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구한 날에는 축하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세 종류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안전하게 대기 상태를 벗어난 사람들, 아직 복구되지 않은 근무 시간과 기억, 그리고 문을 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미확인 주체 하나.
그래서 우리는 승리라는 말부터 꺼내지 않았다.
전국 동시 퇴근망의 시범 운행은 중단됐다.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중앙 청구 장부에서는 더 이상 새 기억 담보를 모으지 않았다. 관련 업체에는 중지 요청과 증거 보존 요구가 전달됐고, 수사와 기록 정정 절차가 이어졌다. 그러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의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도 명확히 적었다.
남기혁 형사는 회의실에서 자료 목록을 다시 읽었다.
“근태 기록 변경과 대리 승인 정황, 피해자 진술, 공급사 계약 이력, 검증 가능한 장치 로그. 각 자료의 출처가 확인된 것부터 정리합시다.”
“저희가 경찰 일을 너무 많이 가져온 건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기록을 정리해 주시는 건 좋습니다. 다만 누구든 범인이라고 결론 내리는 건 따로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구태형은 중앙망을 운영하려 했고 많은 조작 정황이 그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서명이 어떤 경로로 쓰였는지, 각 회사와 관리자가 무엇을 알고 승인했는지까지 확인해야 했다. 우리가 겪은 무서운 일을 이야기하는 것과 누군가의 법적 책임을 결정하는 일은 달랐다.
나는 피해 복구 목록을 세 개로 나눴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 신원을 확인했으나 전산 기록이 잘못된 사람들. 두 번째는 기록이 바뀌었고 일부 기억도 잃었다고 보고한 사람들. 세 번째는 아직 실재 여부나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
“이걸 하나로 합쳐 완료 처리하면 안 되겠네요.” 한시우가 말했다.
“맞습니다. 프로그램이 멈췄어도 사람이 돌아온 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각 사람의 이름을 불필요하게 공유하지 않고, 맡은 담당자에게만 필요한 범위로 전달했다. 결과 보고서에는 확인 가능한 집계와 남은 조치가 적혔다. 초록색 체크 표시가 많아 보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쓸 수는 없었다.
유나는 창밖의 도로를 바라봤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신호등이 바뀌고 차량이 평소처럼 지나갔다. 그녀가 말했다.
“재민이는 오늘 저녁 뭐 먹고 싶다고 했어. 나한테 전화해서 자기가 고르겠대.”
“뭘 골랐어요?” 내가 물었다.
“떡볶이. 맵지 않은 걸로.”
나는 웃었다.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말의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모든 상처가 사라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늘 저녁 메뉴를 자신이 정할 수 있다는 작은 자유였다.
부산에서 수진이 영상통화를 걸었다. 민현주가 옆에 앉아 있었다. 현주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저 오늘 급여 담당자랑 이야기했어요.” 현주가 말했다. “종이 근무표랑 같이 일한 사람들 확인 덕분에 누락 시간을 다시 검토한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들 생일날 무슨 얘기 했는지는 아직 기억 안 나요.”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돌아온 기록과 돌아오지 않은 기억은 다른 문제였다.
현주는 스스로 웃었다.
“그래서 오늘 아들한테 물어봤어요. 엄마가 뭐라고 했었냐고. 애가 그러더라고요. ‘생일 축하해, 내년에 또 하자’ 했대요.”
“좋은 말이네요.”
“전 그 말을 기억 못 하지만, 오늘 아이가 다시 들려줬어요. 그러니까 오늘도 생일 같은 날이 됐죠.”
화면 너머로 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오랫동안 기억해 두고 싶었다. 기억을 영원히 보관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지금 누군가를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통화가 끝나고 한시우가 다가왔다.
“0번 보관실의 아이에게도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네. 다만 아이가 지금 듣고 싶은지부터 물어봐야겠죠.”
“그렇죠.”
그는 문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짧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줘도 되느냐고. 아이가 안에서 ‘응’ 하고 답했다. 그러자 시우는 퇴근망 시범 운행을 중단했고, 그 아이가 남긴 발자국을 누구의 계약에 써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럼 나 내일도 나올 수 있어?” 아이가 물었다.
“안전하게 나올 수 있는 조건을 다시 확인하고 있어.” 시우가 대답했다. “네가 원하면 같이 확인할 거야. 오늘 당장 약속할 수 없는 건 약속하지 않을게.”
아이는 조금 실망한 듯했지만 곧 종이 접는 소리를 냈다. 문틈으로 새 종이배가 하나 밀려 나왔다.
‘오늘은 아빠 배.’
그 작은 글씨를 보자 한시우의 눈이 젖었다. 그는 종이배를 억지로 가져가지 않고 아이에게 확인했다. 아이는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배를 투명한 봉투에 넣어 그의 손에 건넸다.
내게는 여전히 빈 기억이 하나 있었다. 전날 어머니가 차린 세 번째 그릇의 이유를 잊어버렸다. 수첩에는 그날의 식탁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내가 직접 쓴 글씨도, 어머니가 보내 준 사진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느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미안한데 그날 식탁에 왜 그릇을 하나 더 올렸는지 다시 말해 주실 수 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가 아이가 밖에 한 걸음 나왔다고 했잖니. 아직 우리 집에 올 수는 없지만, 언제든 올 자리가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그랬군요.”
“도겸아, 내가 네 이름을 자꾸 잊어버려도 네가 다시 알려 주잖아. 이번에는 내가 알려 주는 거네.”
목이 막혔다. 기억을 되찾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잊은 자리에 누군가 다시 이야기를 건네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첩에 적었다.
‘빈 그릇은 실수로 놓인 게 아니다. 누군가 올 수 있는 자리다.’
그날 저녁 우리는 경로 09의 미기명 주체를 다시 확인했다. 문을 억지로 열지는 않았다. 두 번의 거부 의사가 남았고, 서기관이 당사자 확인 창의 무결성을 별도로 점검하고 있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누구의 동의도 추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수첩의 오래된 부분을 읽었다. 아버지가 남긴 세모 표시, 여섯 번 잃은 기억, 내가 알지 못하는 일곱 번째 선택. 그 모든 문장 사이에 같은 질문이 있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데 문을 닫아도 되는가.’
예전의 나는 그 질문을 들으면 당장 문부터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사람에게 문을 열고 싶은지 묻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기명 주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서아는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사진을 다시 보여 달라고 했다. 빈 식탁 한쪽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언제든 돌아와.’ 그 문장을 보고도 나는 그날 무슨 감정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잊은 게 다 돌아와야 이기는 건 아니지?” 내가 물었다.
“잃은 걸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서아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긍정적인 말로 상실을 덮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분명히 잃었고, 누군가에게 그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동시에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새로운 저녁을 보낼 수도 있었다.
“오늘 퇴근하고 밥 먹자.” 그녀가 말했다.
“저녁에 또 사건 터지면요?”
“그럼 사건 해결하고 먹어. 대신 밥 약속까지 잊어버리지는 마.”
나는 수첩 맨 앞에 저녁 약속을 적었다.
강문석이 갑자기 컴퓨터를 돌렸다.
“차도겸 씨,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계약서는 이제 그만 보고 싶은데요.”
“이번에는 계약서가 아닙니다. 시범 운행을 중단할 때 남겨진 예약 작업이에요.”
화면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각이 있었다.
[퇴근망: 18:00 / 중단 완료.]
[출근망: 06:00 / 자동 전환 대기.]
“퇴근을 멈췄더니 출근을 시키는군요.”
“시간대만 바뀐 게 아닙니다. 대상이 달라졌어요.”
기계가 세 종류의 대상을 구분하고 있었다. 퇴근망에 동의한 사람, 동의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아예 퇴근망을 사용한 적 없는 사람. 새 예약은 세 번째 그룹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입하지도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요?” 유나가 물었다.
“지금은 그렇게 표시됩니다. 실제 실행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예약은 살아 있어요.”
한시우는 곧바로 공급사에 추가 차단과 보존을 요청했다. 서아는 새 약관이나 별도 계약이 존재하는지 확인했다. 남 형사는 해당 예약이 현실 장비와 연결됐는지 조사 절차를 밟았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고 적어 두었다.
그러는 동안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보낸 사람은 어머니였다.
‘도겸아. 이상한 종이가 집 문 아래로 들어왔어. 한 번 봐 줄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그 위에는 낡은 병원 양식처럼 보이는 근무표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 윤혜정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출근 시간은 다음 날 오전 여섯 시였다.
처음에는 광고 전단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근무표의 맨 아래에서 손이 멈췄다.
[근무 대리인: 차정수.]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내가 처음 보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1998년 미종료 근무가 재개됩니다.]
어머니에게 바로 전화했다. 문을 열지 말고, 혼자 종이에 적힌 장소에 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누르지 않겠다고도 했다.
어머니가 보낸 사진을 확대하니 근무표의 모서리에서 작은 세모 두 개가 보였다. 영병원의 낡은 철제 단말기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은 표시였다. 처음 보는 문서를 가장한 종이가 원래의 관측 장치와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사진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종이를 손대지 않고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고, 남 형사에게도 원본 확인 방법을 문의했다. 아버지의 필체처럼 보이는 글씨가 있다고 해서 아버지가 오늘 직접 보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또 한 번 기대했다가 기억과 증거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순간이었다.
나는 오래된 수첩을 꺼냈다. 아버지가 남긴 문장, ‘잠깐 기다리는 장소는 집이 아니다.’ 그 아래에 새로운 질문을 적었다.
‘아버지는 누구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나.’
새벽 여섯 시까지 남은 시간은 열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퇴근이 아니라 출근을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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