃더라도 살아 있게 만들 것인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것인지.”
“그래서 뭘 선택했는데요?”
유나가 눈을 들어 나를 봤다.
“너를 선택했어. 여섯 번 다.”
화가 났다. 쉽게 분노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보통은 코드가 망가지면 로그를 읽고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유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제 인생을 그렇게 결정할 권리가 당신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어.”
“그런데 왜……”
“미안해.”
그녀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게 더 화가 났다. 나는 계약서에 다시 손을 뻗었다. 내 서명은 분명 내 필체였다. 그런데 서명 마지막 획이 낯설었다. 마치 지우려던 글자를 누군가 급하게 완성해 놓은 듯했다. 나는 그 부분을 가리켰다. 유나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이 서명 끝에 누가 손을 댔지?”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약서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종이 아래에 감춰진 아주 가는 붉은 선이 나타났다. 그 선은 이름란이 아니라 '대리 징수'라는 문구로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계약 자체를 바꿨어.”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같은 문장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숨긴 진실과 그녀도 몰랐던 진실은 다른 것일지 몰랐다.
나는 계약서를 찢으려다 멈췄다. 종이 한 장을 찢으면 끝나는 일이라면 이토록 많은 사람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후 2시, 남기혁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실종자 김태오의 아파트에 누군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현장에 남은 건 김태오가 가족에게 썼다는 짧은 편지뿐이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다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유나가 말한 껍질이 떠올랐다.
오후가 되자 유나와 나는 서로 조금 떨어져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서로 말을 걸기 어려운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계약서가 만든 거리였다. 그녀가 여섯 번이나 나를 살렸다는 말은 고마웠지만, 내 동의 없이 여섯 번 나를 지운 것은 고맙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널 또 속일 생각은 없어.”
유나가 먼저 말했다.
“그 말이 속임수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네요.”
“그러니까 기록해. 내가 말하는 건 네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그녀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보관국의 내부 표식을 설명했다. 검은 실은 징수 경로, 흰 종이는 보관된 기억, 붉은 선은 허가받지 않은 사용자에게 부여된 임시 이동권. 원형 분필 표시는 기억 징수 장치가 지나는 길을 잠깐 차단하는 경계였다.
“왜 그런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죠?”
“사람의 마음에서 기억을 떼어내면 그 자리가 비어. 보관국은 그 빈자리에 무엇을 넣을지 결정할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기억이 사라진 빈자리를 외부 기록으로 채워야 했어.”
“기록을 잃어버리면요?”
“그땐 네가 누군지 남이 결정해.”
말이 끝나자 유나는 내 수첩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적었다. 단단하고 작은 글씨였다.
'오유나. 동생 오재민을 찾고 있다. 차도겸을 여섯 번 되돌렸다. 잘못도 그만큼 했다.'
그 아래 그녀는 전화번호를 적었다.
“이건 네가 잊어도 계속 남게.”
나는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다음번에는 내 동의도 구하세요.”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김태오의 아파트로 갔다. 현관문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거실 바닥에는 분필로 원이 그려져 있었다. 전날의 유나가 육교에서 그린 것과 같았다.
“누가 남긴 걸까요?”
유나는 원 안쪽을 살폈다.
“보호 표시. 안쪽에서 못 나오도록 그린 건 아니야.”
원 가운데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차도겸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에서 기다리겠다. — 진서아.'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 작은 선이 일곱 개 그려져 있었다.
“또 일곱.”
“무슨 의미인지 알아?”
“이제야 조금.”
내 수첩에는 매일 한 줄씩 늘어나는 경고가 있었다. 누군가 미리 준비해 둔 문장들. 어쩌면 그것들을 전부 모으면 길이 보일지 모른다.
오후 5시 55분, 우리는 아파트를 나왔다. 유나는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오늘은 혼자 들어가.”
“왜요?”
“내가 같이 있으면 넌 또 나를 지키려고 할 거야. 그래서 늘 시간이 부족했어.”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내가 알던 차도겸은 그랬어.”
유나는 김밥 포장지에 무언가 적어 내게 건넸다.
'대가를 피할 수는 없어도, 대가를 고를 수는 있다.'
6시.
세상이 멈췄다.
나는 사람 없는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손목시계는 60분을 표시했다. 오늘은 유나가 없었다.
골목 끝에 어제의 나무문이 있었다. 그 앞에 진서아라고 적힌 명함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새겨 놓은 글씨는 명함 뒤쪽에 있었다.
'가장 소중한 기억을 잃기 전에 나를 찾아와.'
갑자기 손목의 숫자가 붉게 바뀌었다.
[오늘의 징수 후보: 오유나와 처음 만난 날.]
나는 웃음이 났다. 없었던 기억을 어떻게 잃으라는 걸까.
그때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번쩍했다. 대학 도서관, 창가 자리, 창문에 빗물이 흐르던 날. 내 옆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간을 고치는 프로그램이라니. 그렇게 무서운 걸 만들 거야?”
나는 그 질문을 받던 여자의 얼굴을 보려 했다.
그러나 장면은 사라졌다.
시계에는 문장이 하나 더 나타났다.
[후보 확정. 기억 징수 완료 예정.]
그제야 알았다.
내가 유나를 잊은 것은 여섯 번의 실패 때문만이 아니었다. 보관국이 매번 같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골라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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