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초.
누군가가 서명을 강제로 확정하려는 상황에서 그 숫자는 지나치게 짧았다. 그래도 스물여덟 해에 비하면 길었다. 누군가의 삶 전체를 서류 한 줄로 계산하는 일보다, 마흔다섯 초 동안 아무것도 확정하지 않는 일이 훨씬 중요할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들어 올렸다. 두 개의 세모와 점 하나. 첫 번째는 당사자, 두 번째는 입회자, 가운데 점은 거부할 권리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수첩에 그렇게 적혀 있을 뿐이다.
“강문석 씨, 세 번째 증인이라는 게 누구죠?”
“그건 원본 사양에서 찾겠습니다. 잠깐만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출근까지 마흔다섯 초 남았는데 개발자는 문서를 찾아보겠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똑같이 하던 짓이었다.
현관의 복도에서 도장이 내려왔다.
[출석 확정까지 00:38]
서아가 통화 너머에서 말했다.
“서명하는 사람만 찾지 마. 거부했다는 걸 증언해 줄 사람이 있는지 봐. 지금 당사자의 목소리도 기록했잖아.”
어머니는 휴대전화에 녹음된 자신의 말을 다시 들었다.
‘아니. 내 이름을 빌려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네.”
“엄마가 직접 말씀하셨어요.”
“알아. 다만 듣고 보니까 너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 같아서.”
나는 녹음 앱의 시간 표시를 확대했다. 06:02. 지금은 06:04였다. 화면의 카운트다운과 실제 시각은 맞지 않았다. 현관 앞 한 걸음에서만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계산이 있었다.
“서아야, 저 카운트다운이 정확한 시간이라고 보장할 수 있어?”
“없어. 장치가 주장하는 남은 시간이야. 일단 겁먹고 강제 확정을 누르게 만들기 위한 화면일 수도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에 놀라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신 쓰는 순간, 시스템은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출석 확정까지 00:22]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저 문 앞으로 가면 되니?”
“아니요. 지금은 어디로 연결되는지 몰라요.”
“그럼 그냥 여기 있자. 나를 기다리는 일이라면, 내가 안 가겠다고 한 것도 기다려야지.”
나는 종이에 크게 적었다.
‘윤혜정 본인 출석 거부. 대리 출석도 거부. 원본 증거 보전 요청.’
그리고 누군가 나중에 읽을 수 있도록 사진과 녹음을 별도로 남겼다. 문이 아닌 현실의 두 사람에게 보이는 곳에 두었다.
카운트다운이 열두 초에서 멈췄다.
[외부 입회 자료 감지.]
[기계 입력과 실존인 진술이 충돌합니다.]
[임시 확정 보류: 06:10까지]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기계가 멈춘 것은 동의 여부를 판단해서가 아니라 상충하는 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벌었다.
강문석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찾았습니다. 세 번째 증인은 특정 인물 이름이 아닙니다. 원본 설계도에는 ‘누군가의 출근과 퇴근을 따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어요.”
“무슨 뜻이죠?”
“현장 관리자도 아니고 근무자 본인도 아닌, 외부에서 실제 귀가 여부를 확인한 사람입니다. 병원 근무가 끝났다고 서류에 쓰여 있지 않아도 집에 돌아온 걸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나는 손목시계의 문장을 다시 봤다. 아버지는 거부 기록이 사라지는 경우까지 대비해 두었던 것이다. 증인은 화려한 권한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에 있었다.
“우리 집에는 누가 있었죠?”
어머니가 물었다. “1998년 그날 말이니?”
“네. 누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걸 본 사람.”
어머니는 한참 눈을 감았다. 사진 속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려는 기색이었다. 나는 곧바로 말했다.
“지금 떠오르지 않으면 괜찮아요. 다른 자료도 찾을게요.”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찍은 사진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진의 날짜도 대부분 인화점이 적은 것이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웃었다는 것을 보여 줄 수는 있어도 그날 저녁 정확히 몇 시에 집에 돌아왔는지까지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나는 첫 번째 앨범을 펼쳤다. 어머니는 사진마다 연필로 작은 메모를 달아 두었다. ‘비 오는 날’, ‘도겸이가 아파서 집에서’, ‘정수가 처음 만든 장난감.’ 몇 개는 날짜가 없었다. 그 문장들은 누군가를 관리하기 위해 적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남에게 보여 주지 않아도 되는 추억의 작은 표시였다.
두 번째 앨범에는 오래된 영수증이 꽂혀 있었다. 분유, 두부, 쌀, 빵. 종이를 뒤집자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집이 있었다. 지붕은 초록색이고 문은 두 개였다. 하나는 크게 열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작게 닫혀 있었다.
“이거 제가 그린 거예요?”
어머니는 종이를 한참 보고 대답했다.
“모르겠어. 네가 그렸을 수도 있고, 우리 집에 왔던 다른 아이가 그렸을 수도 있어.”
나는 그 대답을 그대로 적었다. 내 이름으로 된 파일을 여러 번 봤다는 이유로 모든 그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잊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소유권을 쉽게 주장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사람’이라는 표현도 자세히 생각하면 어렵다. 몸이 현관을 통과했는지, 마음까지 돌아왔는지, 자기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왔는지. 출근망은 단 하나의 전자기록으로 그 모든 일을 대신하려 했다.
서아에게 사진을 보내기 전에는 어머니의 동의를 받았다. 사진 속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찍힌 부분도 있었으므로 필요한 부분만 잘라 공유했다. 그조차 누군가를 규정하는 증거로 사용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지금은 작은 단서였고, 그 이상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우리가 내일 발견할 것이 진짜 과거라고 해도,” 서아가 말했다. “그때 돌아온 사람은 오늘 살고 있는 사람하고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건 아니야.”
“맞아. 나는 내가 여섯 살 때 어떤 약속을 했는지 기억도 못 해.”
“그럼 여섯 살의 네가 지금 네 이름으로 회사에 출근하라고 하면?”
“그 애한테 연차부터 설명해야겠지.”
서아가 짧게 웃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사라진 어린 시절을 복구하는 것만큼 현재의 사람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첩을 뒤졌다. 1998년 집 근처 슈퍼에서 찍힌 사진, 아버지의 오래된 차 번호, 낡은 병원 영수증. 집에 도착한 걸 증명할 일상의 흔적을 찾았다. 그때 한 장의 사진 아래 작은 종이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돌아온 아이에게 죽을 끓여 주었습니다. 오후 여덟 시 십이 분. — 오명숙.’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엄마, 이분 아세요?”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바로 어두워졌다.
“옛날 아래층 아주머니야. 병원에서 데려온 아이가 너무 놀라서 울고 있었는데, 그분이 밥을 먹였어.”
“그 아이가 저였어요?”
“모르겠어. 내가 그때 아이 둘을 봤거든. 둘 중 누구를 먼저 집에 데려왔는지도 가끔 헷갈려.”
그 대답이 오히려 중요했다. 어머니는 내게 듣기 좋은 확신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한 아이가 집에 도착했다는 증거와 그 아이가 나였다는 주장을 구분한 것이다.
남 형사가 기록 보관 경로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오래된 수첩에 적힌 이름이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인지, 연락할 수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오늘의 장부를 중단시키기 위해 이미 떠난 사람을 내 마음대로 증인석에 세울 수도 없었다.
현관의 젊은 어머니가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손목에 매달린 출근 카드가 흔들렸다. 카드 뒷면에 아주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귀가 입회 자료 대기]
[기존 대리 출석의 적법성: 미확인]
나는 표정을 굳혔다. 시스템이 스스로 인정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걸 승리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대리 출근시킬 근거로 쓰게 둘 수도 없었다.
서기관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는 보류 요청이 접수된 경위를 공식 장부에 추가했다. 현관 안에서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휴대전화 화면에 확인 번호가 나타났다. 이전에는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관리자가 확인 불가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럼 보류가 언제까지 유효합니까?” 내가 물었다.
“다음 검증까지입니다. 이 상태를 영구적인 승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알아요. 다만 어머니를 자동으로 출근시킬 수 없다는 걸 확인한 거니까요.”
“맞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이어 붙이는 것도 금지하는 요청을 따로 넣어 두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자신이 처음 일을 맡았을 때는 누구에게 감사 인사를 듣는 것보다 서류가 빨리 처리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사람이 서류 뒤에서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처리 시간보다 질문을 제대로 읽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고.
어머니는 전화 내용을 듣고 작게 웃었다.
“그 사람도 퇴근해야지.”
“서기관이요?”
“응. 자기가 끝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끝낼 수 있어야 하잖아.”
나는 그 말도 수첩에 적었다. 보관국의 규칙을 읽는 사람에게조차 퇴근할 권리가 있다는 걸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보조 배터리를 연결했다. 휴대전화의 전원 표시가 붉은색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누군가의 시간을 통째로 정지시키는 세상에서도 내 전화기는 충전이 필요했다. 기록을 남긴다고 약속한 뒤 정작 배터리가 나가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충전 케이블을 찾는 동안 말없이 콘센트를 가리켜 주었다. 아주 평범한 도움이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받은 도움 중에는 그것이 가장 확실했다.
06:09.
거실 바닥의 타일이 조금씩 투명해졌다. 어머니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겸아. 그날 나한테 죽 먹이신 게 오 아주머니였어. 내가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럼 엄마도 집에 돌아오셨던 거네요.”
“응. 나는 집에 왔어. 아주머니가 봤어.”
그 순간 종이 근무표 아래에서 새로운 문장이 올라왔다.
[윤혜정: 1998.06.13 20:12 귀가 목격 정보 존재]
[확정 여부는 입회 원본 확인 후 판단]
거기까지 읽자 벽이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06:10.
현관의 도장은 찍히지 않았다. 대신 출근 카드만 바닥에 떨어졌다. 카드 뒷면에는 빨간색으로 날짜 하나가 적혀 있었다.
[차정수의 최종 귀가: 기록 없음]
아버지는 그날 집에 돌아왔을까.
아니면 우리가 스물여덟 해 동안 찾고 있었던 것은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끝내 귀가하지 못한 사람의 시간이었을까.
제6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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