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삼십 분의 서울은 이상할 만큼 정상적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고 편의점 앞에서는 학생이 삼각김밥을 뜯었다. 사람들은 지각을 걱정하며 뛰어다녔다. 세상이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나에게 더는 안심을 주지 못했다. 그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의 귀가 기록이 지금 이 순간 사라지고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남 형사는 출근망 관련 신고와 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구분해 정리했다. 일부 신고는 일반 근태 프로그램의 오류일 수 있고, 일부는 실제 기억 누락 주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모든 신고를 하나의 범죄라고 성급히 묶지 않았다. 대신 장치 계약, 프로그램 변경 시각, 당사자 진술을 각각 확보할 수 있는 경로를 확인했다.
“특이한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오전 여섯 시?”
“아니요. ‘집으로 돌아간 기록’입니다. 근무 기록이 사라진 사람은 많은데, 집에 돌아간 사실을 증명하는 항목이 같이 지워진 사람이 있어요. 일부는 가족의 메시지와 영상 기록은 멀쩡한데 본인의 기억만 없다고 말하고요.”
나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걸 합쳐서 미종료 근무로 만든다는 거군요.”
“가능성입니다. 아직 작동 원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 표현은 보고서에 가설이라고 써 주세요.”
우리 팀은 이미 그 말투에 익숙했다. 강문석은 ‘가설’이라는 단어 옆에 별표를 그려 넣었다.
오명숙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건 점심 무렵이었다. 1998년에 살던 동네의 아파트 관리 사무소가 오래된 관리 명부를 찾아 주었고, 남 형사는 적절한 연락 절차를 안내했다. 무턱대고 방문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적인 기억을 꺼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내게 없었다.
어머니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기억하는 한도에서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자 오명숙은 한참 웃었다.
“혜정이? 세상에, 목소리가 그대로네.”
수화기 너머에서 낮은 숨이 들렸다.
“나도 나이 많이 먹었어. 이젠 자꾸 잊어버려.”
어머니는 대답했다.
“나도 그래요. 그래서 서로 기억하는 만큼만 얘기하려고요.”
통화는 스피커폰으로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지만 상대의 허락 없이 듣거나 녹음하지 않았다. 잠시 뒤 어머니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공개해도 된다고 한 이야기부터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1998년 6월 13일 밤. 그 동네에는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렸다. 어머니는 자정 가까이 아래층 집 문을 두드렸다. 품에는 파란 담요로 감싼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말이 없었고 손에는 젖은 종이배를 꼭 쥐고 있었다. 오명숙은 아이에게 죽을 먹이고, 어머니에게 마른 양말을 내주었다.
“그런데 사진 아래 메모에는 저녁 여덟 시 십이 분이라고 적혀 있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이마를 찡그렸다.
“아주머니는 자정 가까이라고 하시네. 시계가 멈춰 있었나?”
바로 그 차이가 중요했다. 나는 둘 중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정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나중에 떠올린 시간과 사진 뒤에 적힌 시간은 다를 수 있다. 두 시간 가운데 하나가 시스템에 의해 수정됐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서아가 오래된 필름 사진의 촬영 날짜와 인화 시기를 확인할 방법을 찾았다. 강문석은 원본 시계와 장부의 타임스탬프가 실제 시각인지 표시 기준인지 나눠 놓았다.
한시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가 저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어요.” 내가 답했다. “하지만 손에 종이배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0번 보관실 안의 아이는 어른 시우와 같은 시간에 존재했지만, 그 사실만으로 두 사람이 똑같은 기억과 권리를 가진 하나의 사람이라고 판정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문제로 싸워 왔다.
“아이가 살아 있는 걸 확인한 날,” 그가 말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밖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 아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부터 알고 싶어요.”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때 우리에게 새로운 귀가 자료가 도착했다. 오명숙이 보관해 두었던 낡은 장부 사진이었다. 그녀는 당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했고, 빌려 준 물건과 돌려받은 돈을 빠짐없이 적는 습관이 있었다. 해당 날짜 옆에 ‘혜정, 양말 1켤레, 우산 1개, 아이 죽 1그릇’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뜻밖의 문장이 있었다.
‘정수는 병원에 다시 감.’
그날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는 기록은 없었다. 어머니와 아이가 귀가한 뒤 아버지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는 메모뿐이었다. 기록을 쓴 이유도 아직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왜 돌아갔을까요?”
어머니는 오래 고민했다.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아. 사람을 가둬 놓은 채 끝낼 수는 없다면서.”
나는 아버지의 금속 시계를 바라봤다. 그가 만들었던 두 번째 출구,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길, 본인 거부 기능. 이제 그 모든 물건이 누군가를 집으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명숙은 두 번째 통화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장면을 조금 수정했다. 그날 아이가 한 명이었다고 말했지만, 현관 앞에서는 분명 두 명의 발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직접 본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할 때마다 ‘한 명을 봤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확인할 수 없는 발소리까지 보고서의 인원수에 넣으면 나중에 더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다.
서아는 오명숙의 장부 원본과 사진 속 쪽지를 따로 묶었다. 두 문서의 글씨가 완전히 같지 않았다. 한쪽에는 펜 끝이 굵게 닿은 자국이 있었고 다른 쪽은 연필 자국이 희미했다. 서로 다른 날에 쓰였을 가능성을 기록했다.
“이걸 보면 답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야.” 서아가 말했다.
“원래 사람의 삶이 문서보다 복잡하니까.”
“네가 그런 소리 하니까 좀 웃기다. 넌 모든 걸 정렬해서 보고 싶어 했잖아.”
“지금도 그래. 다만 정렬 기준을 잘못 고르면 사람이 사라진다는 걸 이제 알았지.”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종이 오른쪽 여백에 작은 공백을 하나 남겼다. 아직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을 이름 없는 채로 적을 자리였다.
오후 네 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전국 출근망 운영 서버의 일부 장비에서 어머니의 종이 근무표와 같은 문서가 자동으로 발행된 것이다. 문서에는 모두 과거의 근무 시작일이 적혀 있었다. 1998년, 2004년, 2011년. 서로 다른 시점에 끝나지 못한 근무를 하나로 묶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강문석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퇴근망은 오늘의 시간을 끌어모았어요. 출근망은 과거에 종료 확인이 없는 근무를 현재 사람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출근망을 멈추면요?”
“새로운 연결을 막는 것과 이미 연결된 사람이 안전하게 분리되는 것은 다릅니다. 출근과 귀가를 함께 확인하지 않으면 기존 오류가 그대로 남을 수 있어요.”
나는 오전에 만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거절했다는 목소리를 나 대신 직접 남긴 사람. 그 목소리가 없었다면 장부는 그녀를 지금도 출근 중이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날 확보한 자료를 정리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누구나 병원 복도나 시간 정지의 기이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우리가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영수증 한 장의 날짜와 담당자의 확인 전화였다.
남 형사는 서류를 세 칸으로 나눴다. 직접 확인한 사실, 사람의 기억에 기초한 진술, 시스템이 주장하는 기록. 어느 칸도 나머지 두 칸을 자동으로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수첩의 오래된 부분을 읽다가 몇 군데를 지웠다. 아니, 원래 문장을 지우지 않고 바로 옆에 ‘확인 전 추측’이라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사건이 덜 커졌을까요?” 내가 물었다.
“사건이 덜 커지진 않았을 겁니다.” 남 형사가 답했다. “다만 누군가에게 틀린 이름을 붙이는 실수는 줄었겠죠.”
그는 한 장의 근무표를 보여 줬다. 실제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은 사람이 출근한 것으로 기록되면, 보험과 급여, 사고 조사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상한 시간 장치가 없어도 출퇴근 기록은 사람의 생활을 좌우한다. 우리의 사건은 그 현실을 무기로 삼고 있었다.
부산의 수진은 확인된 근무표 한 장을 따로 보내 줬다. 자기 회사 자료를 무단으로 가져온 게 아니라 담당 부서가 확인 후 공유를 허락한 요약이었다. 그 종이에는 누군가의 야간 휴게시간이 빨간 펜으로 표시돼 있었다. 짧은 휴게시간 하나가 맞는지만 따져도 관련자의 하루가 달라질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요.” 수진이 말했다. “그래도 현주 언니가 쉬었다고 말한 시간만큼은 지우지 않을래요.”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답했다. 그건 세계를 구하는 영웅의 선택과는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록을 만드는 사람과 기록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선택이었다.
한시우는 장부 사진을 보다가 오랜만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이 튀는 신발을 싫어했고, 어머니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마른 양말을 찾아줬던 기분을 막연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오명숙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날 신발을 갈아 신은 아이가 저였다면 좋겠어요.”
“왜요?”
“적어도 집에 돌아간 순간이 한 번은 있었을 테니까요.”
나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를 위로하려고 오래된 기록을 자기 편한 답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오명숙에게 직접 전할 감사 인사를 어머니께 부탁했다. 그녀가 증언을 허락한 만큼만 기록으로 쓰겠다고도 덧붙였다. 오래된 사람의 기억을 증거로 사용할 때조차 그 사람의 현재 의사를 묻는 게 먼저라는 걸 잊고 싶지 않았다.
밤 열 시에 남 형사에게 문자가 왔다.
‘오명숙 씨 보관 장부의 원본 확인 가능. 단, 메모 중 한 줄은 가족에게도 보여 주기 전 전화로 설명하고 싶다고 하심.’
잠시 뒤 어머니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통화를 마친 뒤 나를 불렀다.
“도겸아. 그날 내가 데려온 아이가 누군지 아주머니는 기억하신대.”
“누구였어요?”
“너도 시우도 아니었대.”
어머니는 손등을 문질렀다.
“아이가 여자였대. 젖은 종이배에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녀는 말을 멈췄다.
“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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