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다섯 시 사십 분에 울리는 초인종은 대체로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않는다.
택배 기사님도 그 시간에는 문 앞에 물건을 던져 놓고 가시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집 현관에 놓인 것이 1998년 병원 근무표라면, 그건 거의 확실하게 반갑지 않은 방문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얼굴을 보았다. 사흘째 제대로 못 자서 입술이 말라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이 출근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세계를 두 번이나 정지시켜 본 개발자에게 휴일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남기혁 형사는 전화로 현관 앞 상황을 설명했다.
“문제의 종이는 복도 쪽에서 별도로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원본은 어머니가 봉투째 책상 위에 두셨고요. 지금은 만지지 않도록 안내했습니다.”
“그걸 누가 놓고 갔는지는요?”
“공동 현관 영상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종이가 저절로 생겼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죠. 카메라 사각지대도 확인 중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 말에 속으로 답답해했을 것이다. 눈앞에서 자동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기억을 잃는데 왜 확신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지. 그러나 지금은 그 신중함이 누구를 지키는지 안다. 근거 없는 확신은 언제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빼앗는 도구가 된다.
집 문을 열자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서 있었다.
“밥부터 먹어.”
“엄마, 지금 다섯 시 오십 분이에요.”
“그러니까 먹어. 새벽에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배고프면 안 되지.”
식탁에는 따뜻한 미역국과 계란말이가 놓여 있었다. 그릇은 세 개였다. 나는 세 번째 그릇을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내가 잊어버린 저녁의 빈자리가 이번에는 뜨거운 국을 담을 자리가 되어 있었다.
“세 번째는 누구 거예요?”
“오면 먹으라고. 안 오면 네가 두 그릇 먹으면 되고.”
그 단순한 대답이 이상하게 안심됐다.
어머니는 원본을 담은 봉투를 가리켰다. 봉투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내용물은 병원에서 쓰던 연한 녹색 종이였다. ‘영병원 원무과 임시근무 지정서.’ 오래된 타자체 위에 현대식 프린터로 인쇄한 것처럼 또렷한 검은 글씨가 덧입혀져 있었다.
[근무자: 윤혜정]
[대리 근무자: 차정수]
[시작 시각: 06:00]
[기준 근무일: 1998.06.13]
[종료 확인: 미수신]
맨 아래에는 버튼 두 개가 표시돼 있었다.
[대리 출근에 동의] [출근하지 않음]
종이 위에 버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나빴다. 잉크가 움직일 리 없는데, 내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테두리의 회색이 조금씩 밝아졌다.
“엄마, 그거 누르지 않으셨죠?”
“안 눌렀어. 네가 전에 잘못된 버튼은 누르지 말라고 했잖아.”
“네. 엄마가 잘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 이름이 있으니까 자꾸 손이 가더라.”
어머니는 소파 팔걸이에 앉았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그녀의 눈빛은 종종 어디에도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기억이 많이 돌아온 날도 있었고, 가족사진을 보며 낯설어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어머니에게 기억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1998년에 저 병원에서 일하셨어요?”
“일했다기보다는 그날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큰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많았거든. 그때는 아버지랑 네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그 부탁을 누가 했어요?”
“이름은 잘 기억 안 나. 다만 전화로 ‘근무표에 이름만 올려 달라’고 했어. 잠깐 기다리면 다 돌아온다고.”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때 이름을 빌려주는 게 사람을 빌려주는 일이 되는 줄은 몰랐지.”
내가 어렸을 때의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제 새롭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밥을 먹는 동안에는 새로운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계란말이를 꼭 가장자리가 갈색이 될 때까지 익혔다. 밥그릇은 손잡이가 안쪽으로 오도록 돌려 놓았다. 나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늘 웃으며 말했다. 밥 먹는 사람이 급히 움직여도 팔꿈치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거라고.
“이 습관도 옛날부터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아마. 네 아버지가 어릴 때 너한테 밥 먹일 때 부딪혔다고 타박했었거든.”
“그럼 아버지가 잔소리가 많았나 봐요.”
“잔소리가 아니라 걱정이 많았지.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길을 잘못 들지 않을까. 그런데 정작 본인은 제일 늦게 집에 오던 사람이었어.”
어머니는 웃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짧은 순간 기억이 끊어졌는지 눈빛이 멀어졌다. 나는 지금 문장 한 줄을 더 듣고 싶다는 이유로 질문을 이어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렸다.
“이상한 종이를 보내는 사람은 내가 아직도 똑같이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무서우세요?”
“무섭지. 하지만 무섭다고 아무 종이에나 서명하면 더 무서운 일이 생긴다는 건 배웠어.”
나는 방금 들은 말을 적었다. 오늘 새벽의 어머니는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라 자기 의사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지키려는 것도 그 의사였다.
현관 앞에서 전화기가 또 울렸다. 관리실에서 층간 복도 전등이 잠깐 깜빡였다는 문의가 들어왔다는 연락이었다. 다른 집에서는 낡은 병원 복도가 보인다는 신고는 없었다. 나는 그 점도 기록했다. 주변 사람들의 평범한 설명과 우리의 이상한 경험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진지하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 나더라도 다른 집 사람들한테 피해는 안 가겠니?”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서 문은 열지 않고 내부 장치도 만지지 않으려는 거예요.”
“그럼 옆집 아주머니라도 깨워야 하는 것 아니니?”
나는 안전 안내와 공포를 퍼뜨리는 일 사이에서 고민했다. 남 형사에게 상황을 전하자 그는 확인된 위험만 공동 관리 담당자에게 알려 이상 징후가 있으면 즉시 연락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원인을 단정하는 소문은 피해야 했다.
식탁 위 휴대전화에는 우리가 공유한 대기 연락망이 떠 있었다. 이름 옆에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적혀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하루 종일 시간을 멈춰도 끝나지 않던 문제가, 사람 몇 명이 자기 한계를 분명히 밝히자 조금은 다룰 수 있는 일이 됐다.
나는 수첩에 그대로 적었다. ‘이름을 올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머니는 업무 범위에 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기억은 증언이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 병원의 원본 명부를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린 교차 확인할 자료를 찾아야 했다.
서아의 전화가 울렸다.
“도겸, 같은 종이가 시우데이터에도 도착했어.”
“누구 이름으로?”
“한시우. 그런데 그 사람은 열 시까지 출근할 예정이 없었어. 미리 사원증이 활성화됐대.”
“지금 몇 시죠?”
“다섯 시 쉰여섯 분. 강문석 씨가 회사의 연결 장비를 물리적으로 격리하고 있어. 무턱대고 전원을 내리는 건 아니고, 외부 요청만 별도 차단한 상태야.”
내가 종이를 다시 보니 ‘출근하지 않음’ 버튼이 희미해졌다.
[미응답 시: 대리 근무 자동 확정]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이건 선택지가 아니잖아요. 무응답을 동의로 처리한다고?”
유나가 스피커폰으로 끼어들었다.
“어머니께 먼저 여쭤봐. 이 요청을 거절하고 싶은지,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우리끼리 처리한다고 또 사람을 빼놓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 화면의 의미와 지금 아는 위험을 설명했다. 확인되지 않은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내가 거절할게. 내 이름은 내가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저걸 누르는 순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그러면 안 눌러도 돼. 대신 내가 거절했다는 말은 남겨 줘.”
나는 수첩 맨 앞장에 어머니의 말을 적었고, 어머니가 원하면 나중에 수정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읽어 드렸다. 남 형사에게 별도 진술 방식도 문의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종이 속 장치를 시험하는 용기가 아니라, 그 장치 밖에서 한 사람의 의사를 남기는 일이었다.
나는 사진 속 종이 근무표를 확대했다. 오래된 타자기 글씨와 새로 나타난 버튼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었다. 누군가 평범한 서류를 인터페이스로 바꾼 것처럼 보였다. 강문석이 전화로 말했다.
“종이를 복사해도 버튼이 따라오는지 확인한 기록은 있습니까?”
“없어요. 복사기를 사용할 상황도 아니고요.”
“그럼 원본은 건드리지 마세요. 종이가 스스로 반응한다고 해서 모든 조작이 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나는 형광등 아래 원본 봉투를 바라봤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어머니 이름의 출근을 요구한다는 사실과,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 두 가지만 남겨도 적어도 누군가 나중에 ‘아무 이의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 않은 쪽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도겸아. 네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있어도 매번 네가 먼저 다 해결하지 않아도 돼.”
“엄마한테 배웠어요.”
“뭘?”
“아침밥부터 먹이는 거요. 급할수록 사람이 사람 대접은 받아야 하니까.”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벽시계 초침에서 작은 금속음이 났다.
05:59:31.
현관의 전등이 한 번 깜빡였다. 거실 시계 초침이 멈췄다. 그런데 휴대전화 초는 여전히 흘러갔다. 완전한 시간 정지는 아니었다.
식탁의 세 번째 그릇에 갑자기 물방울이 맺혔다.
“국이 식지도 않았는데.” 어머니가 속삭였다.
05:59:50.
종이 위에 검은 글씨가 한 줄씩 나타났다.
[1998년 6월 13일 미종료 교대 복원 중.]
[현장 출석 입회자: 차도겸]
“제가 출석 입회자라고요?”
누가 나를 추천했는지도, 무엇을 보증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자리에 내 이름이 먼저 올라 있었다.
06:00:00.
냉장고 문에 낡은 병원 출입증이 비쳤다. 창문 밖에는 출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움직였다. 우리 집만, 정확히는 식탁과 복도 사이 한 걸음만 옛 병원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혜정 씨. 대리 출근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 목소리.”
“아세요?”
“그날 전화한 사람이야.”
문밖에 보이는 것은 남자가 아니었다. 빛바랜 출근 카드 한 장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카드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차정수 — 28년 4개월 13일 연속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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