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 요청'과 '종료 취소 요청'은 단어 하나 차이였다.
다음 날 오전, 나는 두 문서의 제목을 수첩 첫 줄에 나란히 적었다. 종료를 신청한 사람과 그 종료를 취소하자고 한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중요해졌다. 두 사람의 의사를 하나의 도장으로 합쳐 버리면 누구도 나중에 자신이 무엇에 동의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회사에서 직원이 '퇴근 신청 취소'를 눌렀다는 이유로 실제 퇴근이 취소된다면, 다음 날 노동청보다 먼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일 것이다.
아버지의 문서에는 그냥 '최종 근무 종료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것이 아버지 본인의 퇴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서 하단에는 다른 주체를 가리키는 항목이 있었다.
[종료 대상: 대기 경로 09]
[신청자: 차정수]
[취소 요청 승인 여부: 반려]
"아버지가 자기 퇴근이 아니라 경로를 닫아 달라고 했던 걸까요?" 내가 물었다.
강문석이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정확히는 경로가 계속 사람을 끌어들이는 기능을 종료해 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원본 서류에는 그 다음 칸이 찢어져 있어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남기혁 형사는 영병원 자료실에서 확보한 당시 근무 기록의 사본을 따로 보여 주었다. 한정호는 야간 원무과 직원이었고, 6월 13일 정전 사고 때 임시 대피 명단을 관리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사고 직후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간 사람 확인'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아버지의 이름은 그 명단 어딘가에 있었다. 그런데 귀가 확인 칸은 비어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아버지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분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장면을 복원하고 싶었지만 그 기억은 이미 빼앗긴 뒤였다. 남은 것은 수첩에 적힌 몇 개의 표현과 어머니가 가끔 들려주는 목소리뿐이었다.
"저는 아버지를 계속 못 돌아온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문서가 그걸 증명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죠." 형사가 답했다. "누군가 수십 년 동안 아버지의 이름을 사용했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날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본인 확인 없이 기록을 고치는 건 위험합니다."
우리는 한정호의 당시 동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기억이 희미해진 사람도 있었다. 그중 한 명, 퇴직 간호사 배선영 씨가 인터뷰에 동의했다. 형사는 공식 절차를 밟았고, 우리는 그분이 원하는 시간에 짧게 만났다.
배선영 씨는 작은 화분들이 놓인 집에서 우리를 맞았다. 부엌 창턱에는 말린 대추가 담긴 접시가 있었다. 그분은 한정호라는 이름을 듣자 한참 동안 탁자만 바라봤다.
"그 사람은 기록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모두 나가라고 할 때도 누가 정말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도장을 안 찍었거든."
"그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남 형사가 물었다.
"전기가 꺼졌다 켜졌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어요. 복도 시계는 멈췄고, 응급실 시계는 한 시간 앞서 갔죠. 아이들이 울었고, 보호자를 찾는 사람들이 뛰어다녔어요. 나는 환자 쪽을 돌보느라 정확히 몇 명이 있었는지 몰라요."
그분은 잠깐 말을 멈췄다. 우리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본 것만 말하겠다고 했다.
"한정호 씨가 이런 말을 했어요. 종이에 '나갔다'라고 적는 건 쉽지만 그 사람은 종이 밖에서도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명단을 못 맞추고 남아 있었어요."
"차정수라는 사람도 기억하십니까?"
"병원 바깥에서 기계 만지던 분? 이름은 오늘 처음 들었지만, 젊은 기술자가 어린이 보호 구역에 출입했다는 건 기억해요. 아이들 옆에서 계속 '두 명 다'라고 말했죠."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그녀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맞혀 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름조차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 믿을 만했다.
배선영 씨는 우리가 일어서려 하자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병원 직원들 단체 사진이었다. 여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뒤에 작은 자판기가 보였다. 그녀는 얼굴 몇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진 못했다. 사진에 찍혔다고 해서 사고 당일의 현장에 있었다는 뜻도 아니었다.
"한정호 씨가 저기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착각했을 수도 있어요."
남 형사는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물었다. 배선영 씨는 자료를 복사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원본은 돌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나는 사진 속 사람들을 한 번 더 보았다. 오늘날 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보고 웃고, 누군가는 퇴근이 늦어 짜증 난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훗날 누군가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왜 끝까지 남았을까요?" 내가 물었다.
배선영 씨가 대답했다. "그날 애 하나가 계속 같은 말을 했거든요. '나가면 나 혼자 남는 거야?'라고. 한정호 씨가 아이에게 '누가 왔는지 확인하고 나가자'고 했어요. 그게 마지막으로 내가 들은 말이에요."
아이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소년 한시우와 이름 없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둘 가운데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다른 아이였을지도 몰랐다.
"혹시 아이가 손에 뭘 들고 있었습니까?" 유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종이 같은 걸 접고 있던 건 기억나요. 노란색이었나. 정확하진 않아요."
그 대답에 시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 우리는 노란 종이배를 떠올렸지만 그것을 증거로 확정하지 않았다. 오래전 기억을 지금의 정보로 덮어씌우는 일은 매우 쉬웠다. 배선영 씨에게 오늘 이야기를 들은 뒤 기억이 달라질 수 있으니, 최초 진술의 표현을 그대로 보존하겠다고 설명했다.
대문 밖으로 나올 때 그녀가 내게 작은 귤 하나를 건넸다. "오래 돌아다니는 것 같으니 먹고 가요."
나는 귤을 받아 들었다. 한참 전 아버지를 알았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내게 한 일은 거창한 증언보다 평범한 간식이 먼저였다. 어쩌면 그게 당시 병원에서 사람들을 버티게 했던 힘이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나가 라디오를 켰다. 출근 시간대 교통 정보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도로 정체 소식이었다. 나는 그 소리가 이상하게 반가웠다. 자동차가 막히는 건 적어도 자동차들이 제 시간에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나는 아버지의 수첩을 다시 읽었다. 예전에 여러 번 보았던 문장 하나가 오늘따라 다르게 보였다. '둘 다 움직였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가 기록에서 사라질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그것을 무서운 실험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아버지는 단순히 숫자를 맞추기 위해 사람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을지 몰랐다.
나는 수첩의 가장자리에 작은 별표를 쳤다. 과거의 말을 지금 내 상황에 맞춰 바꾸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내 해석일 뿐'이라고 옆에 적었다. 수첩이 없었으면 나는 내 생각과 아버지의 말을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아가 전화를 걸었다. "오늘 어머니는 좀 어떠셔?"
"아까 통화했어. 내가 누군지 알아보셨어. 그런데 아버지 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내지 않았어."
"잘했어. 너도 어머니도 오늘을 살아야 하니까."
나는 통화가 끝난 뒤 한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집 안의 모든 오래된 상처를 당장 열어젖히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일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저녁 여섯 시가 오면 언제나 긴장이 밀려왔다. 초능력으로 멈춘 한 시간은 한때 내게 공짜로 생긴 시간이었고, 이제는 누군가에게서 빌린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됐다. 나는 오늘도 손목시계에 문장을 하나 적었다.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 여섯 시가 다가오자 손목시계의 세모 두 개가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안전 확인을 한 뒤 0번 보관실과 연결되는 영상 통로를 열었다. 유나는 내 옆에 있었고, 기록 담당자도 대기했다. 혼자 들어가라는 구태형의 메시지는 여전히 화면 한쪽에 남아 있었지만 오늘도 따르지 않았다.
문 뒤에서 아이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몇 명이 집에 갔어?"
"잘 모르겠어. 우리는 누가 집에 갔다고 적었는지와 실제로 돌아온 걸 따로 확인하고 있어."
"그럼 모른다고 적어 줘."
"응."
종이배 한 척이 문 아래로 나왔다. 배에는 파란 동그라미와 빨간 네모가 그려져 있었다.
"파란 건 잠깐 기다려도 된다는 뜻이야. 빨간 건 다시 들어오면 안 된다는 뜻이야."
유나가 나를 보았다. 우리가 찾아낸 두 도장의 기능과 거의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알고 있는 것이 1998년의 원래 규칙인지, 나중에 누군가 가르친 해석인지 알 수 없었다.
"너는 그걸 누가 알려 줬어?" 시우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 대신 종이배를 돌렸다. 바닥에 세 글자가 있었다.
'한 선생.'
한정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알아?" 내가 물었다.
"계단에. 집에 가라고 할 때마다 계단을 세."
화면이 흐려졌다. 9번 계단실이 작게 진동하더니, 우리가 낮에 확인한 방화문과 똑같은 문이 영상 뒤편에 나타났다. 손잡이 옆에는 파란 도장 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 문을 열어도 돼?" 시우가 물었다.
"안 돼. 아직 세는 중이야."
아이가 확실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때 도면에 없는 계단 쪽에서 일정한 발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쉬었다가 다시 한 걸음.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같은 계단 하나를 끝없이 오르는 소리 같았다.
화면 맨 아래에 오래된 기록이 켜졌다.
[보류 처리자: 한정호]
[반려된 요청: 종료 취소]
[현재 계단 인원: 1]
누군가의 퇴근을 취소하려던 요청이 그날 반려된 것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은 이를 뒤집어 누군가가 영원히 퇴근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종이 서명을 떠올렸다. 누군가 돌아오는 길을 지키려고 남겨 둔 도장이 오히려 사람들이 집에 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 인원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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