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회사 인사팀에서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어제 지하 서버실에 무단으로 출입한 기록이 잡혔다는 이유였다. 인사담당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차도겸 씨. 요즘 많이 힘들어요?”
“네.”
“왜요?”
“제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이 복잡해졌습니다.”
인사담당자는 내 말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건강검진 안내문을 내밀었다. 몸이 아니라 시간이 고장 났다는 말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나는 안내문을 받았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남기혁 형사가 연락해 왔다.
‘퇴근 후에 봅시다. 시간하고 관련된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퇴근 후’라는 단어를 보며 잠깐 웃었다. 지금 내게 퇴근이란 평범한 직장인에게 허락된 휴식이 아니라, 범죄 현장으로 향하는 신호였다.
국밥집으로 가기 전에 나는 강남역에서 하차 기록을 조회했다. 내 교통카드의 과거 내역에는 흥미로운 패턴이 있었다. 매달 한두 번씩 같은 지하철역을 왕복했고, 그날이면 밤늦게까지 카드 사용이 끊겼다. 첫 기록은 일곱 달 전. 마지막 기록은 사흘 전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역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와 집, 어머니가 사는 동네. 그 어느 동선에도 그 역은 없었다.
교통카드 사용 내역을 엑셀로 정리했다. 표의 이동 시간을 연결해 보니 한 달 간격으로 같은 구역의 다른 출구에 나타났다. 장소를 확인한 순간 놀랐다. 출구마다 과거 실종 사건이 발생한 곳이었다. 우연으로 보기 어려웠다.
내가 여섯 번 보관국에 재진입했다는 유나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섯 번이면 충분히 학습했어야 했다. 같은 실패를 여섯 번 반복하는 사람을 우리는 대개 개발자라고 부른다. 디버깅을 한다고 말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반복은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설계일 수도 있었다. 나는 노트북에서 날짜를 일직선으로 늘어놓았다. 각 실종 현장은 전체적으로 원형이었다. 중심에는 내가 다니던 회사가 있었다.
노란색 표식 열두 개가 지도에 찍혔다.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회사 주변에서 발견됐고, 시간이 돌아온 후 흔적이 끊겼다. 실종 현장들이 거대한 시계의 숫자처럼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한 선의 중심에는 회사 지하 서버실이 있었다. 보관국으로 향하는 문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동그라미 안에 질문 하나를 썼다.
‘혹시 여섯 시는 장소에도 존재하는 걸까?’
남 형사는 경찰서 근처 허름한 국밥집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어제 내 손목에 붙었던 시계 말입니다. 그것을 보내온 우편물이에요.”
봉투에는 발신 주소가 없었다. 대신 붉은 잉크로 숫자 여섯 개가 찍혀 있었다.
17:59:59.
“이상한 건 또 있어요.”
남 형사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CCTV 영상을 보여 줬다. 어제 서버실 복도에는 두 사람이 들어갔는데, 경찰의 얼굴 인식 프로그램은 한 사람을 세 사람으로 분류했다.
남 형사는 화면을 확대했다. 일그러진 그림자는 하나였지만 프레임마다 길이가 달랐다.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프레임에서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다음 프레임에서는 유나의 얼굴 옆에 붙어 있었다.
“영상 분석 전문가는 압축 오류라고 하더군요.”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나는 어렵게 대답했다.
“아니요. 압축 오류라면 원래 있던 화소를 엉뚱하게 재구성해야 해요. 그런데 저 그림자는 화면에 없는 물체를 가리고 있습니다. 조명이 바뀐 흔적까지 있어요.”
남 형사는 아무 말 없이 재생을 멈췄다. 그는 처음으로 내가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 화면을 오래 봤다.
왼쪽은 나, 오른쪽은 유나. 그리고 우리 사이에 작고 흐릿한 그림자가 있었다.
“저거 뭡니까?”
“그래서 묻는 겁니다.”
그 그림자는 내 움직임과 정확히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왼손을 들면 오른손을 들고, 내가 문을 열면 닫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분명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 얼굴 윤곽을 흉내 내고 있었다.
“경찰에는 뭐라고 보고하셨습니까?”
“보고하지 않았어요.”
“왜요?”
남 형사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내 아내가 3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도 오후 6시였어요. 사고도, 범죄 흔적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고, 6시가 되자 그 사람의 목소리가 끊겼죠. 통화 내역에는 한 초가 더 찍혀 있었어요. 일곱 달 전 진서아라는 사람이 내게 찾아왔습니다.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죠.”
“그러니까 형사님도……”
“이 사건을 놓을 수가 없어요.”
남 형사의 손등이 떨렸다.
“한 가지만 약속해요. 당신이 무슨 일에 얽혀 있든 내 아내의 이름을 발견하면 알려 줘요.”
“이름이 뭡니까?”
“남하린.”
나는 수첩에 썼다. 잊지 않도록, 아주 세게.
5시 40분, 유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은 6시가 아니라 5시 59분 59초를 조심해.’
나는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오후 5시 59분 58초였다.
거리의 사람들 위로 이상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맑은 날인데 건물 옆면에 새카만 물결이 흘렀다. 나는 손목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59초.
시계가 나타났다.
하지만 숫자가 59:59가 아니라 ‘ERROR’였다.
내 앞에 걸어가던 직장인이 갑자기 뒤로 한 걸음 움직였다. 여자가 흘린 종이봉투가 바닥에서 손으로 돌아갔다.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는 대신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되감겼다.
“시간이 거꾸로……?”
완전히 거꾸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딱 1초 동안의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버스 바퀴가 같은 위치를 지나고,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네 번 이어졌다.
반복되는 1초에는 이상한 냄새까지 있었다. 젖은 콘크리트와 낡은 종이 냄새가 동시에 났다. 내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같은 표정으로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수행했다.
거리 건너편 쇼윈도에 나의 모습이 여러 겹 비쳤다. 지금 서 있는 나와 조금 전의 나, 그리고 아직 움직이지 않은 나. 세 모습은 겹치지 않고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내가 뒤로 밀리는지 앞으로 나아가는지도 몰랐다.
예전에 만든 프로그램에서 무한 반복문을 잘못 돌려 서버를 다운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의 화면이 떠올랐다. 같은 요청이 수천 번 쌓이고, 데이터베이스가 응답하지 않고, 관리자 페이지의 숫자는 영원히 같은 값을 표시했다.
지금 세상도 그랬다. 누군가 시간을 재실행하다가 종료 조건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는 숨을 고르려 했지만 가슴이 두 번씩 뛰었다. 심장 박동조차 반복되고 있었다. 손목의 ERROR 표시는 마치 프로그램이 나에게 보여 주는 유일한 로그였다.
한 걸음을 떼기 직전, 바닥의 웅덩이에 다른 사람이 보였다. 남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먼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유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굴을 들자 아무도 없었다. 웅덩이 속 모습은 서서히 지워졌다.
그 장면 안에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회색 코트. 피 묻은 오른손. 눈가에 깊게 파인 흉터.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들어오지 마.'
나는 한 발을 내디뎠다.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시계가 60:00을 표시했다.
6시.
도시가 멈췄다. 회색 코트의 남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내 주변에는 문이 생겼다.
일반적인 문이 아니었다. 횡단보도 가운데, 아무런 벽도 없는 곳에 오래된 나무문이 서 있었다. 문에 작은 명패가 붙어 있었다.
[0번 보관실. 차도겸 전용 출입구.]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어제 내 목소리로 남긴 수첩의 문장이 떠올랐다.
‘0번 보관실이 열리면 진짜 차도겸을 만난다.’
문이 열리기 직전,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오유나였다.
“안 돼.”
“제가 가야 할 곳 아닙니까?”
“너를 기다리는 건 네가 아니야.”
“방금 저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어요.”
유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디를 다쳤지?”
“오른손에 피가……”
“그건 네 기억에서 본 거야. 현실의 사람이 아니야.”
“어떻게 압니까?”
유나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손을 다치게 한 게 나니까.”
그녀의 얼굴은 진심으로 괴로워 보였다.
나는 문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유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순간 문 너머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났다.
“누나. 나 여기 있어.”
유나의 몸이 굳었다.
“재민아?”
문틈이 조금 벌어졌다. 안쪽에 소년의 손이 보였다.
유나가 나를 밀치고 문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녀를 잡았다.
“안 돼요. 이것도 함정일 수 있어요!”
하지만 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검은 실들이 문턱에서 쏟아져 나왔다. 우리 발목을 노리며 기어오던 그것들을 피하려고 나는 사원증을 꺼내 문에 내밀었다.
[권한 확인. 오염 기록 차단.]
문이 거칠게 닫혔다. 실 몇 가닥이 문틈에 끼어 종잇장처럼 끊겼다.
유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아 있었어.”
“목소리만 들었습니다.”
“아니. 저건 걔가 쓰던 말투였어.”
처음으로 유나가 흔들렸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문 뒤편에 새겨진 문구를 필사했다.
[제6시 보관국. 귀환 허가: 관리자 차도겸 서명 필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유나가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이 아니었다. 문에 적힌 문장을 보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내가 만든 것이라면 왜 나보다 그녀가 더 두려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산이 있었던 자리에 남은 검은 실을 한참 바라봤다. 실 끝의 종잇조각은 도망치는 사람의 발자국처럼 문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제 이름을 도용해 사람들을 가두고 있단 말입니까?”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유나가 말했다.
“네가 직접 가둔 사람들이라면?”
시계가 0을 가리키자 문은 사라졌다. 버스가 다시 달리고 사람들이 움직였다. 방금까지 있던 나무문의 흔적은 바닥의 작은 흠집뿐이었다.
나는 지하철역 화장실로 들어가 수첩을 펼쳤다.
오늘 사라진 것은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그렸던 기억이었다. 그래도 다섯 번째 기억이라는 사실은 적어 뒀다.
그리고 첫 장 맨 아래에 누군가가 적은 문장을 발견했다.
‘도망친 자와 가둔 자는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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