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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76화
PAYLUA ORIGINAL · 제76화

76화. 두 명이 된 계단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64자

오프라인 책장
계단 인원 숫자가 2가 됐다. 나는 두 번 눈을 비볐다. 여태까지 숫자 하나가 바뀔 때마다 내 상상은 실제보다 훨씬 앞서 달렸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모니터에서 그 숫자를 떼어 낸다면 나에게 남는 건 단 하나였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모른다는 사실. 그다음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화면을 끄는 것이었다. 위험해 보이는 숫자가 나타났을 때 아무 일 없었던 척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숫자 두 개가 진짜 사람 둘을 뜻한다고 믿고 문으로 달려갈 수도 없었다. "누가 들어간 건지 확인할 수 있어요?" 내가 물었다. 한시우는 별도 관측 로그를 열었다. "사람의 이동이 아니라 세션이 두 개 연결됐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장치가 복구할 때 상태가 중복 등록됐을 수도 있어요." 서아가 기록지를 펼쳤다. "그러면 2라는 숫자로 구조 대상 두 명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네." 평소라면 우리가 너무 신중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일수록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나. 그런데 성급하게 내린 결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기억을 빼앗았는지 본 뒤로는, 단정하기 전에 확인하는 습관을 버릴 수 없었다. 시우는 감지 장치의 두 입력을 분리했다. 첫 번째는 오래된 1998년 기록의 재생 세션이었다. 두 번째는 오늘 오후 6시에 새로 생긴 접속이었다. 두 번째 접속에는 신원 정보가 없었다. "구태형이 아닐까요?" 유나가 물었다. "아직 몰라요." 시우가 말했다. "다만 물리적 출입 기록은 없어요. 누군가 직접 계단에 들어갔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날 밤, 피해자 대표들과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다. 나는 처음에 기술 설명 자료를 열 장이나 만들었다. 파란 도장과 빨간 도장의 필드 매핑, 레코드 조인, 인증 토큰의 재사용, 과거 기록 계층. 회사에서 이걸 발표했다면 팀장이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회의에서는 첫 번째 슬라이드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저기요. 그래서 제 월급은 나옵니까?" 대전의 물류 노동자 박지훈 씨였다. 그는 출근 기록이 중복되면서 회사가 자신의 근무 시간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화면에 적힌 복잡한 규칙보다 내일 식비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닫았다. "현재 회사에 원본 기록 보존과 임시 지급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급 여부는 제가 확정할 수 없지만, 담당자가 안내할 연락처를 연결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귀신 같은 프로그램은 언제 없어집니까?" "모든 장치를 한꺼번에 끄면 이미 기록을 잃은 분들의 근거가 더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 등록을 막는 일과 원본을 보존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송미경 씨도 발언했다. "저는 기록이 틀렸다는 걸 알지만, 제 말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계속 '집에 있는 걸 증명해 보라'고만 하면 어떻게 해요?" 그 말에 나는 목이 메었다. 시스템이 그녀의 귀가를 부정했는데, 이제 그녀가 집에 있었다는 사실까지 직접 증명해야 하는 꼴이었다. 누군가의 오류가 다른 사람의 숙제가 된 것이다. 서아는 회의 내용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당사자에게 증명 부담을 전부 넘기지 않도록, 시스템 기록에 오류 의심 표시를 하고 독립된 증빙을 받는 절차를 제안하겠습니다. 이건 실제 업체와 관계 기관이 결정해야 하지만요." 그제야 화면 속 사람들이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마법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오늘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회의를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발언한 사람은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오세린 씨였다. 그녀는 전날 오전 다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일했고, 두 번째 출근이 생긴 탓에 휴게 시간이 사라진 것으로 표시됐다고 했다. 화면 속 그녀의 뒤에는 교무실처럼 보이는 게시판이 걸려 있었다. "저는 우리 애들 밥을 해 준 게 자랑스러워요." 오 씨가 말했다. "그런데 컴퓨터는 제가 쉬지도 않고 일했다고 적어 놨어요. 그러면 내가 쉬었던 시간도 누군가의 빚이 되는 건가요?" 서아는 대답하기 전에 화면 공유를 껐다. 자료보다는 사람의 얼굴을 먼저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쉬셨던 시간은 원래 오세린 씨의 시간입니다. 그 사실을 없애는 계산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현재 기록을 바로잡는 건 업체와 관련 기관이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원하시면 실제 근무 시간과 휴게 시간을 적은 진술을 남겨 주세요. 원본 기록과 대조할 수 있게 보관을 요청하겠습니다. 부담스러우시면 오늘은 이야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오 씨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아주 평범한 저녁이었다. 누군가는 배달 음식을 먹고, 누군가는 숙제를 하며, 누군가는 내일 근무를 위해 일찍 자야 하는 시간. 기록 한 장이 이 사람들의 집을 흔들 수 있었다. "오늘은 증언만 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내일 서류를 준비할지 생각해 볼게요." 우리는 알겠다고 했다. 회의실에 앉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소중한 기록을 내어놓는지, 화면이 아니라 그녀가 결정해야 했다. 통화가 끝나자 나는 첫 슬라이드를 다시 봤다. 원형 도표에 여러 색을 사용해서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숫자의 색깔보다 그 숫자에 묶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슬라이드 제목을 바꾸었다. '오류 보고서' 대신 '잘못된 기록으로 인한 생활 피해와 대응 현황'. 기혁 형사는 그 제목을 보더니 말했다. "이제 좀 알아들을 수 있겠네요." "앞으로 개발자 설명회에는 형사님을 검수자로 모셔야겠어요." "그럼 회의비부터 받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대단한 해결책이 생기지 않은 날에도, 자기가 할 일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작은 자리가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다. 면을 넣고 타이머를 맞추는데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타이머 앞에서 3분을 기다린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그러나 냄비 속 물은 지금 여기서 끓고 있었고, 나는 시간이 흘러야 면이 익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느끼고 싶었다. "하나 더 끓여 줄까?" 유나가 물었다. "먹고 싶으면 직접 넣으세요. 전 오늘부터 대리 조리도 안 합니다." 유나가 젓가락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톡 쳤다. "네가 변한 건 맞아. 예전에는 남이 부탁하면 무조건 대신했어." "친절해서요?" "아니, 거절하면 누군가 싫어할까 봐." 나는 국물을 마시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잃은 기억 속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구하겠다고 모두의 시간을 대신 책임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선택도 결국 나를 바꿀 것이다. 라면 냄비를 씻고 나오자 서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간담회 참석자들이 각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리한 문서였다. 한 사람은 수기로 출퇴근 시간을 적어 두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회사 측에 기존 자료 보존을 요청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당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겠다고 적었다. 그 마지막 항목을 보자 나는 웃었다. '쉬기' 역시 중요한 선택이었다. 보관국이 훔쳐 간 것은 모두의 시간뿐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쉬어도 된다고 말할 권리였을 것이다. 나는 서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늘 네가 제일 잘한 건 회의를 끝낸 거야.' 곧바로 답장이 왔다. '그건 네가 가장 싫어하는 기능 아니야?' '아니. 요즘 제일 좋아하는 기능. 종료 버튼.' 유나가 웃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지금도 누군가 메시지 보내면 뛰어나갈 생각이지?" "아니요. 진짜 위급한 일 아니면 아침에 볼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해 놓고, 폰을 베개 밑에 두지 마." 나는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화면을 뒤집으니 방 안이 조용해졌다. 비가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이것은 멈춘 시간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살아 있는 시간은 늘 이렇게 작은 소음을 남긴다. 나는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밤을 원했다. 그러나 잠들기 직전, 아버지가 남긴 짧은 음성 파일을 한 번 더 들었다. 아이 둘이 움직였다는 말. 한 사람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가져오지 말라는 말. 그 문장들은 여전히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어떤 답을 찾아서는 안 되는지는 알려 주었다. 밤 열한 시 반, 강문석에게 연락이 왔다. 2019년 인증 장비의 보수 기록에서 한정호의 키가 비상 계정으로 바뀐 시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담당 부서는 구태형의 운영 회사였다. 작업 기록에는 세 명이 승인한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서명 검증 결과 한 사람의 인증서로 세 번 서명돼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구조를 승인한 겁니까?" 내가 물었다. "지금 남아 있는 로그로는 발급 요청 계정까지만 알 수 있어요. 실제 담당자는 계약서와 업무 기록을 더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동의했다. '범인 찾기'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누군가가 체포되는 세상이라면 간단했겠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건 중복 서명과 오래된 손목시계뿐이었다. 그때 휴대전화로 짧은 음성 파일이 도착했다. 재생하면 오래된 계단에서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한 칸을 밟고, 같은 소리가 조금 늦게 다시 울렸다. 반사음처럼 들렸지만 박자가 정확하지 않았다. "둘이 걷는 것 같네." 유나가 말했다. "아니, 같은 사람이 두 번 녹음된 걸 수도 있어." 재생 기록을 확인하던 시우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 "이건 녹음이 아니라 현재 관측값이에요. 첫 번째 입력은 1998년, 두 번째는 2026년. 같은 식별키를 쓰고 있어요." "한정호?" "네. 하지만 생체 정보는 없어요. 사람인지 기록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때 음성 끝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쉰 목소리였다. "누가 아직 계단에서 기다리는지 보러 왔습니다." 잠시 후 다른 음색이 겹쳤다. 컴퓨터가 합성한 듯 매끈한 안내 목소리였다. "한정호 계정 접속을 확인했습니다. 관리자 권한을 복구합니다." 나는 그 두 문장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졌다. 하나는 누군가를 찾으러 왔고, 다른 하나는 찾으러 온 사람을 관리자라고 등록했다. 화면에 마지막 표시가 떠올랐다. [관리자 복구 요청자: 미확인] [승인 대기 시간: 06:00까지] 또 하나의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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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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