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퇴근 요청은 접수됐었다.
그런데 ‘제3자에 의해 반려’라는 한 줄 때문에 이십팔 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사람의 인생을 붙잡아 두는 데 필요한 것이 거창한 마법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도장 하나라는 사실이 끔찍했다.
나는 영상 원본과 복제본을 비교했다. 마지막 프레임은 예전에 확보한 영상 목록에 없었다. 새로 복원된 영역일 수도 있었고, 최근에 삽입한 화면일 수도 있었다. 남 형사는 자료 입수 시각과 해시값을 분리해 남겼다. 아직 누구도 그 프레임을 법적 사실처럼 사용하지 않았다.
“반려자가 구태형일까요?” 내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 문장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남 형사가 말했다.
“그럼 한정호?”
“그것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서류 원본과 결재 경로를 찾아봅시다.”
그러는 사이 서울 남쪽의 한 물류센터에서 문제가 생겼다. 야간 근무를 마친 직원이 정상적으로 퇴근했는데 다음 날 새벽 출근망에 그 사람의 이름이 자동 등록됐다. 회사 담당자가 확인해 보니 앱은 이미 지난주의 휴식 시간을 삭제한 상태였다. 다행히 직원의 차량 출입 기록과 휴게실 출입 기록이 따로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는 자료 보존과 근무 기록 검토를 요청했다.
나는 평소라면 ‘앱 버그 하나로 이 난리야?’라고 농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루 열한 시간을 일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퇴근은 시스템 상태가 아니라 가족을 만나러 집에 간 실제 행동이었다.
부산의 수진이 보내 준 영상에는 직원들이 각자 종이 근무표에 자신이 실제로 일한 시간을 적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출근을 대신 승인해 주지 않았다. 모르면 모른다고 썼다. 그 소박한 행동이 중앙 출근망의 ‘전원 동의 완료’ 표시보다 믿음직했다.
자료를 보존하는 동안 한 통의 전화가 더 왔다. 서울의 배송센터 직원은 자신이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찍은 출입증 로그가 누락됐다고 했다. 그날 집에서 강아지 밥을 줬다는 사진은 남아 있었다. 직원은 그 사진을 제출해도 되는지 묻다가 주저했다.
“우리 집 주소가 사진에 나올까 봐요.”
“개인적인 정보까지 제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증명에 필요한 범위를 담당자와 먼저 확인하셔도 돼요.”
그는 조금 안도했다. 내가 처음 이 능력을 얻었을 때는 모든 정보가 많을수록 좋다고 믿었다. 조금이라도 증거가 있다면 몽땅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의 누군가가 바로 그 방식으로 사람을 모아 놓고 한 장부에 묶었다. 정리되지 않은 정보의 무게는 늘 당사자가 져야 했다.
서아는 사진 속 반려 도장과 문서의 서명키를 따로 표시했다. 한 장의 화면에 둘을 겹쳐 놓으면 같은 관리자가 처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생성 시각이 달랐다. ‘누가 누른 도장인가’라는 질문과 ‘어느 시스템에서 표시된 도장인가’라는 질문도 달랐다.
“이런 건 개발자가 전부 추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내가 말했다.
강문석이 안경을 고쳐 썼다.
“처음부터 누가 책임졌는지 남기려는 시스템이라면 그렇죠. 누가 책임졌는지 감추려는 시스템은 로그도 다르게 만듭니다. 그러니 가로지르는 자료를 모아야 하고요.”
남 형사가 말했다.
“그래도 기술이 전부를 해결하진 않습니다. 실제 사람이 무엇을 보고, 언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아침까지 할 일이 많겠군요.”
“많죠. 대신 순서대로 하세요.”
그 말에 조금 웃음이 났다. 늘 내게 빚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오늘은 순서로 나뉘었다. 지금은 기록 보존, 다음은 당사자 진술, 그다음은 권한의 출처 확인. 어느 일도 다른 사람의 기억을 몰래 빼앗아 처리할 수는 없었다.
나는 탁자 위 낡은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금속 뚜껑에 새긴 세모는 아직 선명했다. 아버지가 실제로 썼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표시는 최소한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상기시켰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사람에게 물었는가.
우리는 출근망의 저장 목록을 시간순으로 정렬했다. 서버가 허용하는 합법적인 조회 화면이었다. 목록에는 두 종류의 항목이 섞여 있었다. 실제 근무자의 출퇴근 자료, 그리고 ‘미귀가 주체 보존용’이라는 이름의 별도 계약 기록. 후자에는 사람의 신원이 완전히 표시되지 않았다.
강문석이 말했다.
“한 가지는 분명해요. 근무 종료 요청이 들어온 뒤에 자동 반려된 게 아닙니다. 누군가 원본의 반려 권한을 등록해 놓았고, 나중에 들어온 요청이 그 규칙에 걸린 겁니다.”
“규칙을 만든 사람은요?”
“현재 관리자 문서에는 구태형의 회사가 승계 운영자로 나옵니다. 하지만 최초 설정 권한의 근거는 따로 있어요.”
그는 오래된 로그에서 역할 식별자를 확대했다.
[1998년 야간 원무과 기록실 — 대리 서명 검수자]
“한정호가 원무과 사람이었죠.”
“네. 하지만 그 이름을 가진 직원이 있었다는 것과 검수자가 그 사람이라는 건 다릅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 ‘실제 누가 했는가’라는 질문을 건너뛰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날의 병원을 떠올리며 한 가지를 더 말했다.
“정수 씨가 문 닫겠다고 하니까 누군가 화를 냈어. 환자 기록이 없어지면 책임질 사람이 없어진다고. 그런데 정수 씨가 그러더라. 사람을 살리려고 만든 시간을 회사 자산으로 잡으면 안 된다고.”
“누가 화를 냈는지 기억하세요?”
“얼굴은 흐릿해. 이름도 없어. 대신 그 사람이 노란 장갑을 꼈어. 원무과 직원이 아니라 수술실 근처에서 쓰는 두꺼운 고무장갑이었지.”
이번에는 어머니가 먼저 수첩을 가져와 그 말을 적었다. 그녀는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고쳐도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오래된 반려 요청서의 글씨를 확대했다. 하단 모서리에 확인되지 않은 숫자 두 개가 있었다. 06:00과 06:07. 오늘 새벽 우리가 본 자동 확정 보류 시간과 비슷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확인해 볼 가치가 있었다.
강문석은 최초 출근 카드의 시간 표기를 분석했다. 그 기록에는 근무 시작 시각과 장부 검증 마감 시각이 따로 있었다. 하나는 오전 여섯 시, 다른 하나는 오전 여섯 시 칠 분이었다. 초기 설계에서 실제 출근과 서류 검토 사이에 완충 시간을 둔 것일지도 몰랐다.
“왜 하필 일곱 분일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날의 사고 대응 절차와 관계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럼 내일 그 일곱 분 안에 뭔가 해야 하겠군요.”
서아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
“시간이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
“안 할게. 먼저 중단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너 진짜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제멋대로였나?”
“응. 네가 좋다는 일은 남한테도 당연히 좋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분 나쁜 평가였지만 부정하기 어려웠다. 내 기억이 남아 있었다면 변명이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의 나를 방어하는 대신 그녀가 본 현재의 나를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도 그러면 말해 줘.”
“말하고 있어.”
서아는 내 어깨를 살짝 밀었다. 우리는 잠깐 웃고 각자의 기록을 확인했다. 내일 오전 여섯 시에 해야 할 일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적는 데 더 오래 걸렸다.
오후 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0번 보관실과 다시 연결할 수 있었다. 시우는 문 앞에 작은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아이는 오늘 바깥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결정을 존중했다.
“밖은 아침이 무서워?” 시우가 물었다.
“응. 아침이 되면 내 이름표가 없어져.”
“그럼 저녁에는?”
“저녁은 기다릴 수 있어. 아침은 누군가 꼭 출근해야 한다고 말해.”
아이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서아는 한참 망설이다 아이에게 물었다.
“전에 너랑 함께 있었던 여자애 기억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그 애는 내 종이배를 접어 줬어. 그리고 자기 이름을 잠깐 빌려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어.”
“누가?”
“그 애는 안 빌려주겠다고 했어.”
서아는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꼭 쥐었다.
“그 애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이름은 이름 주인 거라고.”
나는 서아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한 말을 근거로 과거의 소녀가 누구였는지 단정하지 않았다. 서아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고마워. 오늘은 더 안 물을게.”
아이가 작게 대답했다.
“나도 괜찮아.”
문 안에서 종이배 접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연결을 종료하려는 순간 서기관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차정수의 최종 종료 요청서에 첨부된 안내 문구입니다. 지금까지는 열람 권한이 없다고 표시됐는데, 귀가 입회 자료가 접수되면서 일부가 열렸습니다.”
종이에는 매우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근무 종료는 관리자의 허가가 아니라 당사자의 권리이다. 다만 보존 중인 주체의 상태를 확인하고 분리할 것.’
“아버지가 쓴 걸까요?”
“필체와 문서 출처는 추가 검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가 썼는지 모르는 그 문장을 절차로 사용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권리를 말하는 조항일수록 관리자가 편한 대로 끼워 넣은 문장과 구분해야 했다.
그때 새벽 출근 예정 목록이 하나 더 나타났다.
[출근 예정자: 차도겸]
[입회 예정자: 진서아]
[미귀가 기준 주체: 차정수]
[반려권 승계자: 식별 불가]
세 사람의 이름이 한 장의 근무표에 묶여 있었다.
나는 서아에게 내일 새벽 자신이 참석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했다. 서아는 잠깐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 이름을 지키러 가는 거야. 네가 지키라고 시킨 게 아니고.”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현장 협조와 안전 조건을 함께 확인했다. 그녀가 가겠다고 결정한 것과 위험을 감수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서로의 말을 듣는 동안 잠깐은 오래전 병원보다 오늘의 새벽을 준비하는 동료들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 빨간 도장이 나타났다.
나는 붉은 글씨 아래 빈 공간을 바라봤다. 시스템은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서아는 조금 전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가 우리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해서 그 말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다음 출근: 예외 없이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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