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꿈속에서도 나는 직원 근무표를 검사하고 있었다. 칸마다 똑같은 이름이 네 번씩 찍혀 있었고, 아무리 지워도 다시 나타났다. 깨어나자 휴대전화에는 실제 제보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무엇이 현실의 기록이고 무엇이 악몽의 잔상인지 확인하느라 몇 초가 필요했다.
다음 날 새벽까지 우리는 한정호 계정의 관리자 권한 복구를 보류할 방법을 찾았다.
기술적인 방법만 생각하면 간단해 보였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인증서를 폐기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구태형의 회사가 위탁 장비를 소유하고 있었고, 남아 있는 로그 일부는 이미 다른 시스템으로 복제돼 있었다. 우리에게 접근 권한이 없는 곳까지 마음대로 손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안전한 범위에서 새 승인만 차단할 수 있어요." 시우가 말했다. "제가 관리하는 장비에서는요."
"그 범위를 문서로 남깁시다." 서아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도 있겠지만, 무엇을 막았고 무엇을 아직 못 막았는지 알아야 하니까."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사흘째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분명 시간 정지 능력이 있는데 왜 늘 시간이 부족할까. 알고 보면 초능력이 가장 쓸모없는 사람은 일정표를 짜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오전 다섯 시 십오 분, 새로운 피해 제보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버스 정비 일을 하는 최은규 씨였다. 그는 평소 근무표를 세밀하게 적는 사람이었다. 버스 한 대에 어떤 부품을 교체했는지, 언제 작업을 마쳤는지 자신의 수첩에 매일 적었다고 했다. 덕분에 출근망이 기록을 네 개로 나눠 버린 뒤에도 자신의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화상 통화에서 수첩을 펼쳤다. 빼곡한 숫자들 사이에 작은 그림이 있었다. 작업을 마칠 때마다 그린 버스 모양이었다.
"이건 어제 오전에 그린 겁니다. 저는 한 번 출근해서 저녁에 한 번 퇴근했어요. 그런데 회사 단말기엔 제가 네 명처럼 보여요."
화면에 '최은규-01', '최은규-02', '최은규-03', '최은규-04'가 나왔다. 하나는 실제 근무, 하나는 대리 점검, 하나는 과거 기록 복구, 하나는 귀가 대기였다. 서로 다른 네 건인데 관리자 화면에는 모두 같은 사번이 붙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네 번 일한 걸로 계산합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요. 네 개가 충돌한다면서 급여 확정을 못 한대요. 저는 네 배로 돈 달라는 게 아니에요. 제 하루를 제가 산 그대로 남겨 달라는 거예요."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을 그대로 기록해도 될까요?"
"네. 다른 사람도 그러면 어떡합니까."
나는 네 줄을 봤다. 4,183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이 장부에 네 명이 있다고 적혀 있어도 실제로는 한 명일 수 있었다. 반대로 '익명 동행자'라고 적힌 한 건에 두 사람의 선택이 얽혀 있을 수도 있었다. 숫자만 보고 사람을 세는 일 자체가 위험했다.
"혹시 4,183이 사람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면서도 누가 발표한 걸까요?" 유나가 말했다.
"그랬다면 일부러 오해를 만든 거죠." 내가 답했다. "하지만 그걸 판단하려면 실제 발표 자료와 작성자가 누군지 봐야 해요."
우리는 피해자 한 사람의 근무표를 임의로 수정하지 않았다. 대신 실측 출입 데이터와 본인이 보관한 작업 수첩, 업체 점검 장부를 독립 증빙으로 정리했다. 인사 담당자는 대리 기록이 확정되지 않을 때도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처리하지 않도록 내부 검토를 시작했다.
최은규 씨는 인터뷰 말미에 버스 그림 하나를 더 보여 주었다. 작은 동그라미 두 개와 네모 하나. 나였으면 코딩하다가 급히 낙서한 것이라 생각했을 그림이었다.
"정비 일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그가 물었다.
"나사 안 잃어버리기?"
"그것도 맞아요. 그런데 끝났다고 적기 전에 진짜 끝났는지 다시 보는 겁니다. 바퀴 하나만 대충 봐도 사고 나요."
나는 부끄러워졌다. 몇 번이나 서버가 정상이라고 빨리 보고하고 싶어 대충 넘긴 검사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버스 정비는 사람 목숨과 바로 연결되는 일이었다. 그 앞에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의 결과를 보기 좋게 정리하는 일은 사소해 보였다.
"저도 로그를 검사할 때 그 마음으로 해야겠네요."
"당신들 기술자들도 힘들겠지만,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주세요. 컴퓨터가 네 명이라고 해서 진짜 내가 네 명 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최 씨가 전화를 끊자 유나가 조용히 말했다. "저분 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오래된 시스템도 지금까지 버틴 거겠지. 현장에서 계속 맞지 않는 걸 맞춰 왔으니까."
나는 그의 동의를 받아 네 개의 레코드가 나타나는 화면을 시험용 사례로 사용하되 이름과 연락처는 가리도록 했다. 같은 사번에서 네 개가 나왔다는 사실만 남겼다. 시스템을 비판하겠다고 피해자의 삶을 전부 공개할 수는 없었다.
그뒤 강문석과 나는 숫자를 다시 셌다. 한 명당 중복된 근무 기록의 평균이 얼마인지 계산하고 싶었지만, 표본을 임의로 모은 상태에서 전체 평균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출근망의 4,183건 가운데 얼마가 중복이고 얼마가 실제 개별 사람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대답이 답답했다. 그러나 숫자가 비어 있는 것은 실제 사람을 지워도 좋다는 뜻이 아니었다.
대신 우리는 간단한 분류표를 만들었다. ‘실제 근무 확인’, ‘대리 기록 의심’, ‘익명 동행 요청’, ‘개인 동의 확인 대기’. 마지막 범주를 없애지 않았다. 그 칸을 남겨 두어야 누군가 자기 상태를 말할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냥 다 정상 처리하면 안 되나요?'라는 현장 문의가 한 번 왔다. 나는 답했다. '정상 처리할 근거가 있는 건은 먼저 정정해도 됩니다. 아직 당사자가 확인하지 않은 건은 보류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불친절해 보이는 답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중에 기록을 확인할 때, 자신이 말하지 않은 내용을 우리가 대신 적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할 것이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아침 배달 오토바이가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우리는 그 소리가 멈추지 않게 하려고 일하고 있었다.
오전 다섯 시 오십팔 분. 한정호 키의 복구 요청이 다시 왔다. 시우는 자신의 장비에서 인증 수신을 중단하도록 설정했다. 작업 내역은 외부 감사가 가능하도록 남겼다. 그런데 연결을 끊자 다른 장치가 응답했다.
[대체 인증 서버: 출근망 중앙 제어]
[한정호 비상 권한 복구 준비]
"한곳을 막으면 다른 곳에서 이어받네." 내가 말했다.
"분산 시스템이 그런 면에서는 성실하죠." 강문석이 답했다.
"평소에만 성실하면 참 좋은데."
06:00.
복도에 있던 작은 시계가 멈췄다. 창밖의 자동차는 계속 움직였다. 세상 전체가 멈춘 것이 아니라 출근망과 연결된 화면만 오래된 시각을 덧씌운 것이었다.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나는 손목시계에 적힌 두 세모를 만졌다. 아버지가 만든 장치는 아직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9번 계단실의 관측 화면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누군가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구부정한 등과 손에 든 서류 봉투가 보였다.
"한정호입니까?" 내가 화면에 물었다.
그림자가 멈췄다. 음성 송신이 켜졌다는 표시가 떴다.
"내 이름으로 누가 도장을 찍는지 알아야 합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계단이 몇 층까지 이어지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젯밤 처음 온 것인지 수십 년 동안 여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기억한다고 했다.
"그날 나는 아이가 아직 안 나왔다고 기록했습니다. 아이가 못 나왔으니까. 누군가 그 말을 '그러면 누구도 나가지 못한다'로 바꿨습니다."
"혹시 차정수를 아십니까?" 내가 물었다.
남자는 한동안 침묵했다.
"기술자요. 두 번째 문을 만들겠다고 했던 사람. 이름은 종이에 있었죠. 얼굴은 이제 잘 모르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빈칸 앞에 서 있었다.
"당신이 직접 답하고 있는 겁니까? 기록이 재생되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당신이 묻는 말을 처음 듣는 것 같아요."
그림자와 대화하던 동안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다. 내가 아버지 이름을 말할 때마다 관측 화면의 일부가 한 프레임씩 밀렸다. 사람의 목소리보다 먼저 입 모양이 움직이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영상 지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정호가 답하지 않은 질문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있었다.
강문석이 기록된 음성과 영상의 타임스탬프를 나란히 놓았다. 첫 문장은 과거 보존 기록에서 불러온 것으로 표시됐고, 두 번째 문장은 현재 송신 회선에 찍혀 있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보고 잠시 침묵했다.
"전부 녹음도 아니고 전부 실시간도 아니에요." 그가 말했다.
"그럼 누군가 옛날 말을 잘라 붙여 지금 대답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나?" 내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죠. 아니면 관측 장치가 입력 시점을 섞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쪽인지 확정하지 못해요."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다시 불러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이 화면을 이상하게 바꾼다면 내가 실험하는 동안 또 다른 기록이 뒤틀릴 수 있었다. 우리는 안전한 범위에서 자료만 보존하고 추가 질문을 멈췄다.
유나는 내 옆에 앉았다. "지금 누가 말했는지 모르는데도, 듣고 싶은 말이 나오면 믿고 싶지?"
"아버지를 안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까요."
"믿고 싶은 마음까지 없앨 필요는 없어. 다만 네가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하고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건 따로 적어 둬."
나는 수첩에 두 칸을 그렸다. '들은 말'과 '확인된 사실'. 첫 칸은 금세 찼다. 두 번째 칸에는 아직 몇 줄밖에 적을 수 없었다. 그 빈칸이 서글펐지만, 누군가를 대신 판단하지 않겠다는 내 선택이기도 했다.
화면이 잠깐 끊겼다. 다시 켜졌을 때 계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안내문이 떠 있었다.
[비상 관리자 권한 복구 승인]
[승인자: 한정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모른다'고 답했던 목소리가 어떻게 관리자 복구에 서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시우가 서명 검증 화면을 열었다. 인증은 정상으로 표시됐다. 그러나 승인 시각은 대화가 시작되기 17초 전이었다.
누군가 한정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그의 동의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제7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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